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나는 전설이다>에서 자급자족과 교감의 비중 본문
다니엘 디포가 쓴 소설 <로빈슨 크루소>와 리처드 매드슨이 쓴 <나는 전설이다>와 앤디 위어가 쓴 <마션>에는 핵심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은 <로빈슨 크루소>와 <마션>이 비슷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어떤 독자는 아예 <마션>이 SF 판본 <로빈슨 크루소>라고 간주할지 모릅니다. 양쪽 소설에서 주인공은 외딴 지역에 표류했고, 혼자 생존해야 하고, 자급자족 경제를 꾸려야 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를 다루고, <마션>은 외계 화성을 다룹니다. 무인도와 화성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고, 그래서 <마션>은 어려운 SF 소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양쪽 소설은 비슷한 감성을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외딴 지역에서 인간이 혼자 생존할 수 있는가? 그때 인간은 무엇을 느끼는가? 인간이 문명을 떠날 때, 그게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전설이다> 역시 비슷한 감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전설이다>에서 소설 주인공은 외딴 지역을 표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 주인공은 무인도나 외계 행성에 자신이 갇혔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인류 문명이 폭싹 무너졌고, 안전 가옥에서 소설 주인공이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기 때문입니다. <로빈슨 크루소>나 <마션>이 거대한 적막을 강조한 것처럼 <나는 전설이다>는 고독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세 소설들이 추구하는 주제들은 서로 다릅니다. 똑같이 고독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세 소설들에서 고독은 각자 다른 형태들이 됩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절망을 이야기하나, 이성적인 인간이 꿋꿋하게 살아남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소설 주인공은 작은 문명을 일구고, 충실한 하인을 거느리고, 결국 문명 세계로 돌아옵니다. 소설 주인공은 지독하게 외로우나, 그런 고독은 하늘을 뚫거나 땅을 파고들어가지 않아요. <마션>은 훨씬 발랄합니다. <마션>에서 소설 주인공은 계속 농담을 지껄이고, 솔직히 별로 정상적인 인간 같지 않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혼자 생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나게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마션>은 인기를 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마션>에서 소설 주인공이 지독한 적막을 끊임없이 되뇌였다면, 독자들은 <마션>이 우울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을 테고 읽지 않았을지 모르죠. <마션>에서 자급자족 생존은 신나는 모험이 되고, 여기에 적막이나 고독은 끼어들 여유가 없습니다. <마션>에서 소설 주인공은 재미있는 비디오 게임이나 조립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같습니다. 가끔 <마션>은 신비로운 화성을 조명하나, 전반적으로 이 소설은 생존 이야기가 아니라 조립 게임에 가깝습니다. 이건 뚝딱뚝딱 주거지를 만들고 조립하는 게임이죠. <마션>은 인간이 복잡한 뭔가를 뚝딱뚝딱 만든다는 공학적인 즐거움을 예찬합니다.
사실 <마션>은 이런 공학적인 즐거움에 빠지기 원하는 것 같습니다. 종종 소설 주인공은 명상에 잠깁니다. 하지만 그런 명상은 길지 않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명상을 떨치고, 공구들을 집어들고,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거나 수리합니다. 화성에서 고립되었다는 설정은 이런 공학적인 즐거움을 극단적으로 강조합니다. 외계 행성에서 혼자 남았기 때문에 소설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거주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복잡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소설은 그걸 자세히 조명합니다.
비단 <마션> 이외에 여러 하드 SF 소설들은 이런 공학적인 측면을 예찬합니다. 설사 등장인물들이 뭔가를 직접 만들지 않는다고 해도, 하드 SF 소설들은 복잡한 구조물을 보여줍니다. 등장인물들이 그런 구조물을 파악하는 동안, 독자들은 공학적인 즐거움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공학적인 즐거움이 하드 SF 소설을 정의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숱한 하드 SF 소설들에는 이런 공학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인간이 외계 우주선을 둘러본다면, 인간이 직접 장거리 세대 우주선을 만든다면, 독자들은 공학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미 19세기 소설 <신비의 섬>은 그런 부분을 강조했죠. <마션>은 그런 부분에 훨씬 치중합니다.
<나는 전설이다>는 <로빈슨 크루소> 및 <마션>과 정반대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 주인공은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세상 사람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소설 주인공은 외로움을 달래지 못합니다. 그 자체로서 생존은 문제가 아닙니다. 소설 주인공은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인간은 점차 내면의 구렁텅이에 잠길 겁니다. 소설 주인공은 매일 술을 들이붓고 끝나지 않는 일상에게 분노를 터뜨립니다. 이런 고독과 절망이 하늘을 뚫고 땅을 파고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급자족 경제는 약합니다.
<나는 전설이다>는 자급자족 경제를 보여주나, 그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설 주인공이 터뜨리는 고독과 분노입니다. <로빈슨 크루소>와 <마션>에서 두 소설 주인공은 인류 문명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두 주인공은 희망을 걸 수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전설이다>에서 소설 주인공은 인류 문명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했고 어디에도 희망을 걸지 못합니다. <로빈슨 크루소>와 <마션>과 <나는 전설이다>가 똑같이 생존 이야기라고 해도, <나는 전설이다>는 훨씬 더 거대한 절망과 고독을 드러냅니다. 무너진 문명은 무인도나 화성보다 훨씬 이질적입니다. 무너진 문명은 무인도나 화성보다 훨씬 절망적입니다.
<마션>은 <로빈슨 크루소>를 따라가는 직접적인 후예입니다. 앤디 위어가 다니엘 디포를 모방하지 않았다고 해도, 형식적으로 <마션>과 <로빈슨 크루소>는 비슷합니다. <마션>을 읽은 이후, 독자들이 <로빈슨 크루소>를 언급한다고 해도, 그건 무리가 아니겠죠. 하지만 <나는 전설이다>는 완전히 다릅니다. <마션>과 <로빈슨 크루소>는 공간적인 이동을 강조하나, <나는 전설이다>는 공간적인 이동보다 멸망한 세상을 강조해요. <나는 전설이다>와 <마션>은 똑같이 자급자족 생존을 이야기하나, 배경 설정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전설이다>에서 인류 문명이 폭싹 망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감성 역시 다릅니다. 그래서 <마션>은 긍정적인 구조로 흘러가고, <나는 전설이다>는 암울한 종말로 흘러가죠.
<마션>과 <나는 전설이다>처럼, 이런 자급자족 생존 이야기는 우주 탐사물이 되거나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자급자족 생존 이야기는 많은 인기를 끕니다. 이질적인 세상에서 인간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고 싶다면, 인간은 문명 세계를 떠나야 할 겁니다. 어쩌면 일상에 지친 현대 문명인들은 이런 자급자족 생존을 낭만적인 일탈이라고 여길지 모르죠. 분명히 <마션>은 낭만적인 일탈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전설이다>는 근본적으로 <마션>과 다르고 자급자족 생존보다 고독과 절망을 훨씬 부각합니다. 겉모습과 달리, 사실 <나는 전설이다>에서 생존은 부차적인 문제일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전설이다>는 생존하고 자급자족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흡혈귀들(좀비들)은 지긋지긋합니다. 매일 밤마다 흡혈귀들은 소설 주인공에게 몰려옵니다. 그것들이 지겨운 이유는 그것들이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소설 주인공이 혼자 그것들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안전 가옥에 몇몇 생존자가 있었다면, 소설 주인공은 타워 디펜스가 지긋지긋하다고 느끼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설사 안전 가옥에 생존자들이 없다고 해도, 소설 주인공이 다른 지역의 생존자들과 통화할 수 있었다면, 소설 주인공은 훨씬 보람차게 아침 햇님을 맞이했을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 주인공은 다른 인간들과 대화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고, 정을 나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소설 주인공은 다른 지역의 여자 생존자와 폰섹스를 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안전 가옥에 여자 생존자가 있고, 여자 생존자와 소설 주인공이 서로 눈이 맞았다면, 두 사람은 화끈한 대낮을 보내고 여유롭게 흡혈귀 타워 디펜스를 준비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고, 그래서 소설 주인공은 생존보다 교감과 대화를 갈구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와 <나는 전설이다>와 <마션>이 똑같이 자급자족 생존 이야기라고 해도, <나는 전설이다>에서 자급자족 생존은 부차적인 요소일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이 소설은 숱한 타워 디펜스들에 영향을 미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