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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미래의 이브>와 소프트 생체 로봇 본문

SF & 판타지/스팀펑크, 사이언스 판타지

<미래의 이브>와 소프트 생체 로봇

OneTiger 2018. 1. 28. 20:46

[이런 소프트 생체 로봇이 투박하고 묵직한 증기 기관 스팀펑크와 어울릴 수 있을까요.]



키스 로버츠가 쓴 <파반>은 증기 자동차를 표지 그림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나라 번역판은 굳건한 증기 자동차가 굴뚝에서 연기를 뭉클뭉클 뿜는 그림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번역판 이외에 다른 판본들 역시 증기 자동차를 빼먹지 않아요. 각자 차이는 있으나, 다들 증기 자동차가 전진하는 장면을 보여주죠. <파반>은 카톨릭이 영국을 지배하는 대체 역사이고, 어떤 판본들은 종교 전쟁을 보여줍니다. 사실 소설 속에서 진정한 봉사를 위해 성직자들이 고군분투하는 장면들이 나오고요.


그렇다고 해도 증기 자동차가 <파반>에서 상징적인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겠죠. 비단 <파반>만 아니라 수많은 스팀펑크들은 묵직하고 강력하고 튼튼한 증기 장비들을 동원합니다. 자동차, 선박, 비행선, 열차, 로봇, 보행 병기, 잠수함, 도시. 심지어 스팀펑크 작가들은 증기 괴수 로봇(!) 같은 설정을 상상할 수 있어요. 저는 <파반>이 유명한 스팀펑크 소설이고, 이런 증기 장비의 로망을 아주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키스 로버츠는 증기 자동차에 심혈을 기울였고, 증기 장비들에 로망을 느끼는 독자는 <파반>을 한 번쯤 읽어야 할 겁니다.



덕분에 스팀펑크 소설에 등장하는 장비들은 투박하고 딱딱하고 무겁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빠르고 가볍게 보이는 장비들 역시 존재하겠으나, 일반적인 인상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이게 개인적인 소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팀펑크 소설들을 비롯해 각종 만화들, 영화들, 테이블 및 비디오 게임들은 육중한 증기 장비들을 자랑합니다. 열차나 함선이나 보행 전차는 당연히 무겁게 보일 겁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나 다른 하위 장르들이 묘사하는 열차나 함선이나 보행 전차 역시 묵직하죠.


하지만 스팀펑크는 구시대적인 기술을 이용해요. 그래서 그런 묵직하고 투박한 인상이 훨씬 짙은 것 같아요. 어쩌면 어떤 독자들이나 작가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스팀펑크 역시 빠르고 가볍고 부드러운 인상을 풍길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몰라요. 하지만 허버트 웰즈가 쓴 고전적인 소설부터 <모털 엔진> 같은 소설까지 살펴본다면, 가볍고 빠르고 부드러운 인상을 찾기가 어려울 겁니다. 온갖 만화들, 영화들, 게임들은 그런 인상을 더욱 강조하고요. <모털 엔진>이나 <강철 의회> 같은 소설들은 묵직하고 튼튼하고 억센 도시들이나 열차들을 선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소프트 로봇 때문입니다. 소프트 로봇은 별로 익숙한 개념이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리고 로봇 산업계 역시 하드 로봇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소프트 로봇은 문자 그대로 부드러운 로봇입니다. 하드 로봇이 딱딱하고 단조롭게 움직인다면, 소프트 로봇은 훨씬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어요. 금속보다 실리콘이나 고무나 천, 폴리머 등을 더 많이 사용하고요. 소프트 로봇은 하드 로봇이 접근하지 못하는 구조나 의료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소프트 로봇은 하드 로봇에게 많이 밀리나, 언젠가 소프트 로봇이 대세가 될지 모르죠.


소프트 로봇, 하드 로봇, 하드-소프트 혼합 로봇이 함께 활약할지 모릅니다. 심지어 생체 조직을 이용한 생체 로봇이 등장할지 모르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생체 소프트 로봇은 가능성이 없는 상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세포 조직 공학 로봇은 생체 로봇으로 이어질지 모르고요. 기계 공학보다 생체 장비를 좋아하는 SF 독자는 소프트 로봇에게 흥미를 보여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생체 장비나 개조 동물, 생체 우주선이 소프트 로봇과 똑같지 않다고 해도, 커다란 접점이 있을 겁니다. 하버드 대학의 키트 파커 교수가 만든 유명한 가오리 로봇은 동물의 살아있는 세포들을 이용했죠. 이건 진짜 생체 로봇일 겁니다.



스팀펑크 작가는 이런 소프트 로봇을 스팀펑크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요. 음, 스팀펑크와 소프트 로봇은 별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지 모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팀펑크는 부드럽고 가볍고 날렵한 인상과 거리가 멉니다. <발전기의 왕>, <파반>, <모털 엔진>, <강철 의회> 같은 소설들은 묵직하고 딱딱한 인상을 풍기죠. 그렇다고 해도 방법이 아예 없지 않을 겁니다. 이미 수많은 스팀펑크 소설들은 인조인간을 만들었습니다. 스팀펑크 작가가 고전적인 <미래의 이브> 같은 소설을 참고한다면, 소프트 로봇을 스팀펑크에 집어넣을 수 있을지 모르죠.


아마 스팀펑크 소설 속의 소프트 로봇은 일반적인 소프트 로봇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건 마치… 기괴한 개조 생명체처럼 보일지 모르죠. 어쩌면 이미 누군가가 그런 소설을 썼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허술한 지식이 안타깝군요.) 아니, <미래의 이브> 같은 소설은 소프트 로봇을 내세우는 스팀펑크 소설일지 모르겠습니다. 스팀펑크 소설에서 이미 소프트 로봇은 낯선 소재가 아닐지 모르죠. 이건 스팀펑크보다 바이오펑크에 가깝겠으나, 그렇게 세심하게 장르들을 나눌 필요는 없겠죠. 저는 스팀펑크가 육중하고 단단한 인상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개인적인 편견에 불과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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