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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왜 <프로스트펑크>에서 인류가 대재난에 대처하지 못했나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왜 <프로스트펑크>에서 인류가 대재난에 대처하지 못했나

OneTiger 2018. 5. 17. 19:11

[문자 그대로 혹독한 스팀펑크 사회. 왜 시민들이 이런 재난에 미리 대처하지 못했을까요.]



존 브러너가 쓴 <양들은 올려다본다>는 환경 아포칼립스입니다. 이 소설에서 현대 사회는 생태적인 재앙에 직면했습니다. 환경 오염은 사람들을 피폐한 삶으로 몰아가고, 질병들과 굶주림은 폭동을 부릅니다. 사람들은 대대적인 폭동을 일으키고, 사회 전체가 아수라장에 빠져요. <양들은 올려본다>는 이런 생태적인 재앙을 통해 환경 운동가들과 뉴웨이브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0년대 서구 사회에서 녹색당이나 환경 운동은 크게 부흥했고, <양들은 올려다본다> 같은 소설 역시 그런 흐름에 속할 겁니다.


아마 <양들은 올려다본다>는 어떻게 SF 소설이 사회 문제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일 겁니다. 동시에 존 브러너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환경 오염을 막지 못하고 악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소설 주인공은 심각한 위기를 예측하고 이를 막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단기적인 매출에 매달리고, 정치인들은 그런 대기업들을 지지합니다. 대기업들과 정치인들이 밀착하는 상황에서 소설 주인공은 사회적인 안전망을 강화하지 못하고 환멸을 느낍니다.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을 악화시키는 주범입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19세기 이후 산업 혁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미 유럽 강대국들이 다른 부족민들을 침략했을 때부터 자본주의 체계는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대항해 시대 이후 상업 자본주의는 점차 힘을 키웠고, 부르주아 계급은 지배 계급으로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19세기 이후, 자본주의 체계는 산업 혁명과 함께 대규모 산업 자본주의로 발전하고, 숱한 부작용들과 환경 오염들을 쏟았습니다. 이미 19세기 유럽 사람들 역시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토양을 침식시키거나 질병을 퍼뜨리거나 폐기물들을 함부로 버린다고 인식했습니다.


산업 폐기물들이 넘치고 강물이 오염되고 토지가 침식된다고 해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단기적인 이윤을 쫓아요. 공장들이 지독한 매연으로 도시를 뒤덮어도, 대기업들은 공중 위생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20세기 이후, 이런 환경 오염은 핵 폐기물과 대대적인 생물 다양성 감소와 기후 변화로 이어졌죠. 사람들은 국가 정부가 대기업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국가 정부는 막대한 수익을 원하고, 대기업들이 수익을 보장한다면, 국가는 대기업들을 편듭니다. 고대 국가나 중세 국가를 비롯해 근대 국가 역시 인민들을 제대로 편든 적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양들은 올려다본다>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우리는 평등한 사회를 준비해야 할 겁니다. 생태적인 재난이 닥친다면,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회적인 안전망을 강화하고 싶다고 해도, 대재난이 사회 인프라를 무너뜨린다면, 우리는 아비규환에 빠질 겁니다.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는 그걸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볼셰비키 전위 정당은 노동자 국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과 적백 내전은 러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결국 볼셰비키는 소비에트 노선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수많은 사회 복지들을 실현했으나, 그건 공산주의가 꿈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었어요. 따라서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준비해야 할 겁니다. 사회적인 안전망을 위해 우리는 더 이상 대기업들과 국가 정부에 기대서는 안 될 겁니다. 거대한 권력이 소수에게 쏠리지 않도록, 우리는 거대 권력을 작게 쪼갤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자본주의 체계에서 그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대기업들이 엄청난 권력을 움켜쥐고, 그걸 내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 정부는 그런 대기업들을 편들고요. 그래서 아무리 세계 지도자들이 회담을 준비해도, 기후 변화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비디오 게임 <프로스트펑크>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스트펑크>에서 무시무시한 혹한은 모든 것을 얼리고, 사람들 역시 죽어나갑니다. 국가는 무너졌고, 도시는 얼어붙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소수 생존자들은 간신히 발전기를 세우고, 발전기를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해요. 게임 플레이어는 도시 지도자가 되고, 영하 100도의 지옥 같은 추위 속에서 최대한 도시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들은 자꾸 유혹에 빠집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노동자들을 수탈하거나, 아동 노동자들을 양산하거나, 독재 정치를 추구하거나, 몹쓸 음식들을 배급하거나, 사상들을 억압합니다.


이미 대재난이 닥친 상황에서 아무리 게임 플레이어가 좋은 사회를 이끌고 싶어도 그건 이미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왜 대재난이 닥치기 전에 사람들이 준비하지 못했을까요? 왜 국가 정부들이 대재난을 숨겼을까요? <양들은 올려다본다>와 달리, <프로스트펑크>는 환경 아포칼립스가 아닙니다. 하지만 <프로스트펑크>에서 무시무시한 혹한이 지구를 덮침에도, 국가 정부들은 그걸 숨기느라 급급했습니다. 여타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이 그런 것처럼 만약 사람들이 함께 논의하고 준비했다면, 사람들은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국가 정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양들은 올려다본다>처럼 <프로스트펑크>에서 국가 정부들은 자본주의 체계와 국가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사람들이 함께 재난에 대비하고 싶다면, 각자 조금씩 권력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 정부는 그런 사회를 원하지 않았겠죠. 국가 정부는 계속 대기업들에게 권력을 맡기고 싶어했겠죠. <프로스트펑크>는 이런 이야기를 자세히 늘어놓지 않으나, 다양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들을 고려한다면, 저는 <프로스트펑크>에서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구태여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을 고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현실 속에서 그런 사례들을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게임 제작진이 <프로스트펑크>에 현실적인 설정을 집어넣고 싶다면, 게임 제작진은 어떻게 자본주의 체계와 국가 이데올로기가 재난을 악화시키는지 고민해야 할 겁니다. 이는 게임 제작진이 자본주의와 국가를 적극적으로 부정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마르크스주의 작가가 디스토피아 소설을 쓴다고 해도, 작가가 무조건 마르크스주의를 소설에 집어넣어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처럼 <프로스트펑크> 게임 제작진에게 무조건 자본주의와 국가를 부정할 의무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게임 제작진이 정말 현실적인 설정을 구현하고 싶다면, 자본주의와 국가를 간과하지 못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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