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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유토피아와 기득권들의 변명 본문

SF & 판타지/유토피아

기술적 유토피아와 기득권들의 변명

OneTiger 2017. 11. 2. 20:00

예전에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카를 마르스크가 옳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 기술 혁신은 막대한 생산량을 자랑하고, 자본주의를 촉진한다. 언젠가 기술이 더욱 발달하면, 인류는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고, 따라서 분배는 넘칠 것이다. 그때 당연히 인류는 사회주의를 이룩할 수 있다." 아마 비단 이 사람만 그런 논리를 펼치지 않을 겁니다. 예전부터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은 이런 기술적 유토피아를 예상했습니다.


게다가 정보 통신 기술은 이런 기술적 유토피아를 부채질할 수 있어요. 정보 통신 기술은 무형 제품이기 때문에 무한한 공유가 가능하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공유가 사회주의로 가는 계단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정보 통신 혁명과 기술적 혁명은 상상 과학처럼 들리고, 여러 SF 작가들은 기술적 유토피아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안 뱅크스는 컬쳐 시리즈를 썼고, 우리나라에 <플레바스를 생각하라>와 <게임의 명수> 두 권이 번역되었죠. 이안 뱅크스는 사회주의 계열이나, 이런 상상 과학은 그저 사회주의 SF 소설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좌파와 우파를 떠나 많은 SF 작가들은 기술적 유토피아를 그립니다. 심지어 수구 세력들도 기술적 유토피아를 그리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수구 세력이나 우파가 사회주의를 싫어하는 이유는 경제 체계가 계속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생산 수단을 공유한다면, 경쟁이나 업무 동기가 사라질지 모르고, 그건 끊임없는 발전을 저해할지 모릅니다. (물론 생산 수단을 공유한다고 해도 경제는 계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파는 그걸 부정하죠.) 그래서 우파는 자본주의 체계를 유지하되, 복지 수단을 늘리고 싶어하죠.


기술적 유토피아는 이미 생산량이 무궁무진하게 넘친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생산 수단을 소유해도 경제는 계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생산 수단을 소유해도 경제는 추락하거나 정체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기술적 유토피아는 이미 인류가 노동에서 벗어났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경쟁이나 업무 동기가 사라져도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좌파에 상관이 없는 작가들 역시 이런 기술적 유토피아를 묘사하죠. 기술적 유토피아는 좌파와 우파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소재입니다. 기술적 유토피아는 사회주의를 이룩할 수 있고, 동시에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 유토피아에게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기득권들이 밑바닥 사람들을 억압할 때, 기술적 유토피아와 비슷한 논리를 변명으로 내세울 수 있죠. 기득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많이 힘들겠으나, 좀 더 참아라. 언젠가 생산량이 넘쳐날 테고, 그때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그때까지 너희 밑바닥 계급은 참아야 한다. 만약 생산량이 넘쳐나는 시기가 온다면, 우리 모두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다." 아마 이걸 대기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기술적 유토피아가 엄청난 생산량을 자랑하는 것처럼 언젠가 생산량이 넘쳐날 때까지 밑바닥 사람들이 대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술적 유토피아와 대기 이론은 서로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사회주의 역시 대기해야 합니다. 만약 적당한 시기가 온다면, 사회주의는 혼자 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왕년에 사회주의자들 역시 이런 대기 이론을 믿었죠. 아마 지금도 믿는 사람들이 많을지 모릅니다. 승객들이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충분히 모순이나 성숙에 다다를 때까지 다들 기다려야 합니다. 밑바닥 계급은 고통을 받겠으나, 적당한 때가 오지 않는다면, 사회주의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기득권들은 이런 대기 이론을 변명으로 삼을 수 있어요.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밑바닥 사람들을 계속 수탈할 수 있죠.



문제는 이겁니다. 도대체 그 충분한 생산량이 정확히 어느 정도를 가리킬까요? 도대체 그 적당한 때는 언제일까요? 정말 인류 문명이 기술적 특이점을 지나고, 물질 생성기를 만들고, 생체 구조를 바꿀 때까지 밑바닥 계급은 계속 고통을 받아야 할까요? 기술적 유토피아는 너무 모호합니다. 충분한 생산량과 적당한 시기를 아무도 정확하게 계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득권들은 계속 기다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놈의 생산량이 충분해질 때까지 밑바닥 계급은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생산량을 충분히 달성할 때까지 밑바닥 계급이 계속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 네, 절대적으로 빈곤하다면, 모두 풍족하게 살지 못하겠죠. 어느 정도 풍족해야 배부르게 나눌 수 있겠죠. 하지만 왜 전체적인 빈곤이 밑바닥 사람들을 수탈하는 논리로 이어져야 하나요? 게다가 문제는 이미 말한 것처럼 기득권들이 이걸 변명으로 내세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충분할 때는 나누기 쉬워요. 하지만 모자랄 때는? 기술적 유토피아나 충분한 생산량이라는 SF 설정을 볼 때마다 저는 저런 물음을 떠올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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