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리바이브>, 새로운 사회와 자연(공유지 경제)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리바이브>, 새로운 사회와 자연(공유지 경제)

OneTiger 2024. 4. 7. 08:00

[도덕, 기술, 노동보다 자연(공유지 경제)은 중요합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 문장은 '새로운 사회가 오래된 이념을 버리고 새로운 이념을 추구한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이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이념을 연결한다고 동의할 겁니다.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이념이 만나기 때문에,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 문장과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어울립니다. 어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떻게 이 문장과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어울리나요? 만약 어떤 허구(픽션)들이 인류 문명이 무너진다고 묘사한다면, 이 허구(픽션)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속할 겁니다. 이 범주(장르)에서 멸망한 문명은 주된 주제입니다.

 

인류 문명이 멸망하기 때문에, 생존자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원합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 문장처럼, 새로운 사회에게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합니다. 생존자들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이념을 추구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이건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마가렛 앳우드는 <홍수의 해>를 썼습니다. 이 소설은 환경 아포칼립스, 바이오펑크입니다. 인류 문명이 무너졌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신의 정원사들)는 새로운 이념(생태주의)을 추구합니다. <홍수의 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새로운 사회가 새로운 이념을 추구한다고 묘사합니다.



<시드 마이어의 알파 센타우리>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이 비디오 게임은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이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인류 문명은 무너집니다. 인류 문명이 무너지기 때문에, <알파 센타우리>는 비단 스페이스 오페라만 아니라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기도 합니다. 부패한 지구에서 생존자들은 벗어납니다. 카이론 외계 행성에서 그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합니다. 가이아의 수양딸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사회는 오래된 이념(시장 경제)을 버리고 새로운 이념(녹색 경제)을 추구합니다. <아나크로니>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건 보드 게임입니다. 아…, 이 보드 게임에서 인류 문명은 무너집니다.

 

인류 문명이 무너진 이후, 생존자들은 새로운 사회들을 건설합니다. 이 사회들은 조화(하모니)를 포함합니다. 새로운 사회로서, 조화(하모니)는 오래된 이념(시장 경제)을 버리고 새로운 이념(어머니 자연)을 추구합니다. <홍수의 해>, <알파 센타우리>, <아나크로니>가 보여주는 것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이념이 만난다고 묘사합니다. <리바이브>는 다르지 않은지 모릅니다. 이 보드 게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아…, 인류 문명이 무너진 이후, 생존자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원합니다. 새로운 사회에게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중요한 이념인가요?



어쩌면 자연은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이념으로서, 새로운 사회에게는 자연이 필요합니다. 어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새로운 사회에게 (새로운 이념으로서) 자연이 필요한가요? 어떤 사람들은 자연보다 도덕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은 이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도덕은 좋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게 좋은 사회를 위한 토대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무리 도덕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 자체로서, 이게 존재하나요? 그 자체로서, 보편적인 윤리가 존재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문명 역사는 계급 투쟁 역사입니다.

 

마가렛 앳우드는 소설가입니다. 소설가로서, 마가렛 앳우드에게 소설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건 소설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가렛 앳우드는 인간입니다. 인간으로서, 이 소설가는 동물입니다. 동물로서, 이 소설가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로서, 이 소설가는 영양분들을 섭취합니다. 만약 마가렛 앳우드가 영양분들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육체를 유지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음…, 마가렛 앳우드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 인간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소설을 쓰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소설보다 영양분들은 훨씬 중요합니다.



만약 마가렛 앳우드가 영양분들을 섭취한다면, 육체를 유지하기는 가능할 겁니다. 이게 가능하기 때문에, 마가렛 앳우드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인간이 살아가기 때문에, 소설을 쓰기는 가능합니다. 이게 가능한 것처럼, 소설보다 영양분들은 훨씬 중요합니다. 아무리 마가렛 앳우드가 소설가라고 해도, 생명체로서, 이 소설가에게 소설보다 영양분들은 훨씬 중요합니다. 어떻게 마가렛 앳우드가 영양분들을 섭취하나요? 먹거리는 가장 쉬운 대답입니다. 김밥은 먹거리입니다. 만약 마가렛 앳우드가 김밥을 먹는다면, 영양분들을 섭취하기는 가능할 겁니다. 이 소설가에게 김밥은 훨씬 중요합니다.

 

마가렛 앳우드가 김밥을 좋아하나요, 아니면 싫어하나요? 비록 이 소설가가 김밥을 싫어한다고 해도, 이건 먹거리입니다. 김밥처럼, 샌드위치는 먹거리입니다. 샌드위치처럼, 라자냐는 먹거리입니다. 라자냐처럼, 부리토는 먹거리입니다. 만약 마가렛 앳우드가 김밥을 싫어한다면, 이 소설가는 (김밥보다) 샌드위치, 라자냐, 부리토를 먹을 수 있습니다. 비록 마가렛 앳우드가 샌드위치, 라자냐, 부리토를 싫어한다고 해도, 이 소설가에게는 먹거리가 필요합니다. 먹거리 없이, 마가렛 앳우드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 인간처럼, 다른 인간들은 똑같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먹거리들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사회에게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합니다. '자연'은 이 이념이 될 수 있습니다.]



<데굴데굴 STUDIO>는 유튜브 채널입니다. 이 채널에서 가이오트님은 보드 게임들을 설명합니다. 유로 게임부터 테마 게임까지, 가이오트님은 많은 게임들을 설명합니다. 이 게임 전문가에게 보드 게임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건 보드 게임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이오트님은 인간입니다. 인간으로서, 가이오트님은 동물입니다. 동물로서, 이 게임 전문가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로서, 이 전문가는 영양분들을 섭취합니다. 만약 가이오트님이 영양분들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육체를 유지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음…, 가이오트님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 인간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보드 게임들을 설명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보드 게임보다 영양분들은 훨씬 중요합니다. 만약 가이오트님이 김밥을 먹는다면, 영양분들을 섭취하기는 가능할 겁니다. 이게 가능하기 때문에, 가이오트님은 육체를 유지합니다. 이게 가능하기 때문에, 가이오트님은 살아갑니다. 이 게임 전문가가 살아가기 때문에, 보드 게임들을 설명하기는 가능합니다. 이게 가능하기 때문에, 보드 게임보다 김밥은 훨씬 중요합니다. 가이오트님이 김밥을 좋아하나요? 비록 이 게임 전문가가 김밥을 싫어한다고 해도, 김밥은 먹거리입니다. 만약 가이오트님이 김밥을 싫어한다면, 이 게임 전문가는 라자냐를 먹을 수 있습니다. 비록 가이오트님이 라자냐를 싫어한다고 해도, 이 게임 전문가에게는 먹거리가 필요합니다.



먹거리 없이, 가이오트님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 인간처럼, 다른 인간들은 똑같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먹거리들이 필요합니다. 먹거리는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재화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 재화를 얻나요? 하늘에서 먹거리가 뚝~ 떨어지나요? 허공에서 이 재화가 번쩍~ 나타나나요? 그건 아닙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먹거리들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생태학자들은 자연 생태계가 먹이 그물망이라고 설명합니다. 적어도, 양쪽은 비슷한 위상이 될 수 있습니다. 기름진 대지에서 식물들은 성장합니다. 사슴은 식물들을 먹습니다. 재규어는 사슴을 사냥합니다. 재규어가 죽은 이후, 미생물들은 이 동물을 분해합니다. 죽은 재규어는 대지로 돌아갑니다.

 

기름진 대지에서 식물들은 성장합니다. 사슴은 식물들을 먹습니다. 이 순환 과정처럼, 자연 생태계는 먹이 그물망입니다. 비단 현재 생태계만 아니라 선사 생태계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아파토사우루스부터 메간테레온까지, 현재 생태계처럼, 선사 생태계들은 먹이 그물망들입니다. 이건 자연이 먹거리들을 선사한다는 뜻입니다. 먹거리가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재화이기 때문에, 자연이 먹거리를 선사하기 때문에, 자연은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가 됩니다. 도덕보다 자연은 훨씬 원초적인 토대가 됩니다. 자연이 원초적인 토대이기 때문에, 만약 어떤 인간들이 이 토대를 소유한다면, 이 인간들은 지배 계급에 속할 겁니다. 그래서 지배 계급은 존재합니다.



대지에서 식물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죽은 재규어가 대지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연과 대지는 비슷한 위상이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 자연과 대지 모신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비극적인 인클로저가 증명하는 것처럼, 피지배 계급보다 지배 계급은 대지를 소유합니다. 이건 피지배 계급보다 지배 계급이 자연을 소유한다는 뜻입니다. 자연을 소유하기 위해 지배 계급은 어떤 명분들을 주장합니다. 이 계급에게는 대지를 소유하기 위한 명분들이 필요합니다. 귀족들은 지배 계급입니다. 귀족들은 농민들보다 그들이 훨씬 고귀한 혈통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명분은 대지를 소유하기 위한 이유가 됩니다. 농민들은 귀족들을 떠받들어야 합니다.

 

만약 농민들이 저항한다면, 이건 타당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농민들이 귀족들을 떠받들지 않는다면, 이건 타당하지 않을 겁니다. 귀족들이 훨씬 고귀한 혈통이기 때문에, 농민들은 그들을 떠받들어야 합니다. 이 피지배 계급은 자연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지배 계급으로서, 농민들보다 귀족들은 자연을 소유합니다. 비극적인 인클로저가 증명하는 것처럼, 계급 사회에서 도덕, 윤리는 지배 계급을 위한 명분이 됩니다. 비단 귀족 제도(봉건 제도)만 아니라 다른 계급 사회들 역시 비슷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은 지배 계급입니다. 그들이 지배 계급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입니다. 임금 노동자들은 지배 계급에 속하지 않습니다.



자본가 계급이 지배 계급이기 때문에, 임금 노동자들은 이 계급을 떠받들어야 합니다. 비록 자본가 계급이 잉여 노동들을 착취한다고 해도, 임금 노동자들은 저항해서는 안 됩니다. "어휴~, 국가 경제가 어려운데, 귀족 노조는 파업이나 하고 처자빠졌고…." 이 비난처럼, 만약 임금 노동자들이 자본가 계급을 떠받들지 않는다면, 이건 타당하지 않을 겁니다. 이 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은 많은 자연들을 소유합니다. 이 계급과 달리, 임금 노동자들은 많은 자연들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특히, 세계화 남반구(글로벌 사우스)에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어머니 자연, 대지 모신에게 의지하지 못합니다. 이건 사회적인 불평등입니다.

 

심지어 대기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비단 대지만 아니라 대기 역시 사회적인 불평등이 됩니다. 거대 자본가 계급은 엄청난 온실 가스들을 배출합니다. 지구 대기 중에서 이 가스들은 너무 많습니다. 이 가스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지구 평균 온도는 상승합니다. 이 행성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기후들은 발생합니다. 이 재앙은 지구 가열화입니다. 자본가 계급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 위기에 빠집니다. 이건 기후 불평등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덕, 윤리가 기후 불평등을 비판하나요? 자유주의(윤리)가 자본가 계급을 비판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건 자본가 계급을 떠받듭니다.



[도덕, 윤리는 기후 불평등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기술은 어떤가요?]



비록 기후 불평등이 진지한 문제라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주의(윤리)는 자본가 계급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비록 자본가 계급이 기후 범죄자들이라고 해도, 이 윤리는 이 범죄자들을 떠받듭니다. 자유주의(윤리)가 기후 범죄자들을 떠받드는 것처럼, 계급 사회에서 도덕, 윤리는 지배 계급을 위한 명분이 됩니다. 비단 도덕만 아니라 기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2022년 12월, 핵 융합 실험은 성공했습니다. 이건 핵 융합 동력이 가능하다고 암시합니다. 만약 핵 융합 동력이 가능하다면, 인류 문명은 지구 가열화를 해결할 겁니다. 오오~, 이 동력은 기후 변화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핵 융합 동력이 지구 가열화를 해결한다고 해도, 언제 이 동력이 가능한가요? 10년? 20년? 30년?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미래학자들, 과학자들조차 장담하지 못합니다. 10년 이후, 핵 융합 동력은 가능한지 모릅니다. 아니면,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20년 이후, 핵 융합 동력은 가능한지 모릅니다. 아니면,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30년 이후, 핵 융합 동력은 가능한지 모릅니다. 아니면,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미래학자들, 과학자들은 장담하지 못합니다. 비록 그들이 장담하지 못한다고 해도, 기후 변화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기후 피해자들은 오직 미래에만 속하지 않습니다.



2024년 오늘날, 이미 기후 피해자들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 피해자들과 달리, 핵 융합 동력은 미지의 미래에 속합니다. 이 미래는 이 피해자들을 돕지 못합니다. 핵 융합 동력이 현재 피해자들을 돕지 못하는 것처럼, 기술 진보는 황금 열쇠, 만능 열쇠가 아닙니다. 도덕, 윤리가 황금 열쇠가 아닌 것처럼, 첨단 기술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건 첨단 기술들에게 아무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이 기술들은 중요합니다. 의학·보건부터 정보·통신까지, 21세기 초반, 첨단 기술들은 인류 문명을 뒷받침합니다. 이 기술들 없이, 인류 문명은 계몽주의 수준으로 퇴보할 겁니다. 이건 반동입니다.

 

이 블로그는 컴퓨터, 인터넷에게 기반합니다. 컴퓨터, 인터넷 없이, 이 블로그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비단 이 블로그만 아니라 다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 역시 똑같습니다. 컴퓨터, 인터넷은 첨단 기술들을 요구합니다. 만약 이 기술들이 진보하지 않는다면, 컴퓨터, 인터넷은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 블로그가 첨단 기술들에게 기반하는 것처럼, 이 블로그는 이 기술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 블로그는 기술 진보에게 아주 커다란 가치를 부여합니다. 우주 호위함처럼, 스페이스 오페라는 기술 진보를 과장합니다.



만약 향상된 첨단 기술들이 진보하지 않는다면, 우주 호위함은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 호위함이 가능한 것처럼, 스페이스 오페라는 기술 진보를 과장합니다. 이 블로그가 기술 진보에게 아주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가 기술 진보를 과장하기 때문에, 이 블로그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떠듭니다. 이 블로그가 스페이스 오페라를 떠드는 것처럼, 기술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무리 이게 아주 중요하다고 해도, 핵 융합 동력은 기후 피해자들을 돕지 않습니다. 2022년 12월, 많은 언론들은 핵 융합 실험이 성공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래서 이 언론들이 기후 불평등을 비판했나요?

 

그건 아닙니다. 핵 융합 실험은 커다란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실험과 달리, 기후 불평등은 커다란 화제가 되지 못합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기후 불평등을 해결하기 원한다면, 자본가 계급이 기후 범죄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비용들을 지불해야 합니다. 자본가 계급을 떠받들기 위해 도덕, 윤리는 기후 불평등을 외면합니다. 도덕, 윤리처럼, 핵 융합 동력은 기후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기술 진보가 아주 중요하다고 해도, (아무리 스페이스 오페라가 아주 중요하다고 해도) 이건 황금 열쇠, 만능 열쇠가 아닙니다. 새로운 이념으로서, 도덕, 기술은 커다란 가치를 얻지 못합니다.



만약 도덕, 기술이 커다란 가치를 얻지 못한다면, 노동은 어떤가요? 먹거리는 가장 기본적인 재화입니다. 만약 인간이 노동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얻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원시 사회부터 현재 사회까지, 노동은 가장 기본적인 활동입니다. 사냥꾼이 노동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기는 가능합니다. 채집꾼이 노동하기 때문에, 열매를 먹기는 가능합니다. 어민이 노동하기 때문에, 생선을 먹기는 가능합니다. 농민이 노동하기 때문에, 옥수수를 먹기는 가능합니다. 열매부터 옥수수까지, 이 사례들은 노동이 중요하다고 증명합니다. 이게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는 이것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노동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 자체로서, 이게 먹거리를 얻나요? 만약 자연이 풍요롭지 않다면, 나무들은 살아가지 못할 겁니다. 나무들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열매들을 얻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자연이 풍요롭기 때문에, 나무들은 살아갑니다. 나무들이 살아가기 때문에, 열매들을 얻기는 가능합니다. 풍요로운 자연에서 맛있는 열매들은 비롯합니다. 이건 자연이 먹거리들을 선사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기름진) 대지에서 나무들은 성장합니다. 이 생명체들은 (기름진) 대지에게 기반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자연은 대지 모신이 됩니다.) 이건 대지가 먹거리들을 선사한다는 뜻입니다.



[풍요로운 자연에서 동물들은 먹거리들을 얻습니다.]



풍요로운 자연에서 동물들은 먹거리들을 얻습니다. 인간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풍요로운 자연에서 인간들은 먹거리들을 얻습니다. 특히, (어머니 자연이 대지 모신이 되는 것처럼) 자연과 대지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만약 (기름진) 대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무들은 성장하지 않을 겁니다. 이 생명체들이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열매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열매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먹거리들을 얻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생태계 테라포밍을 묘사합니다.) 아~, 초월적인 공간에서 채집꾼은 노동하지 않습니다. 자연(대지)에서 채집꾼은 노동합니다.

 

이건 노동보다 자연(대지)이 우선한다는 뜻입니다. 노동보다 자연이 우선하는 것처럼, 이건 원초적인 토대입니다. 자연이 원초적인 토대이기 때문에, 만약 오직 소수 지배 계급만 많은 자연들을 소유한다면, 만약 다수 피지배 계급이 많은 자연들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후자는 전자에게 복종할 겁니다. 전자는 후자를 지배할 겁니다. 자본주의는 이것을 증명합니다. 소수 자본가 계급이 많은 자연들을 소유하기 때문에, 다수 무산자 민중들이 많은 자연들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후자는 전자에게 복종합니다. 전자는 후자를 지배합니다. 이건 자연이 사유 재산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여줍니다.



자연(대지)은 사회적인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와 달리, 공유지 경제는 자연이 사회적인 소유라고 인정합니다. 도덕, 기술, 노동보다 자연은 우선합니다. 도덕, 기술, 노동보다 자연은 원초적인 토대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공유지 경제로 이어져야 합니다. (어머니 자연은 자연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신성은 공유지 경제로 이어져야 합니다.) <리바이브>는 어떤가요? 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생존자들은 여러 이념들을 주장합니다. 이 이념들은 자연을 포함합니다. 나데어는 자연을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자연이 공유지 경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진영이 이 제도를 주장하나요?

 

저는 <리바이브>를 플레이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나데어가 공유지 경제를 주장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진영은 이 제도를 주장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저 삼림들을 조성할 뿐인지 모릅니다. 아니면, 나데어는 이 제도에 찬성하는지 모릅니다. 비록 이 진영이 공유지 경제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분명히, 자본주의는 사유 재산 제도가 타당하지 않다고 보여줍니다. 무산자 민중들이 많은 자연들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먹거리들을 얻지 못합니다. 그들이 먹거리들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빈부 격차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자본주의와 달리, 공유지 경제는 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자본주의보다 공유지 경제에서 이 문제는 감소할 겁니다.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가 공유지 경제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건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가 타당하다는 뜻입니다. 비록 나데어가 그저 삼림들을 조성할 뿐이라고 해도, 그들은 (어머니) 자연과 공산주의가 어울린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심지어 게임 제작자들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게임 제작자들은 (어머니) 자연과 공산주의가 어울린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 게임 <리바이브> 그림 출처: 데굴데굴 STUDIO,
http://www.youtube.com/watch?v=n1vYdHdmv6s

※ 사진 <…  of Trees> 출처: Max Parada Valdivia,
http://www.pexels.com/photo/low-angle-photography-of-trees-14385705/

※ 사진 <Graceful bird… > 출처: Skyler Ewing,
http://www.pexels.com/photo/graceful-bird-eating-berry/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