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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음하하, 나는 골수 SF 독자야.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은 훨씬 전복적이야. 판타지는 낡은 골동품이고, 사이언스 픽션은 첨단 혁명이야. 그래서 나는 훨씬 전복적인 독자야." 만약 이렇게 어떤 SF 소설 독자가 자화자찬한다면, 이 자화자찬은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 소설 독자처럼, SF 작가들과 평론가들과 다른 독자들은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이 훨씬 전복적이라고 말합니다. 데이빗 브린은 이 자화자찬에 동의할 겁니다. 왜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이 전복적인가요? 혁명 시대에서 사이언스 픽션이 비롯했기 때문입니다. 메리 셸리와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는 초기 SF 작가들입니다. 메리 셸리와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는 19세기 서구에 속합니다. 19세기 서구는 근대화를 거치는 중이었습니다. 에서 카를 마르크스..
[이 장면은 우주 개척에 속하지 않으나, 이 장면과 우주 개척 게임은 비슷한 위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아앗, 세상에! 어떤 외계 행성에서 우주 탐사대는 불시착했습니다. 장거리 탐사 우주선이 외계 행성 공전 궤도를 지나가는 동안, 행성 인력은 어떤 작은 운석을 끌어당겼고, 운석은 탐사 우주선에 부딪혔습니다. 누군가는 이게 너무 불합리한 우연이라고 말할 겁니다. 아무리 행성 인력이 운석을 끌어당겼다고 해도, 넓고 넓은 우주에서 장거리 탐사 우주선과 운석은 아주 아주 작습니다. 양쪽은 아주 아주 작으나, 결국 양쪽은 충돌했고, 이건 너무 불합리한 우연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불합리한 우연은 나타났고, 외계 행성에서 우주 탐사대는 불시착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생존자들입니다. 이제 장거리 우주 탐사 대원들은..
소설 는 크게 세 부분들로 나뉩니다. 세 부분들 중에서 두 번째 부분은 제목 '바다의 노동자'와 가장 잘 어울립니다. 험준한 해안에서 소설 주인공 질리아가 온갖 육체 노동들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좌초한 선박에서 엔진을 건지기 위해 소설 주인공 질리아는 험준한 해안 생활을 극복해야 합니다. 해안에서 질리아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거칩니다. 이런 과정은 왜 소설 제목이 바다의 노동자인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질리아는 비단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생존자입니다. 질리아가 커다란 문어에게 잡혀갈 때, 소설 는 무인도 생존 소설 같습니다. 소설 제목은 바다의 노동자보다 '바다의 생존자'가 되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빅토르 위고는 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지 모르나, 가 거친 자연 속에서 소설 주인공이 살아남는다고 이야기하기 ..
소설 은 어떻게 척박한 외계 행성에서 주인공 우주 승무원이 살아남는지 보여줍니다. 외계 행성에 혼자 남았기 때문에 우주 승무원은 각종 생명 유지 장치들을 만들고 식량들을 길러야 합니다. 당연히 은 기계 공학과 우주 물리학에 치중합니다. 이 소설은 어떻게 우주 승무원이 임시 기지를 차리고 차량을 운전하고 감자들을 키우는지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독자들은 이게 정말 가능한지 논의를 벌이겠죠. 임시 우주 기지에서 덕테이프가 유용할까요? 정말 우주 승무원이 덕테이프로 우주 기지를 고칠 수 있을까요? 많은 독자들은 이런 부분이 하드 SF 장르에 가깝다고 여길 겁니다. 뭔가를 뚝딱뚝딱 만드는 모습. 이런 관점에서 하드 SF 장르는 공학을 예찬합니다. 하드 SF 장르는 과학적으로 엄중한 동시에 뭔가를 뚝딱뚝딱 만드는 ..
다니엘 디포가 쓴 소설 와 리처드 매드슨이 쓴 와 앤디 위어가 쓴 에는 핵심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은 와 이 비슷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어떤 독자는 아예 이 SF 판본 라고 간주할지 모릅니다. 양쪽 소설에서 주인공은 외딴 지역에 표류했고, 혼자 생존해야 하고, 자급자족 경제를 꾸려야 했습니다. 는 무인도를 다루고, 은 외계 화성을 다룹니다. 무인도와 화성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고, 그래서 은 어려운 SF 소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양쪽 소설은 비슷한 감성을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외딴 지역에서 인간이 혼자 생존할 수 있는가? 그때 인간은 무엇을 느끼는가? 인간이 문명을 떠날 때, 그게 무엇을 뜻하는가? 역시 비슷한 감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에서 소설 주인공은 외딴 지..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고, 첫인상은 많은 것들을 좌우합니다. 첫인상이 좋을 때, 인간은 그 대상이 긍정적일 거라고 기대합니다. 첫인상이 나쁠 때, 인간은 그 대상이 부정적일 거라고 경계합니다. 이런 기대와 경계는 계속 그 대상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첫인상을 중시합니다. 겉모습은 전부가 아니고 내면은 겉모습보다 중요하나, 그렇다고 해도 첫인상을 좋게 꾸미기 위해 사람들은 노력하죠. 소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제목과 표지 그림은 첫인상이 될 수 있고, 독자들은 첫인상으로 소설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인상적인 제목과 표지 그림을 고민합니다. 여기에서 표지 그림은 다소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작가는 표지 그림을 직접 그리지 못하죠. 어떤 소설책들은 ..
[언젠가 우리는 외계 인공 생태계를 조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전부가 아니겠죠.] 아무르 호랑이는 아주 멋진 야수입니다. 몸매는 육중하고 동시에 낭창낭창합니다. 아무르 호랑이는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동시에 날렵하게 뛰거나 조용하게 포복할 수 있습니다. 아무르 호랑이는 강력한 전사보다 노련한 암살자에 가깝습니다. 고양이과 맹수들 중 가장 교활한 암살자는 표범일 겁니다. 상대적으로 작고 가볍기 때문에 표범은 지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노릴 수 있어요. 표범과 달리, 호랑이, 특히 아무르 호랑이는 그렇게 지형을 마음대로 넘나들지 못합니다. 대신 아무르 호랑이는 육중한 체구를 이용해 목표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형을 마음대로 넘나들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르 호랑이 역시 암살자에 속합니다...
[게임 의 한 장면. 이런 외계 녹색 거주지는 인공 생태계가 될 수 있겠죠.] 소설 에서 인상적인 부분들 중 하나는 소설 주인공이 감자를 키우는 과정입니다. 아마 저만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겁니다. 앤디 위어가 왜 소설 주인공이 식물학자라고 설정했겠어요. 우주선 승무원이 화성에서 혼자 농사를 짓기 위해서겠죠. 화성은 죽은 행성이나, 소설 주인공은 감자 눈과 자신의 대변과 물을 적당히 섞고, 불모지에서 새로운 생명들을 튀웁니다. 소설 속에서 감자들은 그저 먹거리가 아닙니다. 죽은 행성에서 새로 태어나는 녹색 생명이죠. 화성에서 생존하기 위해 소설 주인공은 여러 작업들을 시도하나, 대부분 작업들은 기계 공학적입니다. 반면, 감자 농사는 생명체를 다루는 작업이고, 그래서 다른 작업들보다 특별합니다. 감자 농사..
예전에 알트 SF 잡지가 을 추천한 적이 있습니다. 알트 SF는 2015년에 한국에 나온 최고의 SF 소설을 꼽았고, 이 1위에 등극했죠. 앤디 위어가 쓴 이 소설은 왜 사람들이 사이언스 픽션에 열광하는지 아주 담백하면서 깔끔하고 깊게 보여줍니다. 앤디 위어는 우주 탐사 대원이 외계 행성에서 혼자 고립되었다는 상황을 설정합니다. 아주 긴박하고 앞이 캄캄해지는 위기입니다. 이 탐사 대원은 도저히 생존하지 못할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외계 행성에서 혼자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 순간, 믿지 못할 마법이 펼쳐집니다. 이건 정말 마법처럼 보입니다. 탐사 대원은 몇몇 장비들을 이용해 주거지를 만들고,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실험적인 식물들과 응가를 조합하고, 순환 장치를 고치고, 주변을 탐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