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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퍼디도 정거장>의 나방 괴수와 모스라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퍼디도 정거장>의 나방 괴수와 모스라

OneTiger 2017. 10. 31. 20:00

[모스라는 여왕 제노모프 같은 징그러운 절지류 괴물 생산 공장, 절지류 암컷 괴물들과 다르죠.]



소설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은 절지류 괴수를 때려잡는 이야기입니다. 이 풍성한 소설은 여러 이야기들, 특히 도시 경관을 묘사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았으나, 근본적으로 절지류 괴수가 등장하는 이야기죠. 그 괴수들은 나방처럼 생겼고, 사실 나방이라고 불립니다. 아주 징그럽고 흉악한 나방들이죠. 작가 차이나 미에빌은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했고, 꿈에서 도저히 보고 싶지 않은 징그러운 벌레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차이나 미에빌이 무조건 절지류를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취급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퍼디도 정거장>은 온갖 유사 인간들을 내보내고, 그 중에 벌레 종족도 있습니다. 이 벌레 종족을 이용해 차이나 미에빌은 절지류를 혐오하는 고정 관념을 열심히 비틉니다. 어쩌면 어떤 독자들은 이게 역겹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예전부터 절지류들은 별로 존중을 받지 못했고, 언제나 끔찍한 괴물이 되곤 했습니다. 장르 소설가들은 이런 사고 방식을 신나게 휘둘렀죠. 비단 장르 소설만이 아닙니다. 카프카가 쓴 <변신>에서 주인공이 송아지나 까치로 변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아마 느낌이 훨씬 다를 겁니다.



저런 주류 문학조차 벌레를 뭔가 기이하고 이질적인 것으로 그립니다. 장르 소설가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이미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태어날 때부터 절지류 괴물들은 여기저기에서 우글거렸습니다. 예전에 말한 것처럼 허버트 웰즈는 그런 거미 괴물들을 선보였죠. 로버트 하인라인은 거미 괴물들을 우주 전쟁에 집어넣었고, 이런 설정은 폭발적인 인기를 끕니다. 그래서 숱한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혐오스러운 절지류 외계인들을 내세웁니다. 절지류 동물들이 인간을 비롯한 척추 동물들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SF 창작가들은 절지류 외계인들을 아주 쉽게 적대적인 종족으로 꾸밀 수 있습니다.


만약 우주 해병들이 뭔가를 거리낌 없이 때려죽여야 한다면, 절지류 외계인들은 아주 좋은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절지류들은 너무 징그럽기 때문에 이것들이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겁니다. 현실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곤충이나 벌레가 징그럽다고 생각하고 외면합니다. SF 소설 속에서 그런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엔더의 게임>처럼 뭔가 절지류를 동등하게 그리는 소설들도 존재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어요. 하지만 수많은 절지류 외계인들은 열심히 징그러운 외모를 뽐냅니다.



이런 사례들을 고려한다면, 모스라는 꽤나 특이한 괴수입니다. 모스라는 <모스라> 시리즈와 <고지라> 시리즈에 등장하는 거대 괴수입니다. 이름처럼 나방 괴수입니다. 고지라, 킹기도라와 함께 모스라는 여러 괴수들 중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합니다. 2014년 <고지라>에서 모스라는 등장하지 않으나, 이 영화는 모스라를 암시하는 힌트들을 슬쩍 집어넣었죠. 게다가 관객들은 속편에서 모스라를 제일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재미있게도 모스라는 다른 괴수들과 많이 다릅니다.


우선 모스라는 알록달록하고 둥글둥글하고 폭신폭신합니다. 다른 괴수들이 차갑고 거칠거칠하고 거무틔틔하다면, 모스라는 화려한 색감과 따뜻한 감촉을 자랑하죠. 게다가 모스라는 외모만 화사하지 않습니다. 모스라는 생명을 지키는 수호 천사이고, 고지라나 킹기도라 같은 파괴신이 아닙니다. 사실 치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영화들 속에서 여러 괴수들을 치유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괴수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고지라와 킹기도라는 자주 악역을 맡으나, 모스라는 그런 악역과 거리가 멉니다. 대부분 선역을 맡죠.



게다가 모스라는 암컷입니다. 온갖 스페이스 오페라들 속에서 이런 암컷 절지류는 사방팔방에 알들을 낳습니다. 그래서 끔찍한 괴물들을 양산하죠. <스타십 트루퍼스>나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 역시 그런 면모를 보여주고요. 하지만 모스라는 그런 끔찍한 생산 괴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답고 책임감이 있는 엄마입니다. 거대 괴수들 중에서 '정다운 어미 괴수'라는 면모도 꽤나 드물죠. 즉, 스페이스 오페라들 속의 흔한 절지류 괴물들과 달리 모스라는 우아하고 정답고 치유 능력이 있는, 그런 절지류 괴수입니다.


이는 SF 속의 절지류 괴수가 무조건 흉악하지 않다는 반증이죠. 어쩌면 서로 장르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저런 현상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들 속의 절지류 괴물들은 북미 SF 소설들에서 튀어나왔습니다. 반면, 모스라는 일본 특수 촬영물에서 등장했죠. 서로 출신이 다르기 때문에 속성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뭐, 딱히 근거는 없고,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에도 어떤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작품 속의 패러다임은 시대나 문화나 하위 장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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