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가상의 조지 오웰과 전체주의라는 피상적인 개념 본문

사회주의/서구 중심주의 비판

가상의 조지 오웰과 전체주의라는 피상적인 개념

OneTiger 2019. 1. 20. 18:48

문학 평론 서적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는 가상 인터뷰들을 담았습니다. 이 책에서 에이허브 선장(허먼 멜빌)부터 오규원까지, 여러 소설 등장인물들과 작가들은 가상 인터뷰들을 진행합니다. 이런 문학의 전설들은 남자들입니다. 허먼 멜빌부터 오규원까지, 문학의 전설은 모두 남자죠. 문학의 전설에서도 성 차별은 꽤나 심각한 것 같습니다. 가상 인터뷰들을 진행하는 동안 여러 (남자) 소설 등장인물들과 작가들은 자신들의 사상, 함의, 철학, 주제를 이야기합니다. 가상 인터뷰이기 때문에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에는 다소 주관적인 내용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신채호가 '몸을 쓰는 글쓰기'를 강조한다고 해도, 그건 신채호의 진짜 사상이 아닐지 모릅니다.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를 읽을 때, 독자는 이명원이 진행하는 가상 인터뷰를 통해 신채호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명원이 인터뷰하는 신채호는 완전한 가짜가 아닐 겁니다. 적어도 이런 인터뷰는 어느 정도 신채호를 담을 수 있겠죠. 살아있는 작가가 고인이 된 작가를 인터뷰하는 동안, 살아있는 작가는 자신의 사상을 고인이 된 작가에게 투영할 수 있습니다. 이명원은 자신의 사상을 신채호에게 투영할 수 있고, 독자는 이명원을 통해 새롭게 신채호를 이해할 수 있겠죠. 게다가 가상 인터뷰들을 담았기 때문에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는 전반적으로 대화 형식을 이용합니다.



대화 형식은 논의를 훨씬 생생하게 강조합니다. 일반적인 서술보다 대화는 훨씬 생생합니다. 서술 문장과 대화는 다릅니다. 대화는 목소리를 담습니다. 대화를 읽을 때, 독자는 인간이 말하는 장면과 인간의 목소리를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서술보다 대화는 훨씬 일상적입니다. 서술 문장은 딱딱하나, 대화는 생생합니다. 대화는 문어체를 담지 않습니다. 대화에는 구어체와 비속어와 유행어와 말 장난과 말 줄임이 있습니다. 종종 대화는 미묘하거나 모호한 말투를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술 문장보다 대화는 많은 것들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대화에는 두 사람 이상이 참가합니다. 대화하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 묻고, 따지고, 대답하고, 지적하고, 반박하고, 동의합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부딪히기 때문에 대화는 사상을 훨씬 강조하고 유도할 수 있죠. 서술 문장이 선형적으로 뭔가를 주장한다면, 대화는 비선형적으로 다양한 것들을 표출할 수 있습니다. 서술 문장에서 화자는 하나이나, 대화에서 화자는 둘 이상입니다. 그래서 대화는 유리합니다. 소크라테스부터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까지, 수많은 철학들, 사상들, 비평들은 대화 형식을 이용합니다.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김윤식이 임화를 선형적으로 서술했다면, 그건 단조롭고 딱딱했을 겁니다. 반면, 김윤식과 임화가 계속 대화하기 때문에 사상은 생생해질 수 있죠.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에는 여러 작가들이 있고, 복거일은 조지 오웰을 인터뷰합니다. 복거일이 조지 오웰을 가상으로 인터뷰할 때, 중요한 주제는 전체주의입니다. 복거일과 조지 오웰은 중국 공산당과 무솔리니와 히틀러와 스탈린을 언급하고 전체주의가 나쁘다고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전체주의가 꽤나 피상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체주의가 뭘까요? 일반적으로 전체주의는 강력한 중앙 권력이 수많은 인민들을 억압하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전체주의가 무엇인지 자세하게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규정에 동의할 겁니다.


강력한 중앙 권력이 수많은 사람들을 억압할 때, 그건 전체주의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돌프 히틀러와 이오시프 스탈린이 전체주의라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개념이 전체주의가 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전체주의 국가는 미국이 됩니다. 히틀러는 그저 유럽과 러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땡깡을 피웠을 뿐입니다. 스탈린 역시 그저 러시아와 동유럽과 중앙 아시아에서 땡깡을 피웠을 뿐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아프리카, 동남 아시아, 동아시아, 중앙 아시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에서 엄청난 폭력들을 저질렀습니다. 따라서 가장 악랄한 전체주의 국가는 미국이 되겠죠. 나치와 소비에트 연방은 감히 미국에게 까불지 못할 겁니다.



설사 미국의 끔찍한 횡포가 전체주의가 아니라고 해도, 전체주의보다 미국 제국주의는 훨씬 잔인합니다. 나치와 소비에트 연방은 미국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기후 변화가 행성적인 재앙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어떤 전체주의보다 미국이 훨씬 잔인하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게다가 아돌프 히틀러와 이오시프 스탈린이 전체주의를 상징한다고 해도, 나치와 소비에트 연방은 앙숙이었습니다. 사실 2차 세계 대전은 나치와 소비에트 연방의 전쟁이었고, 2차 세계 대전은 사회주의 빨갱이들을 죽이기 위한 전쟁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2차 대전이 터지기 전에 에스파냐 노동자들이 파쇼주의에 죽어라 저항했음에도, 유럽 지도자들은 그들을 돕지 않았죠. 유럽 지도자들은 파쇼주의를 물리친 이후 에스파냐 노동자들이 혁명할 거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솔직히 에스파냐 노동자들은 혁명하기 원했어요.)


결국 2차 대전에서 소비에트 연방 역시 죽어라 파쇼주의에게 저항해야 했습니다. 왜 나치와 소비에트 연방이 치열하게 싸웠음에도, 왜 나치가 침략했고 소비에트 연방이 처절하게 저항했음에도, 사람들이 나치와 소비에트 연방을 똑같이 전체주의라고 생각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본주의가 양쪽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파쇼주의와 공산주의를 싫어하고 양쪽을 한 덩어리로 묶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나치가 잔인하게 침략했고 소비에트 연방이 처절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세력은 나치와 소비에트 연방을 한 덩어리로 묶지 못했습니다. 그걸 가리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죠. 그러는 동안 한나 아렌트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은 전체주의를 언급합니다. 이건 유용한 개념이 되었고 자본주의 세력은 이런 개념을 이용합니다.



여기에서 훨씬 커다란 문제가 발생합니다. 전체주의를 비난하는 동안 자본주의 세력은 자신을 포장하고 미화합니다. 사실 전쟁이 터지기 전에 자본주의 세력은 파쇼주의를 별로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세력은 파쇼주의가 사회주의 빨갱이들(유럽과 러시아의 여러 사회주의 세력들)을 처치하기 바랐습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파쇼주의를 막아야 한다고 외쳤으나, 유럽 지도자들과 자본가 계급은 듣지 않았습니다. 에스파냐에서 노동자 집단들은 파쇼주의와 싸웠으나, 유럽 지도자들과 자본가 계급은 그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레프 트로츠키는 파쇼주의가 문제라고 안절부절 못했으나, 유럽과 미국은 레프 트로츠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급진적인 사회 민주주의는 파쇼주의와 싸우기 원했으나, 자본가 계급에게는 열의가 없었죠. 자본가 계급은 파쇼주의보다 사회주의 빨갱이들과 노동 조합들이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세계 대전이 터진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이윤 축적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파쇼주의가 동유럽을 침공했을 때, 이오시프 스탈린은 경악했습니다. 동유럽 너머에 소비에트 연방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럽은 이런 침략을 묵인했습니다. 나치가 프랑스를 본격적으로 침략할 때까지, 자본주의 세력은 적극적으로 파쇼주의를 막지 않았죠.



소설 <1984>를 읽는 동안, 많은 독자들은 전체주의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중앙 정보부가 의도적으로 <1984>를 퍼뜨렸기 때문에 <1984>는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그 자체로서 <1984>는 아주 훌륭한 소설이고 감동적인 소설입니다. 하지만 미국 중앙 정보부가 퍼뜨렸기 때문에 <1984>는 훨씬 많은 명성들을 얻을 수 있었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독자들은 <1984>를 읽는 중일지 모릅니다. <1984>를 읽고 전체주의를 비판할 때, 독자들은 이런 흐름을 고려해야 할 겁니다. 어떤 고립된 공간에서 소비에트 연방은 혼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가 식민지들을 수탈하고, 사회주의 세력들을 학살하고, 파쇼주의에 동조하고, 사회주의 세력들이 극단적으로 세계 대전에 대비하는 동안, 소비에트 연방은 나타났습니다. 이건 이오시프 스탈린과 소비에트 연방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2차 세계 대전이 20세기 최대의 비극이라고 해도, 분명히 스탈린은 대숙청을 저질렀습니다. 그건 아주 끔찍한 비극이죠. 우리는 이오시프 스탈린을 강렬하게 비판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직 스탈린만 비판한다면, 그건 피상적인 비판이 되겠죠. 이오시프 스탈린을 비판하고 싶다면, 우리는 자본주의 세력들을 훨씬 강렬하게 비판해야 할 겁니다.



복거일과 (가상의) 조지 오웰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복거일은 그저 전체주의가 나쁘다고 비난할 뿐입니다. 그건 피상적인 시각입니다. 자본주의 세력이 기후 변화라는 행성적인 재앙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그건 너무 피상적인 시각입니다. 열대 우림을 파괴하고 플랜테이션 농장을 세우기 시작한 세력은 전체주의가 아닙니다. 플랜테이션 농장부터 기후 변화까지, 현대적인 환경 오염들을 일으키는 주된 범인은 자본주의 세력입니다. 전체주의가 악랄하다고 해도, 전체주의는 기후 변화라는 행성적인 재앙에 감히 까불지 못하겠죠. <1984>를 읽을 때, 독자들은 이런 점에 주의할 수 있을 겁니다.



※ 개인적으로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가상의) 단재 신채호가 말한 문학 비평입니다. 임의적으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 내 생각에는 자네들이 하고 있는 그 문학이라는 것이 자주 문장 다듬기에 시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곤 한다네. 자네를 포함하여 젊은 문사들은 글쓰기가 손가락과 키보드에서 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지만, 나는 문학이란 문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장을 자연스럽게 뿜어내게 하는 삶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네. 문사란 무엇인가. 나는 사유의 근본주의자라고 생각한다네. 그래서 모든 문사는 혁명을 꿈꾸고 타협주의자나 개량주의자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나. 그런데 자네가 속해 있는 그 문인 동네에는 어떤 자들이 넘쳐나고 있는가. 자네도 그렇게 글을 쓸 바에야 펜을 꺾고 토굴에나 들어가는 것이 낫겠네. 자네의 건필을 기원하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