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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일곱 번째 남편>과 사회 구조 변화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일곱 번째 남편>과 사회 구조 변화

OneTiger 2018. 5. 6. 11:03

※ 소설 <일곱 번째 남편>의 결말 누설이 있습니다.




서재우가 쓴 <일곱 번째 남편>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단편 소설입니다. 대재난 때문에 인류는 더 이상 지상에서 살지 못하고 지하로 대피합니다. 지하에서 삶은 팍팍했고, 자원이 매우 모자랐습니다. 그때 누군가는 꾀를 냈고, 인류는 사회 구조를 바꿉니다. 더 정확히 말해 결혼 생활이 바뀌었죠. 이제 더 이상 일부일처(문제가 많은 용어죠.) 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년들은 언제 자신이 결혼할지 기다리고, 게다가 꽤나 일찍 결혼하는 듯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왜 소년들이 결혼하는 날짜를 기다리는 걸까요?


자유 연애나 중매는 없는 것 같습니다. 중앙 정부가 부부를 추첨하는 것 같고, 추첨에 따라 누군가는 아내가 되고 누군가는 남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디스토피아 소설들에서 독재 정부들은 결혼이나 연애를 통제합니다. <우리들> 같은 소설은 이미 강력한 정부가 결혼을 통제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죠. <일곱 번째 남편> 역시 그런 소설일까요. 중앙 정부가 아내와 남편과 성 생활을 통제할까요? 하지만 왜? 그런 통제가 지하 대피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작가는 결혼을 앞둔 소년에게 주목하고, 점차 실체를 드러냅니다.



<일곱 번째 남편>은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사람들이 극단적인 방법에 다다랐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 자체는 딱히 특별한 발상이 아닙니다. 숱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들은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내놓습니다. 내용 누설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례를 꼽기 어려우나, 그런 부류의 소설들은 많고 많습니다. 구태여 제가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지 않아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조금 아는 독자는 무슨 소설들이 있는지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멸망한 세상에서 굶주림은 가장 큰 문제가 되고,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마다하지 않아요.


심지어 사람들은 돌연변이 괴물을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은 돌연변이 괴물이 걸어다니는 고깃덩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기를 얻고 괴물을 죽일 수 있다면, 돌연변이 괴물은 훌륭한 식량이 되겠죠. <일곱 번째 남편>은 그런 지경에 이르지 않으나, 영양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시도합니다. 작가는 결혼 생활을 이용해 그런 방법을 드러내고, 그래서 이 소설이 충격적으로 보이겠죠. 그런 방법이 정말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할지 의문이나, 엄중한 고증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희생이죠.



이런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독자들은 인상을 찡그릴 겁니다. 지하 인간들은 더 이상 세련되고 고상한 문명인이 아닙니다. 사회 전체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생존을 위해 사람들은 기이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건 현실 속의 독자가 수긍하지 못하는 방법이죠. 게다가 이는 착취나 억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중앙 정부가 결혼을 강제로 밀어붙인다면, 결혼하기 원하지 않는 사람을 억압할지 몰라요. 그래서 몇몇 소년은 지하에서 더 이상 살지 않고 지상으로 도망쳤을 겁니다. 지상은 살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나, 도망친 소년들은 지하보다 지상이 낫다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생존을 위해 사회는 얼마든지 기이하게 바뀔 수 있고, 그런 기이한 사회는 (세련되고 고상한) 현대 문명과 엄청난 괴리를 보일 겁니다. 그런 괴리 속에서 독자는 충격을 느끼고, 인간의 진정한 측면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겠죠. 중요한 것은 <일곱 번째 남편>에서 소설 주인공이 사회 구조를 별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결혼을 바라고 어서 아내를 만나기 바랍니다. 강제 추첨 결혼은 분명히 억압이고 착취일지 모르나, 소설 주인공은 그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그래서 독자는 훨씬 충격을 받을지 모르죠.



<일곱 번째 남편>을 읽은 후,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인류가 이런 대재난에 좀 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까?" 누군가는 인류가 고작 잔머리를 굴리는 동물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류 사회는 분명히 엄청난 과업을 이룩할 수 있고, 대재난에 좀 더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대재난을 막지 못한다고 해도, 현대 문명은 사회적인 안전망을 크게 강화할 수 있어요. 대재난 이후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현대 인류 문명은 여러 준비들을 시도할 수 있죠.


하지만 인류 사회가 그렇게 대처하고 싶다면, 먼저 사람들은 평등하게 서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몇몇 소수가 이득을 챙기고 다수를 착취하는 상황 속에서 인류 사회가 대재난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겠어요? 단기적인 이득을 위해 소수 지배 계급이 귀중한 자원을 낭비한다면, 당연히 인류 사회는 대재난에 얻어맞고 휘청거릴 겁니다. 대재난 이후 계속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고 싶다면, 먼저 우리는 평등한 사회 구조를 이룩해야 할 겁니다. 단기적인 이득을 위해 소수 지배 계급이 함부로 자원을 낭비하지 못하도록, 약자들 역시 권력을 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곱 번째 남편>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나, 대재난은 정말 인류 사회를 두들길 수 있을 겁니다. 기후 변화는 아주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죠.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그런 경고가 들어맞을지 모릅니다. 이미 기후 변화가 전환점을 지났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인 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자원을 신나게 낭비하고,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그런 대기업들을 신나게 빨아주고, 비정규직들은 먹고 살기 바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적인 안전망이 강화되겠어요. 대재난에 대처하고 싶다면, 먼저 우리는 자본주의를 끝장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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