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정말 인류가 쉽게 지구를 버릴 수 있는가 본문
[장엄하게 지구를 '탈출'하는 <비욘드 어스> 예고편. 하지만 이게 정말 장엄한 장면일까요?]
심해에서 잠수함이 하드레인을 버틸 수 있는가. 소설 <세븐이브스>에서 두 우주 승무원은 이렇게 묻습니다. 하드레인은 달의 파편들이 지구의 지표면으로 쏟아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세븐이브스>에서 정체 모를 원인은 달을 뽀갰고, 달은 계속 뽀개지기 시작합니다. 달의 파편들은 무수히 늘어났고, 그것들은 지구의 지표면을 덮칠지 몰라요. 소설 속에서 과학자들은 그걸 하드레인이라고 부릅니다. 하드레인은 무시무시한 대재난이 될 테고, 인류 문명을 비롯해 지표면 생태계와 지형을 무자비하게 파괴할 겁니다.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인류는 방주 우주선을 만듭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방주 우주선에 탈 수 있겠어요. 방주 우주선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궁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해에서 잠수함이 머문다면 하드레인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심해는 우주보다 가혹한 환경이죠. 많은 전문가들은 심해가 우주보다 낯선 환경이라고 말합니다. 두 우주 승무원 역시 그렇다고 결론을 내려요. 잠수함에 탄다고 해도, 사람들은 재난을 피하지 못하겠죠. 인간에게 지구 내부의 심해는 지구 외부의 우주보다 낯설다…. 네, 그렇습니다.
사실 SF 세상에서 지구가 재난을 맞이하고 인류가 대피하는 이야기들은 숱합니다. 비단 <세븐이브스>만 아니라 숱한 SF 소설들은 이런 이야기를 떠듭니다. 고대부터 다양한 방식들로 인류는 세상의 종말을 떠들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말을 떠듭니다. 세상의 종말은 우리를 매혹시킵니다. 19세기 이후, SF 작가들은 그걸 훨씬 논리적으로 떠듭니다. 이제 세상의 종말은 더 이상 신화나 종교나 전설이 아니라 논리적인 전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숱한 SF 소설들은 지치지 않고 세상이 멸망한다고 이야기하죠. 세상이 멸망할 때, 인류는 살길을 도모해야 합니다.
<세븐이브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SF 세상에는 <세븐이브스> 이외에 다른 소설들 역시 많겠죠. SF 비평서 <SF의 힘>에서 고장원님은 그런 사례들을 늘어놓습니다. 고장원님은 인류가 우주선을 타고 또 다른 지구를 찾는다고 해도 그게 별로 가능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설사 인류가 대규모 피난 선단을 건조할 수 있다고 해도, 태양계 너머에서 피난 선단은 새로운 고향별을 찾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세븐이브스>에서 누군가가 심해 잠수함을 머릿속에 떠올린 것처럼, 지하 생활이나 수중 생활은 또 다른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주 피난보다 훨씬 쉬울까요? <SF의 힘>은 그런 사례들을 살펴봅니다.
가브리엘 타 드가 쓴 <지저인간>과 로버트 실버버그가 쓴 <대빙하 시대>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지구 기온이 급강하한 이후, 인류는 추위를 견디지 못했고 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휴 하위가 쓴 <울>과 드미트리 글루코프스키가 쓴 <메트로 2033>은 방사선 낙진 때문에 인류가 지하로 들어간다고 이야기해요. 러시아 지하철은 대피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비단 지하만 아니라 수중 역시 피난처가 될 수 있어요. 심해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해도, 얕은 대륙붕에서 인류는 대피소를 건설할 수 있겠죠.
아베 코보가 쓴 <제4간빙기>에서 물 속에서 살기 위해 인류는 아예 유전 조작을 거칩니다. 지구 온난화는 빙하를 녹이고, 사람들은 바다가 육지를 뒤덮을 거라고 예상해요. 그래서 물 속에서 살기 위해 인류는 수중 인간이 됩니다. 이건 행성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이 육체를 바꾸는 친화성 과정(pantropy)이군요. 친화성 과정 팬트로피는 테라포밍보다 유명하지 않으나, 이것 역시 생존을 도모하는 방법이겠죠. 하지만 아무리 육지가 물에 잠긴다고 해도, 이런 유전자 조작이 쉬울까요? 유전자 조작은 우리를 새로운 생물종으로 바꿀 수 있으나,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유전자 조작을 활용한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세븐이브스> 1부 후반부에서 어떤 생명 과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유전자 조작을 시도하겠으나, 그건 어두운 미로 속에서 길을 헤매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생명 과학자는 유전자 조작에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아요. 물론 유전 공학은 새로운 생물적인 특이점을 열 수 있으나, 성급한 연구는 커다란 부작용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빨리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죠. 인류가 수중 도시를 짓는다고 해도, 재난 때문에 그걸 너무 성급하게 짓는다면, 수중 도시 역시 무너지거나 또 다른 재난을 일으킬지 모르죠.
소설 <메트로 2033>에서 러시아 사람들은 지하철로 대피했으나, 그들은 안락하게 살지 못합니다. 언제 돌연변이 괴물들이나 어마어마한 쥐 떼가 그들을 덮칠지 아무도 알지 못해요. 돌연변이 괴물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지하철 생활은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지하철 생활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일 수 있어요. 인류 문명이 망하고 사람들이 우주나 지하나 수중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그 소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길 수 있겠어요. 결국 <SF의 힘>에서 고장원님은 '평소에 우리는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네, 평소에 우리는 잘 해야 합니다. 인류 문명이 무너진다면, 우리가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 해도, 그건 이미 늦었어요.
물론 <세븐이브스>에서 하드레인은 불가해한 영역입니다. 달이 뽀개졌을 때, 인류는 왜 달이 뽀개졌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드레인은 인류가 일으킨 재난이 아니죠. 하지만 '인류가 대피한다'는 관점에서 <세븐이브스>는 인위적인 환경 아포칼립스 소설들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환경 오염이 지구를 파괴한다면, 그때 우리가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 해도, 그건 아무 소용이 없겠죠. 수중 도시나 지하 도시나 방주 우주선을 계획하기 전에 우리는 지구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을 제대로 관리하고 자연 환경을 평등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 물론 자본주의 시장 경제 속에서 그건 절대 불가능하겠죠. 인간들이 서로 평등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류가 자연 환경을 평등하게 바라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