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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괴수 생태학 소설에서 생태주의 소설로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괴수 생태학 소설에서 생태주의 소설로

OneTiger 2018. 3. 2. 22:40

[이런 <듄> 같은 소설은 거대 괴수, 행성 공학, 사막 생태계, 원주민 수탈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워렌 페이가 쓴 <프래그먼트>는 생태학 소설입니다. 그렇게 불러도 무리가 없겠죠. 미지의 섬에서 주연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기괴한 생물들이 살아가는지 연구합니다. <프래그먼트>는 가상의 살벌한 자연 생태계를 이야기하고, 따라서 생태학 소설이 될 수 있겠죠. SF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들 중 하나는 이렇게 생태학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생태학이 SF 소설의 전유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상상 과학을 빌리지 않아도, 작가는 자연 생태계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여러 동물 소설들은 생태학 소설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어느 정도 인간적인 시선을 가미했으나, 시튼은 늑대나 불곰이나 까마귀의 여러 생태들을 서술했어요. 하지만 주류 문학은 좀 더 멀리 나가지 못합니다. 생태학은 단기적인 학문이 아닙니다. 38억 년 동안 생명체들은 기나긴 역사를 흘렀습니다. 게다가 생명체들은 지구 곳곳으로 퍼졌습니다. 태양이 열을 전달하지 않는다면, 지구에서 지표면 생명체들은 제대로 살아가지 못할 겁니다. 생태학은 아주 거시적인 학문입니다. 주류 문학은 그렇게 멀리 나가지 못합니다. 반면, SF 소설은 멀리 나갈 수 있고,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있죠.



주류 문학 작가들은 생태학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SF 작가들은 생태학을 훨씬 더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종종 환경 오염을 경고하는 과학자들은 SF 창작물들을 인용합니다. 그건 SF 창작물이 그렇게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주류 문학보다 SF 소설에서 생태학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SF 작가들은 숱한 소설들에서 다양한 생태학들을 이야기합니다. 과학자들이 개조 야수를 만든다면, 그 야수는 자연 생태계를 교란할지 모릅니다. 강대국 정부들이 광역 병기를 실험한다면, 그 광역 병기는 돌연변이를 생성할지 모릅니다.


시간 여행자들은 과거로 돌아가고 공룡들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우주 승무원들은 외계 행성으로 날아가고 새로운 생명체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밀림 탐사대는 울창하고 깊은 숲 속에서 아직 멸종하지 않은 공룡들을 발견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기후 변화는 미래의 공룡들을 양산할지 몰라요. 인류가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이룩한다면, 공산주의 유토피아는 자연 환경을 보존하거나 전혀 다르게 바꿀지 모르죠. SF 작가들은 생태학을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고, SF 생태학 소설들은 흥미진진합니다.



SF 세상에서 거대 괴수나 위험한 야수는 생태학 소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자연 생태계에는 커다란 포식자들이 있고, 그런 포식자들은 거대 괴수나 위험한 야수가 될 수 있어요. 현실 속의 아무르 호랑이나 바다 악어나 비단뱀이나 백상아리는 괴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야수들은 현실적인 괴수죠. SF 작가들은 훨씬 심하게 뻥을 칠 수 있습니다. 울창한 열대 우림에서 밀림 탐사대가 스테고사우루스를 찾는다면, 스테고사우루스는 정말 거대 괴수가 될 수 있겠죠. 커다란 골판들을 매달고 날카로운 가시들을 휘두르는 9m짜리 야수는 누가 봐도 거대 괴수일 겁니다.


그래서 생태학 소설은 자극적인 괴수 소설로 이어질 수 있죠. 하지만 이런 소설에서 작가는 자극적인 살육만 추구할 뿐이고, 진짜 자연 생태계에 별로 관심이 없겠죠. 아무르 호랑이나 백상아리는 살육 기계가 아닙니다.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하지만 살육 행위가 아주 자극적이기 때문에, 그게 상품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창작가들은 열심히 살육 행위를 강조하죠. 동물 싸움을 즐기는 모든 사람이 전쟁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물 싸움은 폭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생태학 소설이나 괴수 소설만큼 생태주의 SF 소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태주의 소설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 어울리는 광경을 그립니다. 자연 생태계는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어울리는 무대입니다. 생물학자들이 개별적인 생물들을 연구할 때, 생태학자는 전체적인 그물망을 관찰하고 서로 다른 생명들이 서로 의존함을 인식합니다. 생태주의 철학은 그런 다양성을 빌렸고,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생태주의 철학에서 다양성은 자연 생태계만 아니라 성 소수자나 외국인 노동자, 원주민에게 닿습니다.


사람들은 생태학과 생태주의가 비슷하다고 오해하나, 둘은 서로 다릅니다. 생태주의는 분명히 생태학에게 영감을 빌렸으나, 성향이 서로 다릅니다. 생태학은 자연 생태계를 살피는 자연 과학이고, 생태주의는 평등한 공동체 운동이죠. 제일 좋은 방법은 생태학을 기반으로 생태주의를 펼치는 방법일 겁니다. 우리는 다른 동식물들을 보존할 수 있고, 동물 권리를 지킬 수 있고, 동시에 서로 권력을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수 자본가들이 엄청난 생산 수단을 차지하는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회 구조를 바꾼다면, 우리는 환경 오염을 막을 수 있고, 멸종 위기 동물들을 늘릴 수 있겠죠.


생태주의 소설에서 백상아리는 무지막지한 살육 기계가 아니라 자연 생태계의 구성원입니다. 괴수 소설 역시 생태주의 시각을 받아들일 수 있겠죠. 저는 그런 창작물들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자연 생태계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생태주의로 나갈 수 있다면, 괴수 소설 역시 그럴 수 있겠죠.



※ 이미지 출처: http://conceptartworld.com/inspiration/dune-concept-art-and-illustration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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