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테라 살붐은 미래의 녹색당이 될 수 있는가 본문
소설 <붉은 화성>에서 개척 과학자들은 화성에 새로운 주거지를 만듭니다. 그들은 그저 생존만 추구하지 않고, 외계 행성에서 새로운 문명을 일구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대략 100명의 과학자들이 척박하고 위험한 외계 행성에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어떻게 행성을 개척할지 수없이 논의합니다. 어떤 과학자는 빨리 온실 가스를 퍼뜨리기 원하고, 어떤 과학자는 치명적인 핵 발전을 포기하자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풍력 발전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누군가는 화성을 좀 더 오래 보존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붉은 화성>은 외계 행성 개척과 새로운 문명과 자연 환경을 둘러싼 여러 논의들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 같습니다. 이런 사례를 그저 하드 SF 소설 속에서만 찾을 이유는 없겠죠. 비디오 게임 역시 이런 논의들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비록 비디오 게임들은 꽤나 얄팍한 상상 과학들을 보여주곤 하나, SF 작가들이 제시한 상상력을 열심히 변주할 수 있어요.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 같은 게임 역시 그렇습니다. 비디오 게임 속에서 인류는 새로운 외계 행성을 개척하나, 외계 행성 개척은 전혀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서로 사상이나 신념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빨리 행성을 개척하자고 말하고, 누군가는 과학 기술을 먼저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누군가는 외계 행성에서 새로운 종교 국가를 만들려고 계획하죠. 사상과 신념에 따라 사람들은 진영들을 구성하고, 테라 살붐은 그런 진영들 중 하나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 진영을 '녹색 진영'이라고 부릅니다. 땅을 보존하자는 이름처럼 테라 살붐은 인류가 환경 오염으로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그들은 외계 행성에서 환경 오염을 막고 싶어하고, 환경 보호를 제일 중요하게 여깁니다.
테라 살붐의 전신 조직은 지구에서 기득권들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와 동남 아시아를 수탈하는 사태에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기후 변화가 거대한 재앙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환경 보호 운동가들이었고, 정치 조직이 아니었죠. 자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정부만큼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생각은 테라 살붐이라는 거대 조직으로 이어졌습니다. 인류가 개척할 수 있는 외계 행성을 발견했을 때, 테라 살붐 역시 외계 행성으로 항해했고, 그들은 새로운 행성에서 자연 친화적인 문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은 <붉은 화성>의 주제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이 소설 역시 환경 오염을 제일 우려하죠.)
환경 오염에 분노하는 조직답게 테라 살붐은 자연 환경에서 더 많은 자원을 얻습니다. 그래서 설정상 테라 살붐은 숲이나 버섯 무리를 깎지 않고 보존할 수 있어요. 게다가 외계 야수들은 테라 살붐에게 좀 더 친근하고, 이들을 덜 공격합니다. 테라 살붐 역시 외계 야수들과 싸우나, 적어도 어느 정도 우호적으로 접근할 수 있죠.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조직답게 테라 살붐은 평화주의를 주장하고, 그래서 전투력이 약합니다. (게임 플레이에 상관없이 설정상) 테라 살붐은 침략 전쟁을 선호하지 않는 듯합니다.
테라 살붐은 대표하는 상징은 녹색 나뭇잎입니다. 그리고 테라 살붐은 대표하는 비비안 가디니어는 녹색 철학이 무엇인지 아예 패션 스타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런 테라 살붐은 마치 현실 속의 녹색당과 비슷합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현실 속에서 테라 살붐과 녹색당 모두 환경 보호를 중시하고, 전쟁에 반대하고, 생물 다양성을 지키기 원합니다. 테라 살붐을 미래의 녹색당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그건 별로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테라 살붐은 그저 환경 운동 단체가 아니라 정치적인 조직이죠. 그건 녹색당과 다른 환경 운동 단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겁니다. 녹색당은 분명히 정당입니다.
하지만 테라 살붐이 표현하지 못하는 생태 철학들 역시 있습니다. 녹색당은 직접 민주주의를 꽤나 중시합니다. 아예 조직 자체를 지방들의 연합체와 풀뿌리 민주주의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테라 살붐은 그런 면모가 없습니다. 적어도 게임적인 특징으로 그걸 대변하지 않아요. 녹색당은 성적 평등을 지향하고, 그래서 여자 당직자들을 우대합니다. 테라 살붐이 그럴까요. 대표자 비비안 가디니어는 젊은 여자입니다. 하지만 비비안이 사회적인 약자인 여자를 대변하기 때문에 테라 살붐이 비비안을 내세우나요. 글쎄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역시 게임적인 특징으로 그걸 대변하지 않죠.
사실 이는 <붉은 화성> 같은 소설이 뚜렷한 철학으로 대의 제도를 비판하거나 여자들을 우대하는 모습과 많이 다르죠. 테라 살붐은 분명히 녹색 철학들을 반영했으나, 녹색 철학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아마 그 이유는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가 4X 전략 게임이기 때문일 겁니다. 4X 전략 게임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나 성적 소수자 같은 요소들을 게임 규칙으로 만들기는 어렵겠죠. 수많은 게임 플레이어들은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을 테고, 그저 보병이나 전차나 전투기를 양산하는 쪽에 관심이 많겠죠.
어쩌면 게임 제작진조차 생태 철학이나 녹색당을 깊게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죠. 그저 녹색당이 인기를 끌기 때문에 게임 제작진은 그걸 대충 반영했을지 모릅니다. 저는 이런 게임들을 볼 때마다 여러 측면에서 아쉽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