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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리포맨>과 근미래 디스토피아들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리포맨>과 근미래 디스토피아들

OneTiger 2018. 5. 21. 19:01

[디스토피아는 이런 거대 도시를 강조합니다. 어떻게 이런 거대 도시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요?]



소설 <리포맨>은 장기 이식 해결사들을 그렸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생체 공학 회사들은 인공 장기를 개발하고, 사람들에게 이식합니다. 인공 장기를 이식한 사람들은 삶을 연장할 수 있고, 병마나 노화와 싸울 수 있어요. 당연히 다들 인공 장기를 이식하기 원합니다. 문제는 이게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대금을 갚지 못한다면, 해결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추적하고 심지어 인공 장기들을 뜯어갑니다.


해결사들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주저하지 않고 인공 장기를 뽑아요. 그런 해결사들은 리포맨이라고 불리고, 사람들은 리포맨들을 두려워하죠. 아마 소설을 읽지 않은 SF 독자들 역시 <리포맨>이 무슨 내용을 담았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미래 도시와 첨단 과학, 생명 윤리, 탐욕스러운 대기업, 비정한 산업을 이야기하는 SF 소설들은 숱합니다. 그런 것이 주제가 아닌 <쿼런틴> 같은 소설조차 미래 도시, 첨단 과학, 생명 윤리, 비정한 산업을 줄줄이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이미 현실에서 우리는 그런 비윤리적인 상황을 겪는 중이죠.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이 끔찍하고 폭력적인 자본주의를 그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미래 도시 디스토피아와 자본주의는 떨어지지 못하는 관계입니다. 윌리엄 깁슨이 그랬고 필립 딕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수많은 SF 작가들은 탐욕적인 대기업과 불쌍한 빈민들을 그립니다. 미래 도시 디스토피아는 자본주의를 경고하는 강력한 상징입니다. <리포맨>에서 대금을 얻기 위해 회사들은 해결사들을 고용하고, 해결사 리포맨들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장기를 뜯어갑니다. 대금을 위해, 이윤을 위해, 돈을 위해 회사들은 생명조차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생명 역시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치를 떨겠죠.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윤리적으로 분노할 뿐이고, 경제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는 꽤나 이상한 현상입니다. 자본주의는 경제 체계입니다. 자본주의를 깊이 분석한 <자본론>은 (정치) 경제학 서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비윤리적인 행위에 치를 떨 뿐이고, 이걸 경제적으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런 심각하고 끔찍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사람들은 그저 윤리에 머물지 말고 경제를 들여다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윤리적인 세태만 떠들고, 경제적인 부분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회사 경영자들이 더 착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회사들이 인공 장기를 뜯어가는 이유는 대금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죠. 따라서 아무리 사람들이 윤리적인 이유를 들먹거려도 회사들은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윤리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죠. 본질은 경제입니다. 대금, 이윤, 돈 때문이죠. 윤리 역시 중요한 문제이나, 핵심이 아니에요.


따라서 <리포맨>을 보고 윤리 운운하는 사람들은 헛다리를 짚었습니다. 경제는 윤리보다 중요합니다. 회사들은 윤리를 따지지 않아요. 이윤을 따지죠. 이윤을 걸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 핵심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윤리에만 매달리고 이윤에 매달리지 않아요. 어쩌면 그들은 자본주의를 타파하지 않기 원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뻔한 경제적인 문제를 놔두고, 그렇게 윤리에 매달리겠죠. 자본주의를 지키고 싶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유일한 해답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하지만 그건 광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행위죠.



게다가 자본주의가 무엇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자본주의가 황금 만능주의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세계화, 신자유주의, 서구 문명, 근대화 같은 용어들을 자본주의에 덧붙이죠. 하지만 서구 문명이 무조건 나쁠까요? 근대화가 무조건 나쁠까요? 세계화가 무조건 나쁠까요? 자본주의 이전에는 탐욕이 존재하지 않았나요? 이 블로그에서 저는 서구적인 근대화를 많이 비판했으나, 그 이유는 서구적인 근대화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자본주의를 제대로 비판하고 싶다면, 무엇이 자본주의인지 알아야 할 겁니다. 하지만 숱한 사람들은 어설프게 황금 만능주의나 세계화나 근대화를 떠들고, 더 이상 자세히 분석하지 않죠.


자본주의는 그런 단순한 요소가 아닙니다. 현대 인류 문명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아요. 소수 자본가가 수많은 생산 수단들을 차지하고, 다수 임금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상품들을 생산하고, 상품들을 시장에서 판매하고, 그런 시장 경제가 사회를 장악하고, 화폐들이 재화들을 매개할 때, 마침내 우리는 그걸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구조를 살피지 않고, 그저 황금 만능주의만 운운해요. 아마 그래서 그렇게 윤리 타령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뭐라고 말하는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SF 창작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디스토피아 소설들, 만화들, 영화들, 게임들이 존재합니다. SF 울타리 안에서 근미래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는 크게 인기를 끄는 소재입니다. 당장 도서관에서,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스팀 플랫폼에서 우리는 디스토피아 소설들, 만화들, 영화들, 게임들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숱한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야기하는 창작물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는 디스토피아 창작가들이 자본주의를 깊게 분석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창작물들을 정말 현실적으로 비평하고 싶다면, 피상적인 담론에서 머물지 말아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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