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거대 괴수는 거대한 필력을 요구한다 본문
[거대 괴수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작가는 방대한 설정들을 밑바탕에 깔아야 할 겁니다.]
종종 거대 괴수를 볼 때마다, 저는 그 압도적인 크기에 경외를 느끼곤 합니다. 인간의 평균적인 길이가 2m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몇 m짜리 동물조차 상당히 거대하죠. 몇 십 m나 몇 백 m짜리 동물은 오죽하겠어요. 그런 생명체들은 어마어마한 크기만큼 아우라를 뿜습니다. 라마 같은 초거대 건축물들 역시 놀라우나, 그것들은 죽은 것입니다. 살아있지 않죠. 그래서 그렇게 거대 괴수들은 경외적일 겁니다. 누군가는 거대 괴수들이 허술하고 황당한 상상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겠군요. 맞아요. 200m짜리 우주 항모를 상상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미 거대한 항공모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m짜리 거대 괴수를 상상하는 것은 좀 황당할지 몰라요. 현실 속에서 그만큼 거대한 동물은 존재하지 않죠. 따라서 이런 거대 괴수를 묘사하고 싶다면, 우주 항모를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공을 들여야 할 겁니다. 어떤 SF 소설이 거대 괴수를 내놓는다고 해도 그 소설이 무조건 거대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야기들에는 각자 주제에 걸맞는 규모가 있고, 작가가 그 규모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야기를 망칠지 모릅니다. 거대 괴수는 로망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방대한 설정과 필력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구태여 거대 괴수를 이야기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비단 거대 괴수만 아니라 좀 더 작은 괴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봇과 달리 괴수들은 자연 생태계 속에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저는 작가들이 괴수를 묘사할 때 좀 더 설정을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위적인 기계보다 자연적인 생명체에 더 정교한 이야기가 따라붙어야 할 겁니다. <프래그먼트> 같은 소설은 온갖 괴수들을 보여주기 위해 애씁니다. 그 호랑이 같은 갯가재는 나름대로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소설에서 괴수의 로망을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발상과 필력이 너무 얄팍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생물들이 기괴하게 진화하는 고립된 섬.
글쎄요, 별로 독특한 설정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고립된 생태계는 이미 19세기부터 SF 소설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정말 창의적인 설정을 드러내는 소설은 드뭅니다. 그보다 주제나 필력이 중요하겠죠. 아쉽게도 <프래그먼트>에서 작가가 휘두르는 필력은 기괴한 설정을 절반조차 따라가지 못합니다. 인물, 풍경, 서사, 뭐 하나 충만하지 않습니다. 특히, 기괴한 자연 생태계를 마주쳤을 때 등장인물들이 느꼈을 감성 변화가 부족했어요. <프래그먼트> 같은 소설에게 대가의 손길을 바란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소 투박하고 딱딱하다고 해도 뭔가 풍부하다는 느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프래그먼트>는 그런 점에서 꽝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도 많을 겁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부분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겠죠. 그런 독자들과 달리 저는 이 소설에 딱히 흥미를 붙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괴수들을 다룬다면, 그만큼 필력이 풍성해야 할 겁니다. 이런 비교가 어울릴지 모르겠으나,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과 <프래그먼트>를 비교한다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괴수가 훨씬 더 거대해진다면, 그만큼 거대한 필력이 따라붙어야 할 겁니다. 거대 괴수는 양날의 칼과 같을 겁니다. 만약 인상적인 거대 괴수를 창작할 수 있다면, 명예의 전당에서 명성을 빛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인상적인 괴수를 창작하기가 만만한 과정은 절대 아니겠죠. 거대 괴수는 자칫 터무니없고 황당한 설정으로 이어질지 모르고, 작가조차 설정에 따르는 규모를 주체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큰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죠. 만약 사람들이 200m짜리 동물을 본다면, 뭐라고 느낄까요. 그런 동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정확히 장담하지 못할 겁니다. SF 작가는 그 존재하지 않는 감성을 느껴야 하고, 그래서 거대 괴수를 쓰기가 어려울 겁니다. 거대 항공 모함이나 순양함은 이미 현실에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그것들을 보고 느끼는 감성 역시 존재하죠. 따라서 거대 우주 구축함을 묘사하기 원하는 작가는 그런 감성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 괴수를 묘사하기 원하는 작가는 참고할 수 있는 감성이 부족할 겁니다. 세콰이어 나무나 대보초 같은 생태적인 기적이 존재하나, 저는 그런 생태적인 기적과 거대 괴수를 바라보는 감성이 다른 궤도를 맴돌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많은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생체 우주선이나 거대 괴수를 선보입니다. 거대 괴수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무조건 괴수에게만 초점을 맞출 이유는 없습니다. 이안 뱅크스의 컬쳐 시리즈나 스티븐 백스터의 지리 시리즈나 피터 해밀튼의 나이트 던 시리즈는 스페이스 오페라 속에서 생체 우주선을 드러내죠. 생체 우주선은 거대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거대 괴수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고요. 이런 중후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은 그 규모 덕분에 마음을 놓고 거대 괴수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플레바스를 생각하라>에 300m짜리 바다 괴수가 나와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초거대 선박들도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300m짜리 바다 괴수는 그저 생선에 불과하겠죠. 하지만 컬쳐 시리즈만큼 거대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쓰고 싶다면, 역시 필력과 발상이 따라야 합니다. 아무나 이안 뱅크스나 스티븐 백스터가 되지 못하겠죠. 결국 생체 우주선이나 거대 괴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꽤나 지난한 과정일 듯합니다. 뭐, 다른 소재들도 쉽지 않겠으나, 유독 거대 괴수가 더 그렇다는 느낌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