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시장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인 이유 본문
<붉은 별>이나 <2312> 같은 SF 소설은 계획 경제를 이야기합니다. 계획 경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 용어에 거부감을 느낄지 모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계획 경제보다 시장 경제에 더 친숙하겠죠. "자본주의는 시장 경제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시장 경제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원리는 좋은 거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장 안에서 서로 자유롭게 거래하고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이게 사실일까요. 정말 자본주의는 시장 경제일까요. 시장만 존재한다면, 그건 무조건 자본주의일까요. 하지만 시장이라는 개념은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뭔가를 거래하기 원한다면, 시장을 형성하곤 합니다. 시장 안에서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물건을 팔거나 삽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행위를 자본주의라고 생각하죠. 그렇다면 왜 자본주의는 '시장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일까요. 시장이 사회 구조의 중심이라면, 왜 시장주의라고 부르지 않고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걸까요. 이유는 뻔합니다. 사회 구조의 중심이 자본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겁니다. 시장은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일부일 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본을 순환하는 과정입니다.
만약 원시 공동체나 중세 마을이나 근대 도시에 시장이 형성된다고 해도 다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구조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원시 공동체나 중세 마을이나 근대 도시는 자본주의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오직 시장 경제만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생산 수단을 차지한 소수 자본가들과 노동력 이외에 팔 것이 없는 막대한 임금 노동자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부분입니다. 그래서 카를 마르크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노동 운동에 주목했고, 노동 운동은 여전히 자본주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운동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 시장 경제'라는 공식에는 자본가들이 생산 수단을 독차지한다거나 노동자들이 상품으로 전락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시장 경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기득권들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 경제를 무조건 자본주의인 것처럼 포장했기 때문이죠. 흑색 선전과 세뇌의 잘못일 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개인이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기득권들과 사회 구조적인 부분이 문제죠.
시장은 좋은 겁니다. 어쩌면 미래 인류는 시장 대신 계획 경제를 이용할지 모릅니다. 위에서 언급한 <붉은 별>이나 <2312> 같은 SF 소설들처럼 미래 인류는 시장 경제보다 계획 경제에 치중할지 모르죠. 개인적으로 언젠가 계획 경제가 시장을 밀어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리 기구는 계획적으로 인민들의 욕구를 파악할 수 있고, 인민들은 계획적으로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일지 아무도 모를 테고, 그 전까지 시장 경제는 계속 존재하겠죠. 시장 자체는 좋은 겁니다. 시장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정말 자유롭고 평등하게 거래할 수 있다면, 시장은 더없이 좋습니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그게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죠. 이미 어마어마한 수탈이 역사적으로 누적되었기 때문이죠. 어떻게 이런 수탈 위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평등하게 거래하겠어요. 인류 통사를 구태여 논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침략과 정복과 학살이 인류 역사를 관통했는지 압니다. 그런 침략과 정복과 학살은 막대한 사유 재산과 지주와 식민지로 이어졌고, 자본주의 역시 거기에서 비롯했죠. 자본주의가 그런 과거를 청산했나요? 자본주의가 그런 침략과 정복과 학살을 반성했나요? 아니, 오히려 자본주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막대한 온실 가스를 뿜는 중입니다.
하지만 숱한 지식인들과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간과합니다. 그들은 무조건 시장 경제가 자본주의라고 부르짖고, 시장 원리를 위해 자본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외칩니다. 원주민들이 수탈을 당하거나 야생 동물들이 멸종하거나 자연 환경이 오염되는 상황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자칭) 지식인들이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말을 떠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칭) 지식인들치고 역사적인 수탈이나 환경 오염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더군요. 그렇게 밑바닥 사람들과 자연 생태계를 외면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가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핵 발전소 노동자들이 핵 발전을 지지하는 이유는 시장 경제 때문이 아닙니다. 자본 순환 과정 때문입니다. 핵 발전소 노동자들은 그런 노동력 이외에 먹고 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에 핵 발전을 지지합니다. 시장 경제는 핵 발전을 지지하는 노동자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추구하고 싶다면, 노동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교섭력을 강화해야 할 겁니다. 언제나 말하듯 기본 소득이나 추첨 민주주의 같은 정책은 디딤돌이 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