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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마션>, 폭력적인 자본을 외면하는 SF 본문

사회주의/서구 중심주의 비판

<마션>, 폭력적인 자본을 외면하는 SF

OneTiger 2017. 9. 10. 20:00

예전에 알트 SF 잡지가 <마션>을 추천한 적이 있습니다. 알트 SF는 2015년에 한국에 나온 최고의 SF 소설을 꼽았고, <마션>이 1위에 등극했죠. 앤디 위어가 쓴 이 소설은 왜 사람들이 사이언스 픽션에 열광하는지 아주 담백하면서 깔끔하고 깊게 보여줍니다. 앤디 위어는 우주 탐사 대원이 외계 행성에서 혼자 고립되었다는 상황을 설정합니다. 아주 긴박하고 앞이 캄캄해지는 위기입니다. 이 탐사 대원은 도저히 생존하지 못할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외계 행성에서 혼자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 순간, 믿지 못할 마법이 펼쳐집니다. 이건 정말 마법처럼 보입니다. 탐사 대원은 몇몇 장비들을 이용해 주거지를 만들고,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실험적인 식물들과 응가를 조합하고, 순환 장치를 고치고, 주변을 탐험하고, 지구와 통신하고, 기타 등등 수많은 마법들을 펼칩니다. 탐사 대원은 과학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듯합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은 이런 장면들에 매료되었을 겁니다. 순수한 이성으로 극단적인 위기에서 생존을 추구하고 마침내 더 나은 삶을 이룩하는 과정…. 게다가 그 이성을 빛내는 장본인은 우주 탐사 대원이고, 배경은 외계 행성입니다. <마션>은 곳곳에서 찬란한 정수를 내뿜는 듯합니다.



어떤 독자들은 <마션>이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 독자들은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말할지 몰라요. <마션>은 너무 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 특유의 전복적인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사실 <쿼런틴>이나 <타임십>이나 <별의 계승자> 같은 소설들과 달리 이 소설은 뭔가를 뒤집거나 세상을 바꾸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이성과 과학을 뽐내지만, 결국 기존의 세계에 무사히 정착합니다. 결국 그게 목표였죠. 아무리 주인공이 외계 행성에서 혼자 온갖 감성들을 느낀다고 해도 결론은 뻔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전형적인 사이언스 픽션보다 테크노 스릴러처럼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마션>은 이성과 과학이 걸어온 길에 무궁무진한 찬사를 보냅니다. 인류는 과학 기술을 이용해 혁신을 일으켰고 온갖 새로운 것들을 이룩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인류를 더 나은 세상으로 안내했고 마침내 인류가 지구에서 벗어나고 외계 행성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마션>은 혼자 분투하는 우주 승무원을 통해 이런 눈부신 업적을 보여줍니다. 이 정도면 왜 알트 SF가 1위로 추천했는지 알 수 있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앤디 위어는 우주 승무원이 무슨 과학 지식으로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 열심히 묘사합니다. 하지만 우주 승무원을 구출하기 위해 국제 정세를 너무 낭만적으로 그렸어요. 소설 속에서 전세계는 화성에서 생존하는 우주 승무원을 위해 기도하고 염원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화제는 저 우주 승무원이고, 모든 사람들이 우주 승무원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미 지구에는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죽도록 고생하나, 거대한 기득권들은 그런 사람들을 철저하게 짓밟습니다. 거대 자본들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빈민들을 양산하고, 서민들과 중산층은 거대 자본들에게서 떡고물을 얻기 위해 다툽니다. 많은 사람들은 거대 자본들이 빈민들을 짓밟고 자연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사실을 무시합니다. 자신이 떡고물을 받아먹을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자연 환경이 오염되어도 거대 자본들을 찬양합니다. 세상은 이미 이렇게 돌아가는 중입니다. 이 세상에는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고 많습니다.



하지만 <마션>은 그런 현실을 외면합니다. 강대국들은 화성에서 생존하는 우주 승무원 하나를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퍼붓지만, 지구에서 생존하는 10억 명은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강대국들이 우주 승무원을 구출하는 과정은 감동적이지만, 그 감동 아래에는 엄청나게 오염되는 자연 환경이 있습니다. <마션>은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런 현실을 철저하게 외면합니다.


아, 물론 작가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일부러 시야를 좁혔을지 모릅니다. 순수하게 과학과 이성을 찬미하기 위해 상황을 단순하게 설정했을지 모릅니다. SF 소설이 현실을 무조건 그대로 반영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저는 작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학적인 재미를 추구한다면, 현실을 보다 단순하게 왜곡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 역시 <마션>이 재미있고 좋은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순수하게 사이언스 픽션을 즐기고 싶다면, 저는 <마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겠더군요. 저는 사이언스 픽션이 너무 자연 과학에만 치중하지 말고 사회 과학과 인문학까지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마션>은 휴고 건즈백 같은 소설이 될 수 있으나, 허버트 웰즈나 메리 셸리나 쥘 베른 같은 소설은 되지 못하겠죠. 저는 허버트 웰즈나 메리 셸리 같은 소설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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