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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던전 앤 파이터>가 선보이는 방대한(?) 설정 본문

SF & 판타지/스팀펑크, 사이언스 판타지

<던전 앤 파이터>가 선보이는 방대한(?) 설정

OneTiger 2018. 7. 21. 19:00

[스팀펑크와 사이언스 판타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메카닉 클래스. 이게 무엇을 위한 설정일까요.]



비디오 게임 <던전 앤 파이터>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여러 캐릭터들 중 하나를 고르고, 횡스크롤 액션을 이용해 적들과 싸우고, 경험치와 레벨을 올리고, 장비들을 수집합니다. 고전적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 가령, <더블 드래곤>이나 <골든 액스>와 달리, <던전 앤 파이터>는 횡스크롤 액션에 롤플레잉 요소들을 대거 도입했습니다. 롤플레잉 게임으로서 배경 설정 역시 중세 유럽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던전 앤 파이터>를 무조건 전형적인 중세 유럽 판타지라고 말한다면, 그건 오류일 겁니다. 게임 제작진은 온갖 스팀펑크와 사이언스 판타지 설정들을 팍팍 집어넣었어요. 이런 설정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다채로운 설정이고, 부정적인 의미에서 짬뽕 설정입니다. <던전 앤 파이터>가 이렇게 중세 유럽 판타지와 스팀펑크와 사이언스 판타지를 뒤섞은 이유는 최대한 많은 콘텐츠들을 확보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온라인 게임으로서 <던전 앤 파이터>는 끊임없이 콘텐츠를 양산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이것저것 설정들을 집어넣었을 겁니다. 이는 콘텐츠를 위한 짬뽕 설정이겠죠.



솔직히 설정을 탐구하기 위해 <던전 앤 파이터>를 플레이하는 게임 플레이어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다들 재미있는 액션 게임을 바랄 테고, 게임이 콘텐츠와 액션을 충족할 수 있다면, 게임 플레이어들은 사이언스 판타지와 중세 유럽을 상관하지 않겠죠. 거대한 공장에서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가 로봇들과 싸운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설정이 가능한지 게임 플레이어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겁니다. 이는 게임 플레이어들이 설정에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아무리 게임 플레이어들이 설정을 이야기하고 탐구한다고 해도, 그게 본질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게임 작가들이 설정을 멋지게 짰다고 해도,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나오지 않거나 액션 조작이 엉망이라면, 게임 플레이어들은 <던전 앤 파이터>를 플레이하지 않을 겁니다. 중세 판타지 세계에서 스팀펑크 기술이 로봇들을 만들고, 로봇들 때문에 사람들의 관념이 바뀐다고 해도, 그게 중요한 문제가 될까요? 스팀펑크 소설 작가들은 그런 관념의 변화를 아주 중요하게 여길 겁니다. 하지만 <던전 앤 파이터> 같은 비디오 게임에서 그런 부분은 희미합니다. 그저 액션의 쾌감을 위해 거대한 공장과 로봇들은 존재할 뿐이에요.



이는 <던전 앤 파이터>가 엉터리 게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비디오 게임과 소설이 이렇게 설정을 다르게 활용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스팀펑크 소설을 비롯한 여러 소설들은 사람들의 관념이나 사상이나 사고 방식에 주목합니다. 텍스트 매체이기 때문에 소설은 그런 관념, 사상, 사고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배경 설정과 소설 주제는 밀접한 연관을 맺습니다. 반면, 비디오 게임에서 그런 연결 고리는 다소 약합니다


 특히,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던전 앤 파이터> 같은 온라인 게임은 설정을 깊게 파고들지 못해요. 아무리 <던전 앤 파이터>가 중세 판타지와 스팀펑크와 사이언스 판타지를 신나게 뒤섞는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은 거기에서 특별한 사상이나 철학을 뽑아내지 못하겠죠. 사상이나 철학을 뽑아내고 싶다면, <던전 앤 파이터>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파반> 같은 소설을 읽는 편이 나을 겁니다. 게임과 소설에는 각자 특징이 있고, 소설에는 관념이나 사상을 파고들 수 있다는 특징이 있죠. 게다가 <던전 앤 파이터>에는 캐릭터를 조작하고 적을 쓰러뜨리는 쾌감이 있으나, 이런 쾌감은 사이언스 픽션과 별로 관계가 없고요.



이 글에서 저는 <던전 앤 파이터>를 언급했으나, 이것 이외에 다른 게임들 역시 비슷합니다. <던전 앤 파이터>처럼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이것저것 뒤섞는 게임들은 많습니다. 그런 게임들 속에서 중세 판타지와 스팀펑크와 사이언스 판타지는 아무렇지 않게 뒤섞입니다. 공중 전함 속에서 검과 방패로 무장한 전사는 기계 로봇들과 아무렇지 않게 싸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나 엘프나 오크가 검과 창과 도끼와 활로 싸울 때, 드워프들은 아무렇지 않게 보행 병기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설정이 서로 뒤섞일 수 있는지 게임 제작진과 게임 플레이어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설사 상관한다고 해도, 그들은 거기에서 어떤 사상이나 관념의 변화를 도출하지 않습니다. 게임의 목적이 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온라인 게임이 늘어놓는 설정은 소설이 구상하는 설정보다 훨씬 방대할지 모릅니다. 무한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들은 계속 설정을 덧붙일 테고, 그런 설정은 소설의 설정보다 훨씬 방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설정이 방대하다고 해도, 그게 무조건 좋을까요. 분량이 많은 설정이 무조건 깊이가 있는 설정일까요. 글쎄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장르 소설 동호회에서 어떤 소설 지망생들은 비디오 게임을 참고합니다. 온라인 비디오 게임이 워낙 방대한 설정을 자랑하기 때문이죠. 소설을 쓰기 원함에도, 그런 소설 지망생들은 비디오 게임을 참고합니다. 그런 참고 자체는 나쁘지 않을 겁니다. 설정을 살피기 위해 저 역시 비디오 게임들을 자주 참고합니다.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의 제노 타이탄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하지만 설정이 방대하다고 해도, 게임은 게임입니다. 게임의 목적은 사상 탐구가 아니죠. 소설을 쓰기 원한다면, 소설 지망생들은 게임을 그저 참고 자료로서 활용해야 하고, 보다 소설에 치중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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