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골렘>, 피조물과 사이언스 판타지 본문
[SF에게 오만한 인간, 통제 불가능한 피조물은 흥미로운 주제일 수 있습니다.]
◈ 오만한 창조차, 통제 불가능한 피조물
록산 게이는 인간입니다. 시몬 베이유는 인간입니다. 나데즈다 크룹스카야는 인간입니다. 메리 셸리는 인간입니다. 비단 록산 게이, 시몬 베이유,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메리 셸리만 아니라 우리 역시 인간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들입니다. 어떻게 인간들이 나타났나요? 어떻게 이 세계에서 인간들이 나타났나요? 기독교는 야훼가 인간을 창조했다고 주장합니다. 야훼가 신이기 때문에, 이건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뜻입니다. 야훼는 창조자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야훼가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보다 신은 우월합니다. 인간, 피조물은 감히 신, 창조자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야훼가 인간을 창조했을 때, 야훼는 자신의 형태를 모방했습니다. 만약 인간이 인간 형태를 모방하고 인조인간을 창조한다면, 인간은 창조자가 될 겁니다. 야훼가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에, 야훼는 창조자입니다. 만약 인간이 인조인간을 창조한다면, 인조인간이 피조물이고 인간이 창조자이기 때문에, 야훼와 인간은 비슷할 겁니다. 야훼가 창조자인 것처럼, 인간은 창조자이고, (야훼에게) 인간이 피조물인 것처럼, 인조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야훼와 인간이 비슷하고, 야훼가 신이기 때문에, 인간은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인간은 야훼에게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신격 위상이 됩니다.
만약 인간이 인조인간을 창조한다면, 인간은 신에게 가까울 겁니다. 인간이 신에게 가깝기 때문에, 인간은 신격 위상이 됩니다. 하지만 인간보다 야훼가 우월하기 때문에, 만약 인간이 신격 위상이 된다면, 이건 불경인지 모릅니다. 만약 인간이 야훼에게 가까워진다면, 이건 커다란 죄악인지 모릅니다. 기독교 사고 방식에서 인조인간은 불경, 죄악일 수 있습니다. 인조인간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인조인간은 오만한 인간을 비판하기 위한 주제일 수 있습니다. 문학은 인조인간을 이야기하고 오만한 인간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인간이 신이 되는 것처럼, 만약 인조인간이 인간이 된다면?
인간이 야훼에게 가까워지는 것처럼,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가까워지는 것처럼, 만약 인조인간이 인간에게 가까워진다면? 인간이 창조자이고, 인조인간이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조인간보다 인간은 우월합니다. 하지만 만약 인조인간이 인간이 된다면, 더 이상 인간은 우월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인조인간이 인간에게 가까워진다면, 창조자와 피조물은 대등할 겁니다. 인간과 인조인간이 대등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인조인간은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만약 피조물보다 창조자가 우월하다면, 인조인간은 인간에게 복종해야 하나, 이제 이 관계가 대등하기 때문에, 인조인간은 복종하지 않습니다.
인조인간이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인조인간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인조인간이 저항한다고 해도, 인간은 통제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지어 인조인간은 지배조차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인조인간은 인간을 지배하기 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패배한다면, 인조인간은 인간을 지배할 겁니다. 인간은 인조인간에게 복종할 겁니다. 더 이상 인간은 우월한 창조자가 아닙니다. 더 이상 인간은 신에게 가깝지 않습니다. 인간이 복종하기 때문에, 인간은 신격 위상보다 미천한 노예입니다. 인간이 인조인간을 창조하기 때문에, 아~, 인간은 미천한 노예가 됩니다.
인간은 인조인간을 창조했으나, 이 창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만약 창조자가 피조물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만약 피조물이 창조자를 공격한다면, 더 이상 창조자는 우월하지 않을 겁니다. 피조물이 공격할 때, 이건 통제 불가능한 공포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인조인간은 비단 오만한 인간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공포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계몽주의가 대세였을 때, 어떤 철학자들은 인간을 창조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입니다.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인간은 창조적입니다. 자유와 창조는 비슷한 위상입니다.
창조는 인간이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만약 어떤 것들이 인간을 구속한다면, 인간은 새로운 영역으로 나가지 못할 겁니다. 인간이 새로운 영역으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할 겁니다. 아무것도 인간을 구속하지 않을 때, 인간은 새로운 영역으로 나가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자유와 창조는 비슷한 위상입니다. 자유와 창조가 비슷하고, 자유가 긍정적이기 때문에, 창조는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인조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은 미천한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노예는 부정적입니다. 이건 역설입니다.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인간은 창조했습니다. 인간이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노예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건 역설이 됩니다. 인조인간이 창조를 역설이라고 보여주기 때문에, 문학에게 인조인간은 좋은 소재일 수 있습니다. 문학은 인조인간을 이야기하고 자유, 창조를 논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은 커다란 인기를 끄는지 모릅니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썼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조인간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인조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에, 오오~, 인간은 높은 위상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우월한 창조자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을 위대한 창조자라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에서 과학자는 우월보다 오만입니다. 과학자가 인조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에, 인조인간은 여러 살인들을 저질렀습니다. 과학자가 인조인간을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자는 우월보다 오만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자(창조자)를 오만히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프랑켄슈타인>은 통제 불가능한 공포를 이야기합니다. 과학자는 인조인간을 창조했으나, 과학자(창조자)는 인조인간(피조물)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인조인간이 끔찍한 살인들을 저지른다고 해도, 과학자는 막지 못합니다.
창조자가 피조물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은 통제 불가능한 공포를 논의할 수 있습니다. 과학 시대에서 인류가 살아가기 때문에, 첨단 기술 시대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은 과학 만능주의를 경고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핵 탄두를 창조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인류가 핵 전쟁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인조인간이 끔찍한 살인들을 저지르는 것처럼, 만약 핵 전쟁이 인류 문명을 파괴한다면? 아무리 핵 탄두보다 인간이 우월하다고 해도, 핵 전쟁이 인류 문명을 파괴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은 우월한 창조자가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 과학이 완벽한 긍정인가요?
◈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골렘>
인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창조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무한 이윤 축적을 원합니다. 시장 경제는 훨씬 많은 이윤을 축적하기 원합니다. 시장 경제는 이윤을 축적하고, 많은 이윤을 축적하고, 훨씬 많은 이윤을 축적하고, 훨씬 훨씬 많은 이윤을 축적하기 원합니다. 시장 경제는 이 과정을 멈추지 못합니다. 세계적으로 시장 경제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고 많은 것들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세계적으로 많고 많은 것들은 그저 돈벌이에 불과합니다. 지구 생물권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세계 시장 경제에게 지구 생물권은 그저 돈벌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환경 오염들은 위험합니다.
심지어 기후 변화는 행성급 재앙이기조차 합니다. 기후 변화는 지질학적인 환경 참사입니다. 세계 시장 경제가 오직 훨씬 많은 이윤만 축적하기 때문에, 세계 시장 경제는 환경 운동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장 경제가 환경 운동을 지껄여댄다고 해도, 시장 경제에게 환경 운동보다 이윤 축적은 훨~씬 중요합니다. 시장 경제 내부에서 환경 운동은 그저 피상적일 뿐입니다. 이건 진짜 환경 운동이 아닙니다. 아무리 시장 경제가 환경 운동을 지껄여댄다고 해도, 이건 그저 가짜에 불과합니다. 가짜 환경 운동은 행성급 생태학 재앙에 대처하지 못합니다. 세계 시장 경제는 행성급 생태학 재앙입니다.
우파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를 찬양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무한 이윤 축적입니다. 무한 이윤 축적은 위험한 생태학 재앙입니다. 우파 지식인들은 틀렸습니다. 기후 변화가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만약 우파 지식인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우파 지식인들은 멍청하거나 악랄할 겁니다. 기후 변화가 전대미문의 오염인 것처럼, 자본주의는 인류를 비참한 구렁텅이에 빠뜨립니다. 인류는 시장 경제를 창조했으나, 인류에게서 시장 경제는 비롯했으나, 자본주의는 인류를 비참한 구렁텅이에 빠뜨립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세계화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기후 변화에 대처한다면, 자본주의보다 인류는 우월할 겁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세계화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세계화 자본주의는 통제 불가능한 인조인간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환경 운동은 공산주의를 참고해야 합니다.) 2022년 오늘날, 기후 변화 시대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세계화 자본주의를 통제 불가능한 인조인간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 자유, 오만, 지배, 종속, 통제, 불안, 공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프랑켄슈타인>처럼, 인조인간은 중요한 주제일 수 있습니다. 비단 <프랑켄슈타인>만 아니라 다른 것들 역시 비슷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 이 영화는 어떤가요?
<프랑켄슈타인>처럼, <블레이드 러너 2049> 역시 인조인간을 이야기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게 창조, 자유, 오만, 지배, 종속, 통제, 불안, 공포는 주된 주제입니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훨씬 희망적입니다.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비단 창조자와 피조물만 아니라 계급 투쟁 역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계급 투쟁을 비유하기 때문에,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희망을 품는지 모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달리, <프로메테우스>, 이 영화는 우울합니다. 인조인간(피조물)은 인간(창조자)에게 종속됩니다.
하지만 만약 인조인간이 인간을 바꿀 수 있다면? 만약 인조인간이 인간을 바꾼다면, 더 이상 인간은 창조자가 아닐 겁니다. 인조인간은 창조자가 되고, 인간은 피조물이 됩니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인조인간은 그저 위험한 피조물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인조인간이 인간을 바꾸기 때문에, 인조인간은 창조자가 됩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인조인간은 창조자가 되지 않았으나, <프로메테우스>에서 인조인간은 창조자가 되기 원합니다. 인조인간이 창조자가 되기 때문에, <프로메테우스>는 훨씬 암울합니다. <골렘>, 이 보드 게임 역시 랍비(인간)가 골렘을 창조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랍비(인간)는 창조자입니다.
랍비와 달리, 골렘(인조인간)은 피조물입니다. 만약 랍비가 연금술을 연구하고 골렘을 강화한다면, 랍비는 커다란 이득을 얻을 겁니다. 하지만 골렘이 너무 진보한다면, 랍비는 골렘을 통제하지 못할 겁니다. 랍비가 골렘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골렘은 커다란 사고를 저지를 겁니다. 골렘이 커다란 사고를 저지르기 때문에, 랍비는 많은 것들을 잃을 겁니다. 랍비가 골렘을 창조하고 커다란 이득을 얻는 것처럼, 랍비는 우월한 창조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창조가 오만이 아닌가요? 만약 랍비가 연금술에 집착한다면, 골렘이 너무 진보하기 때문에, 랍비는 통제하지 못할 테고, 골렘은 사고를 저지를 겁니다.
랍비가 향상된 골렘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골렘은 통제 불가능한 피조물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골렘> 그림들을 혐오스럽다고 느낍니다. 창조, 오만, 통제, 공포가 묵직한 주제이기 때문에, <골렘> 그림들은 혐오스러운지 모릅니다. <골렘>이 창조, 오만, 통제, 공포를 연출하는 것처럼, <프랑켄슈타인>과 <골렘>은 비슷할 수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 <블레이드 러너 2049>, <프로메테우스>, <골렘>은 가까울 수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희망을 품기 때문에, 비록 <블레이드 러너 2049>와 <골렘>이 다르다고 해도,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 <골렘>은 가깝습니다.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 <골렘>은 비슷한 주제들을 논의합니다. 소설 독자들, 영화 관객들, 게임 플레이어들은 세 가지들이 가깝다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SF,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SF 평론가들은 <프랑켄슈타인>을 원형적인 SF,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주장합니다. 메리 셸리는 원형적인 사이언스 픽션을 썼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 사이언스 픽션인 것처럼,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분류할 겁니다. <프로메테우스> 역시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을 인정할 겁니다.
<골렘>은 어떤가요? <프랑켄슈타인>, <블레이드 러너 2049>, <프로메테우스>처럼, <골렘>이 SF, 사이언스 픽션인가요? 어떤 사람들은 고개들을 흔드는지 모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근대 과학을 인식합니다.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는 동안, 메리 셸리는 근대 과학을 인식했습니다. 메리 셸리가 근대 과학을 인식했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적인 허구(사이언스 픽션)일 수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 <프로메테우스>는 미래 첨단 기술들을 자랑합니다. 미래 첨단 기술들은 과학적인 허구일 수 있습니다. <골렘>은 근대 과학들, 미래 첨단 기술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 <골렘>이 사이언스 판타지(과학 판타지)인가?
<골렘>에서 시간적인 배경, 공간적인 배경은 16세기 프라하입니다. <골렘>은 연금술을 보여줍니다. 16세기 프라하가 SF 배경 무대일 수 있나요? 근대 과학들, 미래 첨단 기술들처럼, 연금술이 과학적인 허구일 수 있나요? 아니, 어떤 사람들은 고개들을 흔들 겁니다. 연금술은 과학적인 허구보다 판타지에 속합니다. 연금술이 판타지에 속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골렘>은 판타지입니다. 아무리 세 가지들이 비슷한 주제를 논의한다고 해도,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는 과학적인 허구이고, <골렘>은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영원히 두 범주가 떨어지나요?
영원히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떨어지나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절대 만나지 못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많은 소설가들, 평론가들, 독자들은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가깝다고 인정합니다.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시간 여행 SF 걸작선>은 SF 모음집입니다. 이 SF 모음집은 <파리의 4월>을 포함합니다. 어슐라 르 귄은 <파리의 4월>을 썼습니다. 마법진이 시간 여행 수단이 되는 것처럼, <파리의 4월>은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SF 모음집은 판타지를 포함합니다. 비단 <시간 여행 SF 걸작선>만 아니라 다른 SF 모음집들 역시 비슷합니다. SF 모음집들은 판타지들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시간 여행 SF 걸작선>이 <파리의 4월>을 포함하는 것처럼, SF 모음집들이 판타지들을 포함하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비슷합니다. 비록 <골렘>이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고 해도,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와 <골렘>은 가까울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늘에서 근대 과학은 뚝~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근대 과학이 나타나기 전에, 연금술은 물질 세계를 설명했습니다. 근대 과학이 발달하는 동안, 플로지스톤처럼, 여전히 연금술은 물질 세계를 설명했습니다. 연금술이 과학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비록 <골렘>이 판타지라고 해도, <골렘>은 사이언스 판타지일 수 있습니다.
<골렘>이 사이언스 판타지이기 때문에, <골렘>은 사이언스, 과학을 수식합니다.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가 사이언스 픽션이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는 사이언스, 과학을 수식합니다. 사이언스가 공통점이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와 <골렘>은 가까울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 사이에서 <골렘>은 징검다리인지 모릅니다. 비단 <골렘>만 아니라 다른 사이언스 판타지들 역시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가깝다고 증명합니다. 하지만 아직 어떤 사람들은 고개들을 젓는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은 두 범주를 분리하기 원할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보다 이 그림은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골렘>이 과학 판타지인가요?]
어떤 사람들은 두 범주(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가깝지 않다고 분리합니다. 이 주장은 타당합니다. <프로메테우스>와 <골렘>은 비슷할 수 있고 다를 수 있습니다. SF·판타지는 절대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이른바 SF&F는 고정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하지만 비록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와 <골렘>이 비슷하지 않다고 해도, 분명히 세 가지들은 비슷한 주제를 논의합니다. 주제가 비슷하기 때문에, <골렘>은 <프랑켄슈타인>의 변주곡일 수 있습니다. 21세기 초반, 여전히 <골렘>이 <프랑켄슈타인>을 변주하는 것처럼, 메리 셸리는 놀라운 작품을 창조했습니다. 오호~, 메리 셸리는 대단합니다.
※ 게임 <골렘> 사진 출처: 데굴데굴 STUDIO,
https://www.youtube.com/watch?v=QHWnWyb1M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