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겨울서점>이 소개하는 디스토피아의 한계 본문
※ [주인장의 책장] SF소설에 입문하고 싶다면? 이 시리즈! 링크: https://youtu.be/dcI9A_U6WMY
<겨울서점>의 김겨울님은 책을 소개하는 유튜버, 이른바 북튜버입니다. 유튜브 <겨울서점> 채널에서 겨울님은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고, 책 행사들을 찾아가고, 책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이른바 책벌레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런 북튜버 채널들은 아주 유용할 것 같습니다. <겨울서점> 채널은 동영상 콘텐츠이나, 책들을 소개하는 채널로서 여기에 화려한 시각 효과와 시각적인 측면은 많지 않습니다. 겨울님 본인이 인정하는 것처럼, 콘텐츠의 8할은 언어(목소리)입니다. 책이 텍스트 매체이기 때문에 책을 이야기하는 <겨울서점> 채널 역시 목소리 매체가 되는 것 같아요.
책은 뚜렷하고 시각적인 보여주기보다 추상적이고 비가시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매체에 가깝죠. 그런 매체를 설명한다면, <겨울서점> 채널 역시 비가시적인 채널이 되겠죠. 그렇게 겨울님이 소개하는 여러 책들 중에서 SF 소설들 역시 있습니다. 어떤 동영상은 SF 소설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Sci-Fan 시리즈를 소개했습니다. Sci-Fan 시리즈는 전자책 SF 소설 시리즈입니다. 대부분 짧은 분량을 보여주고, 가격은 별로 비싸지 않죠. 이건 창작 웹진 미러에 번역 소설들이 올라오는 느낌과 비슷해요. Sci-Fan 시리즈는 별로 유명하지 않으나 재치가 넘치고 짧은 소설들을 선사합니다.
이 동영상에서 SF 소설을 소개할 때, 겨울님은 'SF 소설이 상상력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장르'라고 말했습니다. 겨울님은 특정한 상상력을 아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SF 소설이 정치적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흔히 (남한) 사람들은 SF 소설이 공상 과학이라고 간주하고 SF 소설이 황당하다고 간주하나, 겨울님은 SF 소설이 굉장히 정치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SF 소설이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을 보여주고 그걸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죠. 이런 설명은 어느 정도 옳으나, 몇몇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겨울님은 사이언스 픽션이 공상 과학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겨울님은 공상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으나, 그걸 비판하거나 고치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은 공상 과학이 아닙니다. 공상은 부정적인 단어이고 사이언스 픽션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죠. 남한에서 사이언스 픽션이 공상 과학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남한에서 누군가가 사이언스 픽션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면, 그 사람은 공상이라는 단어를 비판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아쉽게도 겨울님은 공상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짚지 않았어요. 그랬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겨울님은 사이언스 픽션이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사실일까요?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이 자연 과학보다 우선한다면, 그건 SF 소설이 되지 못할까요?
수많은 훌륭한 SF 소설들은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과 함께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을 중시합니다. 이미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 작가들 역시 이런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는 사이언스 픽션의 전신입니다. 당연히 사이언티픽 로망스 작가들은 자신들이 자연 과학적인 문제를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허버트 웰즈가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SF 소설을 썼을 때, 쥘 베른은 거기에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죠. 허버트 웰즈는 사회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SF 소설이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을 축소할 수 있다고 맞받아쳤습니다.
이런 사례처럼,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나타났을 때부터,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과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목소리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에드워드 벨라미가 쓴 <뒤돌아보며>는 미국의 최초 SF 소설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뒤돌아보며>는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보다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을 중시합니다. 에드워드 벨라미는 <뒤돌아보며>가 '사회학적인 사이언티픽 로망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비단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만이 아니라)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은 얼마든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에드워드 벨라미부터 21세기 파올로 바치갈루피까지, 미국 SF 흐름에서 이런 경향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죠.
왜 사이언스 픽션에서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할 수 있을까요? 왜 판타지 소설이나 공포 소설이 그렇지 못할까요? 판타지와 공포 소설 역시 상상력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SF 소설처럼, 판타지 소설이나 공포 소설이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정치적일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려울 겁니다. 왜냐하면 SF 소설이 인류 사회를 전복시키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판타지 소설과 공포 소설은 그렇지 않아요. 겨울님은 허버트 웰즈가 사이언스 픽션의 선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허버트 웰즈는 19세기 유럽을 대표할 수 있는 사회주의자였고 인류 문명 비평가였습니다.
허버트 웰즈는 SF 소설들을 쓰는 동시에 자본주의를 비판했고 국제 정부를 꿈꿨습니다. 허버트 웰즈는 두 번 세례를 받았어요. 이 양반은 진화 이론에게 세례를 받았고 동시에 사회주의에게 세례를 받았죠. 왜 허버트 웰즈가 사회주의에게 세례를 받았을까요? 19세기 유럽 산업 사회에서 사회주의들이 우후죽순 자랐기 때문입니다. 산업 자본주의 사회는 임금 노동자들을 생성했습니다. 임금 노동자들은 노동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자본주의 문제에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허버트 웰즈는 파리 코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사회주의 운동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허버트 웰즈는 조지 버나드 쇼, 카를 마르크스, 윌리엄 모리스를 알았을 겁니다.
비단 허버트 웰즈만 아니라 다른 SF 작가들 역시 이런 영향을 의식했을 겁니다. 겨울님은 허버트 웰즈가 사이언스 픽션의 시조라고 말했으나, 본격적인 시조는 메리 셸리죠. 메리 셸리의 어머니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습니다. 18세기 유럽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페미니즘 운동을 여는 선구자입니다. 메리 셸리가 그런 사상을 이어받았을까요? 만약 메리 셸리가 그랬다면, 태생적으로 SF 소설에는 저항적이고 전복적인 해방 사상이 있었을 겁니다. 설사 메리 셸리가 그런 유산을 물려받지 않았다고 해도, 메리 셸리가 페미니즘 운동을 SF 소설들에 집어넣지 않았다고 해도, 18세기와 19세기 유럽에서 (자본주의와 싸우는 동안) 저항과 해방 철학들은 급진적으로 성장하는 중이었습니다.
SF 작가들은 그런 사회를 겪었습니다. 사회 환경은 문화 예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저항과 해방이 투쟁하는 동안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은 나타났습니다. 이건 사이언스 픽션이 무조건 좌파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건 해방 투쟁과 사이언스 픽션이 똑같은 시대, 똑같은 장소를 거쳤다는 뜻입니다. 사이언스 픽션 작가들은 사회가 뒤집어지는 모습들을 목격했고, 에드워드 벨라미 같은 작가는 <뒤돌아보며>를 쓸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탄생했을 때부터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왜 SF 소설이 정치적일까요?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페미니즘, 사회주의와 '동문'이기 때문입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는 페미니즘, 사회주의와 함께 자랐습니다. 그래서 <강철 군화>처럼, 본격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의 시조 역시 자본주의 디스토피아입니다. 예브게니 자마친이 <우리들>을 쓰기 10년 전에 이미 잭 런던은 <강철 군화>를 썼죠. <강철 군화> 같은 디스토피아 이전에는 <20세기 파리>가 있었어요. 쥘 베른은 자본주의 문제를 깊게 인식하지 못했으나, 이미 19세기에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를 예견했습니다. 겨울님은 디스토피아 소설 작가로서 아인 랜드를 언급했으나, 아인 랜드는 보수 우파에게 기울어졌습니다.
겨울님이 언급한 아인 랜드 소설을 읽을 때, 많은 독자들은 소비에트 연방이 부정적이라고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많은 독자들은 아인 랜드 소설이 전체주의를 가리킨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전체주의는 실체 없는 개념입니다. 전체주의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는 소비에트 연방이 아니라 자본주의 강대국들이죠. 심지어 냉전 시대에서조차 소비에트 연방은 미국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기 위해 미국 자본주의가 얼마나 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뭐, 소비에트 연방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자본주의는 숱한 학살들과 오염들을 저질렀습니다. 문제는 전체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입니다. 전체주의는 실체 없는 개념이죠. 이렇게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실체 없는 개념으로 지배 계급을 두둔하죠. 설사 우리가 전체주의를 비판한다고 해도, 그 전에 우리는 자본주의를 아주 강렬하게 부정해야 할 겁니다.
19세기 유럽은 산업 자본주의가 온갖 문제들을 일으키는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그런 격동의 시대에서 사이언티픽 로망스는 태어났습니다. SF 소설은 공상 과학이 아니고 절대 만만한 장르가 아니겠죠. 공상 과학이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9세기로 돌아가고 자본주의가 저지른 오염들과 거기에 맞서는 페미니즘 투쟁, 사회주의 투쟁을 목격해야 할 겁니다. 그건 정말 처절한 투쟁이었습니다. 아직 그런 처절한 저항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SF 소설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죠. SF 소설은 그런 태생적인 영향에서 멀어지지 않을 겁니다. 시대가 자유주의에 기울었기 때문에, 숱한 SF 작가들 역시 자유주의에 기울었으나, 적어도 초기 SF 소설에게는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하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겨울님은 이런 것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10분짜리 짧은 동영상에서 이런 내용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런 게시글은 그런 아쉬움을 보충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