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사회주의/이윤 극대화 비판 (32)
SF 생태주의
천문학자는 천체들을 연구합니다. 따라서 천문학자는 우주를 바라봅니다. 만약 소설 속에 천문학자들이 나온다면, 그 소설 역시 우주를 논의할 테고, 따라서 그 소설이 SF 소설일 가능성은 높겠죠. 하지만 장 피에르 뤼미네가 쓴 은 SF 소설이 아닙니다. 장 피에르 뤼미네는 세계적인 천문학자이고, 금성의 약속은 SF 제목 같은 느낌을 풍기나, 이 소설은 SF 장르가 아니에요. 은 계몽주의 시대 천문학자들을 보여주고 어떻게 그들이 천문학 연구에 매진하는지 묘사합니다. 이 소설은 절대 SF 소설이 아니나, 과학자들이 활약하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은 시대극에 가까우나, 시대극과 SF 소설 양쪽에서 과학자들은 서로 비슷한 역할을 맡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우주와 세상과 자연이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과학자들은 ..
소설 에 나오는 아이언 말콤은 수학자입니다. 이 소설에서 아이언 말콤은 혼돈 이론을 떠들고 인간이 복잡한 체계를 쉽게 예측하지 못할 거라고 주장합니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 때 뉴욕에서 나비의 날개 바람은 태풍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이건 복잡한 체계 속에서 수많은 것들이 방대한 영향을 미치고 인간이 그걸 모두 계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이언 말콤은 사람들이 겸손해지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예측하지 못하는, 특히, 생명 현상처럼 스스로 질서를 구축하는 체계를 주물럭거리는 인간은 훨씬 겸손을 배워야 하겠죠. 공원을 답사하는 동안 아이언 말콤이 계속 이런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존 해먼드는 골치가 아팠을 겁니다. 존 해먼드는 아이언 말콤을 초대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겠죠. 사실 아이언 말콤은 불청객일지 ..
프레데릭 폴이 쓴 소설 은 상품 광고로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계속 시끄럽게 상품 광고를 떠들고, 소설 주인공은 그 광경을 희한하게 바라봅니다. 게다가 그 상품 광고는 사람들을 향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상품 광고는 다른 누군가를 향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꽤나 희한한 광경입니다. 사람들에게 상품을 광고할 필요가 없다면, 왜 그렇게 그 사람은 열심히 상품 광고를 떠들까요. 상품을 판매하지 못한다면, 광고는 가치를 잃습니다. 따라서 광고를 본 이후 사람들은 상품을 사야 합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상품을 사든 말든, 광고를 떠드는 사람은 상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마 SF 설정에 익숙한 독자는 이 무엇을 말하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 SF 설정에 익숙하지..
이른바 친일파 작가들은 남한 사회가 품은 고달픈 문제점들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추앙하는 작가들이 일본 제국을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식민지 시대를 거쳤고, 그 동안 여러 작가들은 권력의 나팔수가 되었습니다. 북한과 남한은 독립을 당했으나,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따라서 친일파 작가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서 남았습니다. 아예 서정주 같은 작가는 일본 제국을 비롯해 군사 정부들을 지지했고, 그릇된 선례를 남겼죠. 우리는 작가가 시대의 양심이 되거나 예술 작품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생각하나, 작가와 예술 작품은 얼마든지 권력을 비호할 수 있고 권력의 나팔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억압적인 식민지를 거치지 않은 나라에서 작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할까요? 그런 나라에서 작가..
오늘은 노동자의 날입니다. 하지만 어떤 달력에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박혀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을 노동자의 날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를 겁니다. 어떤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노동자라는 단어가 나쁘다고 가르칩니다. 그런 선생님들은 근로자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 다들 노동자라는 단어를 부정할까요? 이게 지배적인 관념을 재생산하는 과정일까요? 마르크스주의가 노동자 계급에게 주목했기 때문에 남한 지배 계급이 근로자라는 단어를 일부러 퍼뜨렸을까요? 상황은 반대이나, 윗동네 북한 역시 비슷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북한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꽤나 좋아합니다. 한때 사회주의 혁명을 거친 국가로서 북한은 노동자들을 중시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정말 북한이 노동자들을 중시하나요? 어떤 공산주의..
SF 소설을 읽을 때, 마르크스주의적인 시각은 꽤나 유용합니다. 마르크스주의 시각은 미래 문명, 자본주의 디스토피아, 대규모 환경 오염 등을 분석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SF 독자들은 반박할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독자들은 소비에트 연방이 망했고, 마르크스주의 역시 망한 사상이고,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에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독자들은 왜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살아있어야 하는지 힐난할지 몰라요. 다들 소비에트 연방과 마르크스주의를 서로 연결하고, 그래서 마르크스주의가 망했다고 말하죠. SF 독자들은 이런 망한 사상으로 SF 소설을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가 궁금합니다. 정말 소비에트 연방은 마르크스주의를 상징할 수 있는 국가..
극단적인 수구 세력들은 급진적인 사회주의가 지옥문을 열 거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주의 체계가 온 세상을 무너뜨리거나 사람들을 재난에 빠뜨리거나 무질서와 혼란을 조장할 거라고 주장해요. 종종 온건한 보수 우파들도 그런 주장에 동조합니다. 그리고 이런 수구 세력은 언제나 소련의 가장 부정적인 부분이나 제3세계 공산당의 학살과 내전을 언급합니다. 진보 지식인들 역시 사회주의를 비판할 때, 소련이나 제3세계 공산당의 학살을 언급해요. 하지만 수구 세력들의 주장과 달리 그런 부정적인 측면들은 사회주의와 별로 연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회주의 체계는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 존재합니다. 사회주의가 '사회'를 강조하는 이유는 사회적 공유와 분배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조직이나 집단이 사회주의..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소설 는 멸종을 탐구합니다. 지구에서 생명체들은 꾸준히 대량 멸종에 돌입하곤 했습니다. 공룡들이 멸종한 사건은 가장 유명하나, 다른 대량 멸종들 역시 지구 생태계를 바꿨습니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인류가 6번째 대량 멸종을 경험할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계가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착각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몇 천 년이나 몇 만 년 이후, 지구 생태계는 다시 붕괴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지 몰라요. 그때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만약 살아남는다면, 얼마나 많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때 인류 문명이 무슨 모습으로 바뀔까요. 이는 매우 흥미로운 물음이나,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겁니다. 과학자들은 무엇이 6번째 대량 멸종을 촉발할지 알지 못해요...
소어 핸슨이 지은 는 교양 식물학 서적입니다. 저자는 식물이 어떻게 씨앗을 활용하고 널리 지구상에 퍼질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요. 씨앗은 화두에 별로 오르는 요소가 아니나, 식물이 지구상에 퍼지는 과정에서 엄청난 공로를 세웠고, 아울러 인류에게 훌륭한 먹거리들을 제공했습니다. 가령, 두꺼운 코코넛 열매가 바다를 둥실둥실 항해하지 못했다면, 야자 나무들은 해안 지대에 퍼지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해안 사람들은 코코넛 열매를 먹지 못했을 테고, 해안 공동체들은 번성하지 못했겠죠.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 식물들은 다양한 씨앗들을 개발했습니다. 도시락처럼 어떤 씨앗은 영양분을 듬뿍 갖추고 싹이 틀 때까지 오래 기다릴 수 있습니다. 어떤 씨앗은 달콤하고 영양이 풍부한 과육으로 동물들을 유혹하고, 과육을 먹는 동물들..
이나 같은 SF 소설은 계획 경제를 이야기합니다. 계획 경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 용어에 거부감을 느낄지 모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계획 경제보다 시장 경제에 더 친숙하겠죠. "자본주의는 시장 경제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시장 경제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원리는 좋은 거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장 안에서 서로 자유롭게 거래하고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이게 사실일까요. 정말 자본주의는 시장 경제일까요. 시장만 존재한다면, 그건 무조건 자본주의일까요. 하지만 시장이라는 개념은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뭔가를 거래하기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