SF 생태주의
<붉은 화성>의 개척자들과 인류 문명의 번영 본문
소설 <붉은 화성>은 화성에서 거주지를 건설하는 과학자들을 이야기합니다. 과학자들은 각자 전공 분야가 다르고, 맡은 업무가 달라요. 그에 따라 사상이나 성향이나 철학 역시 다르죠. 과학자들 중에서 제일 폐쇄적인 인물은 아마 앤 클레이본이라는 지질학자일 겁니다. 앤은 다른 과학자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않고, 마음을 터놓지 않고, 독단적으로 업무를 결정하고, 심지어 크게 말다툼까지 벌입니다. 다른 과학자들도 독선적이거나 자신만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나, 앤만큼 두드러지는 과학자는 없는 듯합니다.
사회주의 공동체를 주장하는 아르카디나 지도자 자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프랭크 역시 앤만큼 독보적이지 않을 겁니다. 앤이 다른 과학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마음을 닫고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그만큼 앤이 자연 환경에 신경을 쓰기 때문일 겁니다. 대부분 과학자들은 어떻게 거주지를 지을지 고민합니다. 그들은 인류가 번영하기 바라고, 인류가 화성에서 새로운 문명을 이룩하기 원합니다. 그들은 인류에게 관심이 있고, 나머지를 부차적인 사안으로 여깁니다. 과학자들은 화성 그 자체에 관심이 없습니다. 화성은 그저 새로운 거주지에 불과합니다.
앤은 대부분 과학자들과 다릅니다. 앤은 새로운 문명이 아니라 새로운 행성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앤은 화성 그 자체를 연구하기 원하고, 이 환경을 보존하고 싶어합니다. 인류는 이제 막 화성에 손을 뻗었고, 덕분에 연구할 것들이 무궁무진합니다. 과학자들은 화성을 충분히 탐사하지 못했고, 화성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앤은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싶어합니다. 화성을 전반적으로 둘러보고 싶어하고, 지리나 지질을 연구하고 싶어합니다. 무엇보다 화성에 생명체가 사는지 알기 원합니다.
문제는 인류 주거지가 화성의 환경을 전반적으로 크게 바꾼다는 사실입니다. 개척 과학자들은 화성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화성은 척박하고 적대적인 환경이고, 지구와 딴판입니다. 과학자들은 온실 가스를 뿜고, 극지 얼음을 녹이고, 기후를 바꾸고 싶어합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기후를 바꾼다면, 화성은 지구와 비슷해질 테고, 개척자들은 훨씬 수월하게 새로운 문명을 이룩할 수 있겠죠. 인류가 정착한다면, 그 장소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합니다. 앤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앤은 비록 화성이 척박하고 가혹하다고 해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성은 46억 년 동안 나이를 먹었고, 앤은 인류가 그런 세월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앤은 46억 년의 지질 역사를 연구하기 원하고, 화성 그 자체를 연구하기 원합니다. 문제는 아무도 앤에게 동조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 과학자들은 인류 문명만 바라봅니다. 인류 문명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화성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대부분 과학자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하기 위해 화성에 왔어요. 화성 그 자체를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지어 가장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아르카디 역시 빨리 화성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물음이 떠오릅니다. 화성을 계속 연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화성을 빨리 바꾸고 거주지를 더 넓혀야 할 것인가? 분명히 화성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화성을 그냥 놔두고 계속 연구한다면, 인류는 풍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 과학자들은 그런 지식보다 거주지가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화성의 지질 역사를 연구하는 것보다 빨리 거주지를 짓고 환경을 바꾸는 것이 인류가 번영하는 과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화성에 생명체들이 산다면 과학자들도 행성 개조를 한 번쯤 다시 생각하겠으나, 화성에 생명체들은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아직 만나지 못했을지 모르나, 화성에 생명체는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인류 문명에 보다 중점을 둡니다. 인간을 위해. 오직 인간들만을 위해. 화성이 어떤 역사를 거쳤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언뜻 이 과학자들은 옳은 것처럼 보입니다. 어쨌든 과학자들이 화성을 바꾼다고 해도 누군가를 침략하거나 수탈한다는 뜻은 아니죠. 하지만 정말 과학자들이 '번영하는 인류 문명을 위해' 화성을 바꾸는 걸까요. 인류 문명이 번영한다는 문구는 무엇을 뜻하나요. 그저 무조건 집들을 많이 짓고 인구가 늘어나면, 그게 번영일까요. 소설 속에서 자본주의 체계는 여전히 지구에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빈민들을 수탈하는 중입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계속 화성을 개척한다면, 자본주의 체계는 지구만 아니라 화성에 마수를 뻗겠죠. 사실 자본주의 체계는 그걸 위해 과학자들을 화성으로 보냈어요. 하지만 개척에 찬성하는 대부분 과학자들은 폭력적인 자본주의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번영하는 인류 문명? 네, 좋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과학자들이 자본주의 체계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은 분명해요. 어쩌면 이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솔직히 번영하는 인류 문명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기술이 있기 때문에 시도해볼 뿐인지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