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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보통 일베들>부터 울트라 세븐까지 본문

감상, 분류, 규정/생태 사회주의, 에코 페미니즘

<보통 일베들>부터 울트라 세븐까지

OneTiger 2022. 8. 20. 12:15

1. 발단: 왜 기념비적인 M78 성운인이 여자보다 남자인가?

 

발탄 성인, 레드킹, 고모라, 메피라스 성인, 젯톤…. 거대 괴수들, 외계인 침략자들은 인류를 공격합니다. 울트라맨은 거대 괴수들, 외계인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인류를 보호합니다. 울트라맨이 인류를 보호하기 때문에, 울트라맨은 영웅입니다. 하지만 울트라맨은 그저 단순한 영웅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어떤 영웅도 거대 괴수들을 물리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어떤 영웅도 외계인 침략자들을 물리치지 않습니다. 많은 남한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영웅이라고 떠받듭니다. 이순신이 거대 괴수들, 외계인 침략자들을 물리쳤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순신은 일본 수군과 싸웠습니다.

 

이순신이 외계인 침략자들을 물리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순신보다 울트라맨은 훨씬 대단한 영웅입니다. 아무리 이순신이 일본 수군과 싸웠다고 해도, 이 싸움은 지구 수준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비단 임진 왜란만 아니라 다른 전투들 역시 똑같습니다. 현실에서 어떤 전투도 지구 수준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현실과 달리, 울트라맨이 외계인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때문에, 이 전투들은 지구를 넘어섭니다. 울트라맨이 지구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울트라맨은 훨씬 대단합니다. SF, 사이언스 픽션은 울트라맨을 대단한 영웅이라고 강조할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주제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울트라맨이 SF,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는 것처럼, 스페이스 오페라는 SF,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여러 외계 우주 함대들이 싸운다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외계 우주 함대들이 싸우기 때문에, 이 함대 전투는 행성 수준을 넘어섭니다. 현실에서 어떤 함대 전투도 행성 수준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아무리 중국 함대와 미국 함대가 싸우고 이 전쟁이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이 전쟁, 이 비극은 행성 수준을 넘어서지 않을 겁니다. 현실과 달리,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함대 전투는 행성 수준을 넘어섭니다. 함대 전투가 행성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이 전투는 훨씬 대단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훨씬 대규모 전투, 훨씬 웅장한 전투, 훨씬 첨단 기술 전투를 묘사할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함대 전투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비단 함대 전투만 아니라 생물 다양성 역시 강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스페이스 오페라가 외계 생명체들을 보여준다면, 이 외계 생명체들은 경이로운 감탄을 유발할지 모릅니다. "우와~, 세상에! 어떻게 이 생명체들이 진화할 수 있지? 이 생명체들이 가능한가? 자연은 아주 대단해! 자연은 아주 경이로워!" 스페이스 오페라(외계 생명체들)에서 이 감탄은 비롯할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자연이 대단하다고 강조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주제를 강조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에게는 이 미덕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제들을 강조하기 원한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가 행성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는 훨씬 확장된 주제를 강조합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외계인 침략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침략은 행성 수준(지구 수준)을 넘어섭니다. 외계인들은 어마어마한 우주선들을 조종하고 인류 문명을 짓밟습니다. 외계인 침략이 행성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이 영화는 대규모 침략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에게는 이 미덕이 있습니다.

 

만약 울트라맨과 <인디펜던스 데이>가 만난다면, 울트라맨은 외계인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인류 문명을 보호하기 원할 겁니다. 울트라맨이 비행할 수 있고 (스페시움 광선과 다른) 광선들을 발사할 수 있기 때문에, 울트라맨은 외계 전투기들을 격추할 수 있습니다. 외계 우주선들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외계 우주선들을 침몰시키기는 너무 어려울 겁니다. 울트라맨에게 외계 우주선들은 어마어마한 적들입니다. 하지만 비록 상황이 불리하다고 해도, 인류를 위해 울트라맨은 어마어마한 우주선들과 싸울지 모릅니다. 오오오~, 울트라맨은 아주 대단한 영웅입니다. 그리고 울트라맨은 남자입니다.



울트라맨, 이 영웅은 남자입니다. 아주 대단한 영웅은 남자입니다. 울트라맨이 아주 대단한 영웅이고, 울트라맨이 남자이기 때문에, 울트라맨은 남자를 아주 대단한 영웅이라고 강조합니다. 만약 어떤 특촬 덕후들이 울트라맨을 좋아한다면, 이 덕후들은 (여자보다) 남자를 대단한 영웅이라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울트라맨보다 울트라 세븐을 좋아합니다. 울트라맨처럼, 만약 울트라 세븐과 <인디펜던스 데이>가 만난다면, 울트라 세븐은 외계 전투기들을 격추시키고 어마어마한 우주선들을 침몰시키기 원할 겁니다. 비록 상황이 불리하다고 해도, 울트라 세븐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오오오~, 울트라 세븐은 아주 대단한 영웅입니다. 울트라맨처럼, 울트라 세븐은 남자입니다. 아주 대단한 영웅은 남자입니다. 울트라맨처럼, 울트라 세븐은 남자를 아주 대단한 영웅이라고 강조합니다. SF, 사이언스 픽션이 아주 대단한 영웅을 강조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은 남자를 강조합니다. 어쩌면 골수 SF 독자들은 울트라 세븐을 사이언스 픽션보다 사이언스 판타지라고 분류하는지 모릅니다. 울트라 세븐이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든, 사이언스 판타지에 속하든, 울트라 세븐은 남자를 강조합니다. 비단 울트라 세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이언스 판타지들 역시 대단한 남자들을 강조합니다.



흔한 농담처럼, 인류 절반은 여자입니다. 하지만 왜 울트라 세븐이 여자가 아닌가요? 왜 울트라맨이 여자가 아닌가요? 이건 모든 M78 성운인이 남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유리안처럼, 어떤 M78 성운인들은 여자들입니다. 하지만 울트라맨은 기념비적인 첫째 M78 성운인입니다. 울트라 세븐은 기념비적인 둘째 M78 성운인입니다. 왜 첫째 M78 성운인이 여자가 아닌가요? 왜 여전히 둘째 M78 성운인이 남자인가요? 왜 사이언스 판타지가 대단한 영웅, M78 성운인을 여자보다 남자라고 설정하나요? 여자보다 남자가 대단한 영웅이기 때문에, 울트라 세븐은 가부장 편견들을 강화하는지 모릅니다.

 

울트라 세븐처럼, 많은 인류 문화들은 가부장 편견들을 강화하는지 모릅니다. 많은 인류 문화들이 가부장 편견들을 강화하기 때문에, 성 차별들은 심각한지 모릅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끔찍한 성 폭력들은 사라지지 않는지 모릅니다. 만약 어떤 덕후들이 울트라 세븐을 좋아한다면, 이 덕후들은 가부장 편견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건 울트라 세븐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록 울트라 세븐이 남자라고 해도, 이건 그저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불과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에게는 창작의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창작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해도, 왜 울트라맨이 남자인가요?


2. 전개: 거다 러너와 가부장 제도, 개인적인 육아

 

울트라맨이 발탄 성인과 싸우는 것처럼, 울트라 세븐이 우주 로봇 킹죠와 싸우는 것처럼, 울트라맨, 울트라 세븐은 전투적입니다. 울트라맨, 울트라 세븐이 전투적이기 때문에, 울트라맨, 울트라 세븐은 폭력과 떨어지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평균적으로) 여자 근력보다 남자 근력은 강합니다. 울트라 세븐과 싸움, 전투가 떨어지지 않고 여자 근력보다 남자 근력이 강하기 때문에, 울트라 세븐이 남자인가요? 하지만 사이언스 판타지는 다른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현실에서 어떤 영웅도 외계인 침략자와 싸우지 않는 것처럼, 현실에서 아무도 스페시움 광선을 발사하지 못하고 아이 슬러거를 날리지 못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아무도 아이 슬러거를 날리지 못한다고 해도, 사이언스 판타지에서 울트라 세븐은 아이 슬러거를 날릴 수 있습니다. 울트라 세븐이 아이 슬러거를 날리는 것처럼, 사이언스 판타지는 현실을 넘어서고 다른 세계를 묘사할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판타지가 다른 세계를 묘사하기 때문에, 비록 현실에서 (남자 근력보다) 여자 근력이 약하다고 해도, 사이언스 판타지에서 여자는 전투적인 영웅일 수 있습니다. 현실과 사이언스 판타지는 똑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M78 성운인이 사이언스 판타지라고 해도, 기념비적인 울트라맨, 울트라 세븐은 여자보다 남자입니다. 어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쩌면 거다 러너는 대답일 수 있습니다. 거다 러너가 출산을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체로서 인간에게는 두 특성이 있습니다. 생명체로서 인간은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만약 인간이 먹지 않는다면, 인간을 굶어죽을 겁니다. 그 어떤 예외 없이, 살아있는 인간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인간이 영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먹거리가 필수적입니다. 먹거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먹거리를 얻기 위해 인간은 노동합니다. 먹거리를 얻기 위한 노동은 인류 문명 역사를 관통합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지역과 상관없이, 먹기 위해 인간은 노동합니다. 이건 필연적입니다. 동시에 생명체로서 인간들은 번식합니다.

 

만약 인간들이 아기들을 낳지 않는다면, 인류는 세대들을 이어가지 못할 겁니다. 인류가 세대들을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는 멸종할 겁니다. 출산 덕분에, 인류는 세대들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기에게는 돌봄 노동자가 필요합니다. 아기에게 돌봄 노동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돌봄 노동은 인류 문명 역사를 관통합니다. 이건 필연적입니다. 먹기 위한 노동이 인류 문명을 관통하는 것처럼, 돌봄 노동은 인류 문명을 관통합니다. 두 노동이 인류 문명을 관통하기 때문에, 인류 문명에서 두 노동은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중요합니다. 육아가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육아에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노동이 아주 중요하다면, 이 노동은 개인적인 노동보다 사회적인 노동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보다 사회가 훨씬 커다란 역량을 발휘하고 훨씬 커다란 책임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노동은 개인적인 노동보다 사회적인 노동이 되어야 합니다. 육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육아가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육아는 사회적인 노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돌봄 노동 사회화가 주류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돌봄 노동 사회화는 주류가 아닙니다. (2022년 오늘날, 비단 육아만 아니라 다른 많은 노동들 역시 사회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육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육아는 개인적인 노동입니다.

 

육아가 개인적인 노동이기 때문에, 육아는 중요한 가치를 얻지 못합니다. 육아가 중요한 가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육아는 무시를 당합니다. 만약 어떤 인류 사회가 육아를 무시한다면, 이 사회는 가부장 제도 사회일 겁니다. 거다 러너는 가부장 제도가 여자들을 소유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서 여자는 오직 성별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 주장에서 여자는 재생산(임신, 출산)을 가리킵니다. 가부장 제도는 여자의 재생산을 소유합니다. 만약 육아가 사회적이라면, 육아가 중요한 가치를 얻기 때문에, 가부장 제도는 여자의 재생산을 침략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육아가 무시를 당하기 때문에, 가부장 제도는 여자들을 침략합니다.



돌봄 노동이 인류 문명을 관통하기 때문에, 돌봄 노동은 인류 사회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남자보다 여자는 돌봄 노동을 담당합니다. 왜 남자보다 여자가 돌봄 노동을 담당하나요? 여자가 임신하고 출산하고 수유하기 때문인가요? 분명히 남자보다 여자는 임신합니다. (건강한 아기를 낳기 위해 여자는 월경합니다.) 아무리 여자가 임신한다고 해도, 육아에서 임신, 출산, 수유는 전부가 아닙니다. 비록 남자가 임신하지 않는다고 해도, 남자 역시 아기를 돌봐줄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어떤 아빠들, 어떤 삼촌들은 육아에 참여합니다. 하루 종일, 아주 신나게, 삼촌은 어린 조카와 놀아줄 수 있습니다.

 

삼촌이 어린 조카와 놀아주는 것처럼, 아무리 남자들이 육아를 담당할 수 있다고 해도, 지배적인 관념은 남자보다 여자를 육아 노동자라고 분류합니다. 왜 여자가 육아 노동자인가요? 19세기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고정적인 성별 역할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19세기 사회가 근대 사회라고 해도, 아무리 산업 기계들이 발달했다고 해도, 19세기 근대 산업 사회는 여자=돌봄 노동자, 이 성별 역할을 깨뜨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19세기 사회에서 여자들은 육아 노동자였습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역시 똑같습니다. 인류 사회는 고정적인 성별 역할(여자-육아)을 '강요'합니다.



몇 천 년 동안, 인류 문명 역사는 가부장 제도 역사였습니다. 여전히 성별 역할, 여자-육아는 고정적입니다. 이 도표(링크)는 남자 가사 노동 시간보다 여자 가사 노동 시간이 훨씬 많다고 보여줍니다. 아무리 오직 아내만 임금 노동자라고 해도, 남편 가사 노동 시간보다 아내 가사 노동 시간은 많습니다. 이건 너무 부당합니다. 여자가 아기를 돌보기 때문에, 여자는 비단 육아만 아니라 가사 역시 담당합니다. 여자가 육아 노동자이기 때문에, 여전히 근대 산업 사회에서 여자는 가사 노동자입니다. 여기에서 근대 사회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가리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근대 사회와 자본주의가 똑같다고 생각(착각)합니다.

 

시장 경제는 사회화를 싫어합니다. 시장 경제가 사유 재산 제도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는 사유화, 민영화를 추구합니다. 사회화와 사유화(민영화)는 대립합니다. 시장 경제가 사유화(민영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는 사회적인 노동을 거부합니다. 시장 경제가 싫어하기 때문에, 육아는 사회적인 노동이 되지 못합니다. 시장 경제가 사회적인 육아를 거부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에서 육아는 개인적인 노동이 됩니다. 너무 오랜 동안, 여자가 육아 노동자였던 것처럼, 아무리 페미니즘이 부흥한다고 해도, 여전히 시장 경제에서 육아는 개인적인 여자 노동이 됩니다.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임금 노동자가 됩니다.

 


시장 경제에게 이윤 축적은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언제나 필연적으로 시장 경제는 훨씬 많은 이윤을 축적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육아는 이윤을 축적하지 않습니다. 임금 노동과 달리, 육아는 잉여 가치를 유발하지 않습니다. 시장 경제에게 훨씬 많은 이윤이 가장 중요하고, 육아가 이윤을 축적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 경제에서 육아는 중요한 노동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육아가 인류 문명을 관통한다고 해도, 시장 경제는 육아를 무시합니다. 육아가 가장 원초적인 노동이고, 시장 경제가 가장 원초적인 노동을 무시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는 악랄합니다. 2022년 오늘날, 세계적으로 시장 경제는 지배적입니다.

 

시장 경제가 육아를 무시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는 가부장 제도입니다. 세계적으로 시장 경제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부장 제도는 지배적입니다. 가부장 제도가 지배적이고, 가부장 제도가 가부장 편견들을 유발하기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은 지배적입니다. 지배적인 가부장 편견들은 많은 문화들, 예술들, 허구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가부장 편견들은 여자보다 남자가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가부장 편견들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일본 특수 촬영 문화가 울트라맨을 구상했을 때, 일본 사회는 전형적인 시장 경제였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회는 가부장 제도였습니다.

 

 

3. 절정: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가부장 편견들을 유발한다


일본 사회가 가부장 제도였기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에서 일본 특수 촬영 문화는 자유롭지 않았을 겁니다. 시장 경제가 가부장 제도이고, 가부장 제도가 가부장 편견들을 유발하고, 가부장 편견들이 여자보다 남자를 중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기념비적인 첫째 M78 성운인은 남자였을 겁니다. 그래서 둘째 M78 성운인 역시 남자가 되었을 겁니다. 여자보다 남자가 중요하고 M78 성운인이 아주 대단한 영웅이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는 기념비적인 울트라 세븐이 되었습니다. 비단 울트라 세븐만 아니라 <인디펜던스 데이> 역시 똑같습니다. 왜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외계인 침략자들을 물리치나요?

 

시장 경제에서 <인디펜던스 데이>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시장 경제가 가부장 제도이기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은 이 영화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남자들은 외계인 침략자들을 물리치는지 모릅니다. 악랄한 시장 경제 때문에, 여자들은 그저 기다릴 뿐인지 모릅니다. 시장 경제가 가부장 편견들을 유발하기 때문에, 울트라 세븐, 남자 조종사들은 외계인 침략자들을 물리칩니다. 일본 특수 촬영 문화에서 비단 울트라 세븐만 아니라 다른 남자 영웅들 역시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SF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남자 영웅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울트라맨처럼, 모스라는 일본 특촬 문화에 속합니다. 모스라는 남자 영웅보다 어머니 여신, 자연의 여신입니다. 만약 모스라와 <인디펜던스 데이>가 만난다면, 울트라맨이 외계 전투기들을 격추하기 원하는 것처럼, 모스라는 외계 전투기들을 격추하고 인류(특히, 인펀트 부족민들)를 보호할 겁니다. 모스라에게 대규모 외계 우주선들은 너무 어마어마한 적수이나, 모스라는 포기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오오오~, 모스라, 이 자연의 여신은 아주 대단합니다. 하지만 <신 모스라>보다 <신 울트라맨>이 개봉하는 것처럼, 일본 특촬 문화에서 모스라(자연의 여신)보다 울트라맨(남자 영웅)은 유명합니다.

 

울트라 세븐이 아이 슬러거를 날리고 에레킹 모가지를 뎅겅~ 자르는 것처럼, 울트라 세븐과 싸움, 전투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비단 울트라 세븐만 아니라 많은 남자 영웅들 역시 싸움, 전투와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자 영웅이 전투적이라고 해도, <신 모스라>보다 <신 울트라맨>이 개봉하는 것처럼, 여자 영웅들보다 남자 영웅들과 싸움, 전투는 가깝습니다. 싸움, 전투는 폭력을 동반합니다. 남자 영웅들과 싸움, 전투가 가깝기 때문에, 사이언스 판타지들은 남자들과 폭력이 가깝다고 묘사합니다. 비단 사이언스 판타지만 아니라 다른 인류 문화들 역시 남자와 폭력이 가깝다고 묘사합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판타지가 주제를 강조하기 때문에, 다른 문화들, 예술들, 허구들보다 사이언스 판타지는 남자와 폭력이 가깝다고 강조하는지 모릅니다. 시장 경제가 사이언스 판타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울트라 세븐은 여자보다 남자입니다. 울트라 세븐처럼, 시장 경제가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이언스 판타지는 남자와 폭력이 가깝다고 강조하는지 모릅니다. 서구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확장했습니다. 서구 제국주의가 확장하기 전에,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지배적이지 않았습니다. 서구 제국주의 때문에, 시장 경제는 지배적입니다. 시장 경제는 제국주의입니다.

서구 제국주의와 전쟁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 베트남 침략처럼, 서구 제국주의와 전쟁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세계 시장 경제가 서구 제국주의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세계 시장 경제와 전쟁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여자 근력보다 남자 근력이 강하기 때문에, 전쟁은 남자들을 동원합니다. 전쟁이 남자들을 동원하기 때문에, 남자와 전쟁은 가깝습니다. 전쟁은 폭력입니다. 남자와 전쟁이 가깝기 때문에, 남자와 폭력은 가깝습니다. 시장 경제는 이 관념을 유발합니다. 남자와 폭력이 가깝기 때문에, 사이언스 판타지가 전투적인 영웅을 설정할 때, 이 영웅은 여자보다 남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단 근대 자본주의만 아니라 다른 문명들 역시 폭력적이었다고 반박할지 모릅니다. 네, 맞습니다. 고대부터 17세기까지, 인류 문명 역사는 폭력적이었습니다. 고대부터 17세기까지, 많고 많은 전쟁들은 남자들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근대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이 근대는 시장 경제, 자본주의를 가리킵니다. 자유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자유 민주주의는 지배적입니다. 우파 지식인들은 자유주의가 전쟁, 폭력, 억압에 반대한다고 지껄입니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처럼, 왜 자유주의(자본주의-시장 경제-서구 제국주의)가 20세기 대규모 전쟁들을 일으켰나요?

어떤 사람들은 소비에트 연방 역시 폭력적이었다고 반박할지 모릅니다. 네, 맞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폭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소비에트가 나타나기 전에,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기 전에, 이미 지배 계급은 파리 코뮌을 짓밟았습니다. 지배 계급이 파리 코뮌을 짓밟았던 것처럼, 서구 제국주의에서 러시아 소비에트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서구 제국주의가 러시아 소비에트를 압박했기 때문에, 소비에트 연방은 폭력에 빠졌습니다. 분명히 소비에트 연방은 호된 질책을 피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비에트 연방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는 세계 시장 경제(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해야 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는 전투적인 남자들보다 전투적인 여자들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 경제, 가부장 편견들은 사이언스 판타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남자와 폭력이 가깝기 때문에, 많은 남자들은 폭력적입니다. 비록 어떤 여자들이 폭력적이라고 해도, 여자 폭력은 남자 폭력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가부장 제도 사회에서 '강한 남자'는 정상입니다. 약한 남자는 정상이 아닙니다. 약한 남자는 그저 찌질이에 불과합니다. (이 관념은 이른바 알파 남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폭력적인 남자들을 관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남자 폭력은 너무 심각합니다.

특히, 많은 남자들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공격합니다. 물리적으로, 언어적으로, 남자들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공격합니다. 아이부터 임산부, 장애인, 감정 노동자, 성 소수자, 이주 노동자, 도시 야생 동물까지, 남자들은 폭력을 휘두릅니다. 남자들은 아이를 때리고, 장애인을 모욕하고, 임산부를 조롱하고, 야생 동물을 죽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폭력들을 관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남자와 폭력이 가깝다고 지껄이기 때문에, 많은 남자들은 그들의 폭력을 정당하다고 착각합니다. 만약 가부장적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 심각한 착각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남자들이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에, 남자와 억압 역시 떨어지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억압합니다. 남자들은 억압하고, 통제하고, 조종하고, 개입합니다. 수구 꼴통 할배들이 커다란 소리들을 버럭버럭 질러대고 여자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시장 경제에서 남자와 폭력, 억압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남자와 폭력이 너무 가깝기 때문에, 남자와 억압이 비슷한 단어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남자들이 폭력적이라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비록 남자와 폭력이 비슷한 단어라고 해도, 비록 남자들이 너무 폭력적이라고 해도, 이 폭력은 자본주의 사회를 향하지 않습니다.

비록 남자들과 억압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 억압은 시장 경제를 향하지 않습니다. 많은 남자들은 아이들을 때리고, 여자들을 세뇌하고, 동물들을 죽입니다. 하지만 많은 남자들은 자본주의를 억압하지 않습니다. 많은 남자들은 시장 경제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비록 남자들이 억압적이라고 해도, 이 억압은 이윤 축적, 자본 확장을 우회합니다. 비록 남자들이 너무 폭력적이라고 해도, 시장 경제 앞에서 남자들의 폭력은 그저 고분고분할 뿐입니다. 심지어 남자들은 시장 경제에게 충성충성~하기조차 합니다. 왜 남자 폭력이 자본주의를 향하지 않나요? 시장 경제가 이 폭력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김학준 저자는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썼습니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이미 일베들이 일상이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이 서적은 일베들이 성 차별을 부각한다고 지목합니다. 왜 일베들이 다른 차별들보다 성 차별을 부각하나요? 다른 노동들보다 육아, 돌봄 노동이 문명을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시장 경제는 육아를 무시합니다. 여자가 육아 노동자이기 때문에, 시장 경제에서 여자는 그저 2등 시민에 불과합니다. 모스라보다 울트라맨이 유명한 것처럼, 여자보다 남자는 중요합니다. 남한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남한이 가부장 제도 사회이기 때문에, 일베들은 여자들을 차별하는지 모릅니다.


남한이 자본주의 사회이고, 시장 경제가 악랄한 가부장 편견들을 유발하고, 일베들이 일상, 표준이 되었기 때문에, 성 차별 역시 일상, 표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시장 경제와 성 차별이 아무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특히, 우파 경제학자들은 시장 경제와 성 차별이 아무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주장할 겁니다. 네, 좋습니다. 문화 해석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소설 독자들이 여러 해석들을 제시할 수 있는 것처럼, 문화 해석들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시장 경제와 성 차별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 경제, 이 가부장 제도는 육아, 돌봄 노동을 착취합니다.

 

 

4. 결론: 사회적인 육아, 에코 페미니즘

 

시장 경제와 성 차별이 이어지든, 떨어지든, 시장 경제가 공공 육아를 거부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는 육아, 돌봄을 착취합니다. 문화 해석들과 상관없이, 시장 경제는 여자들을 착취합니다. 시장 경제는 '착취'입니다. 그래서 인류 문명은 시장 경제를 타파해야 합니다. 인류 문명은 시장 경제를 타파하고 공공 육아를 실천해야 합니다. 정희진은 여성학 연구원입니다. 정희진 연구원은 남자들 역시 육아, 돌봄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공 육아, 돌봄 노동 사회화는 그저 도덕, 윤리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공공 육아, 돌봄 노동 사회화는 비단 윤리일 뿐만 아니라 제도 역시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여자들이 사회 활동으로 진출한다고 해도, 이 대안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자들이 사회 활동으로 진출한다고 해도, 공공 육아, 돌봄 노동 사회화 없이, 여전히 여자들은 (개인적인) 육아, 가사에 종속될 겁니다. 여자들이 사회 활동과 육아 노동을 담당하기 때문에, 여자들은 훨씬 커다란 고통에 빠질 겁니다. '여자-사회 활동'은 충분한 대안이 아닙니다. 정희진 연구원은 에코 페미니즘을 언급합니다. 에코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짜 대안은 공공 육아, 돌봄 노동 사회화입니다. '여자-사회 활동'과 '돌봄 노동 사회화'가 만날 때, 시장 경제, 가부장 편견들은 사라질지 모릅니다.

 

 

거다 러너는 가부장 제도가 여자의 재생산을 소유한다고 주장합니다. 가부장 제도가 여자를 소유물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많은 남자들은 여자들을 소유물이라고 착각합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세뇌하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이것(남자는 여자를 소유한다)은 지상 과제가 됩니다. 만약 남자가 이 지상 과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남자는 좌절할 겁니다. 만약 남자가 여자를 소유하지 못한다면, 남자는 좌절할 겁니다. 남자와 폭력이 가깝기 때문에, 좌절한 남자는 폭력을 휘두를 겁니다. "만약 내가 여자를 소유하지 못한다면, 나는 여자를 파괴할 거야!" 사회적인 육아는 이 지상 과제를 막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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