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램페이지>의 거대 악어와 육식공룡 본문
[이런 육식 파충류 괴수는 육식공룡과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음, 이런 자연관이 괜찮을지….]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 앨런 그랜트와 팀과 렉스는 몰래 호수를 건너려고 합니다.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호숫가 근방에서 쿨쿨 잠들었기 때문이죠. 그랜트는 조용히 보트를 띄웠으나, 렉스는 그만 재채기를 터뜨리고 맙니다. 총소리처럼 재채기는 호숫가를 시끄럽게 울렸고, 결국 티라노사우루스는 잠에서 깨고 보트를 쫓습니다. 팀은 (파충류가 다들 헤엄칠 수 있기 때문에) 티라노사우루스가 호수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고, 정말 육식공룡은 머리와 등줄기, 꼬리의 윗부분을 드러내고 악어처럼 헤엄칩니다.
그랜트는 티라노사우루스가 헤엄치는 모습이 정말 악어 같다고 생각해요. 악어처럼 티라노사우루스는 물 속으로 들어가고 갑자기 보트를 습격하죠. 이 장면은 실사 영화 시리즈에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쥬라기 공원 III>에서 스피노사우루스가 배를 습격하는 장면이 약간 비슷할지 모르겠군요. 음, 실제 티라노사우루스가 물 속에 있는 동물을 사냥했는지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스피노사우루스가 헤엄쳤다고 주장하는 고생물학자들은 있으나, 티라노사우루스가 헤엄쳤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어쩌면 저 부분은 소설가의 상상에 불과할지 모르죠.
저는 영화 <램페이지>의 예고편을 봤을 때, 저 장면(악어처럼 티라노사우루스가 헤엄치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왜냐하면 드웨인 존슨과 나오미 해리스가 등장하는 <램페이지>는 1980년대 비디오 게임 <램페이지>를 원작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원작 게임은 거대 고릴라와 수각류 공룡과 늑대인간이 도시를 파괴하는 내용입니다. 아마 거대 고릴라는 영화 <킹콩>에게서 영향을 받았겠죠. 수각류 공룡은 1925년 영화 <잃어버린 세계>나 <고지라>에게서 영향을 받았을지 몰라요. 아니면 <킹콩>에서 육식공룡과 킹콩이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영향을 끼쳤을지 모릅니다.
늑대인간은 SF 장르가 아니라 고딕 호러 장르에서 주로 출현함에도 왜 킹콩이나 육식공룡과 함께 등장했는지 아리송하군요. 어쨌든 비디오 게임 속에서 세 괴수들은 열심히 도시를 파괴했고, 영화 <램페이지>는 그걸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 도시를 부수는 거대 수각류 공룡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육식공룡 대신 거대한 개조 악어가 등장합니다. 어쩌면 <고지라>나 <쥬라기 공원>과 다르게 만들기 위해 영화 제작진은 <램페이지>에 육식공룡이 아니라 거대 악어를 집어넣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램페이지>에 등장하는 거대 고릴라가 알비노인 이유는 킹콩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킹콩>이나 <고지라>나 <쥬라기 공원>이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램페이지>는 그저 킹콩과 고지라와 육식공룡을 대충 뒤섞은 영화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영화 제작진은 <램페이지>가 <킹콩>이나 <고지라>나 <쥬라기 공원>의 속편처럼 보이지 않기 원했을 테고, 그래서 알비노 고릴라와 거대 악어를 집어넣었겠죠. 물론 이는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합니다. 정확한 근거는 없어요. 어쨌든 영화 속에서 거대 개조 악어는 수각류 육식공룡을 대신합니다.
영화 예고편을 봤을 때, 저는 수각류 공룡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약간 실망했어요. 하지만 다른 관객들은 수각류 공룡이든 거대 개조 악어든 상관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런 관객들은 양쪽 모두 거대한 육식 파충류 괴수이고,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죠. 게다가 <쥬라기 월드>나 <고지라>가 연이어 개봉했기 때문에 관객들은 수각류 육식공룡보다 거대 개조 악어가 더 참신하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수각류 육식공룡과 달리 거대 개조 악어는 멋진 수중전을 연출할 수 있겠죠.
어쩌면 <램페이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룡을 파충류 괴수라고 생각한다는 반증일지 모릅니다. 음, 근거는 없으나, 그럴지 모르죠. 수많은 고생물학자들은 공룡이 새와 가깝다고 말하고, 아예 공룡은 새라고 말하는 학자들 역시 있습니다. 그래서 '비조류 공룡'이라는 표현 역시 등장했죠. 하지만 앨런 그랜트가 헤엄치는 티라노사우루스를 악어라고 생각한 것처럼 여전히 공룡은 파충류 괴수라는 면모를 간직했습니다. 깃털들이 달린 티라노사우루스가 헤엄친다면, 그건 별로 악어처럼 보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가 정말 깃털들을 달았는지 아직 논란이 분분하죠. 그래서 티라노사우루스는 여전히 파충류 괴수처럼 보일 수 있고, 덕분에 <램페이지>에서 거대 개조 악어는 파충류 괴수라는 위상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과학적인 오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원시인이 공룡과 함께 살았다는 오류보다 낫겠죠. 하지만 공룡이 파충류 괴수라는 인식보다 공룡이 새와 가깝다는 인식이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깃털들을 달지 않은 수각류 공룡들이 싸돌아다니는 광경 좀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소형 수각류들은 깃털들을 달아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