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라마와의 랑데부 (8)
SF 생태주의
예술가는 위대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술가를 찬양합니다. 왜 예술가가 위대한가요? 예술가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예술가가 문학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조각을 깎든, 음악을 작곡하든, 춤을 추든, 예술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합니다. 천경자 화가가 우아한 꽃들을 그리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예술가를 찬양합니다. 예술가와 달리, 수집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습니다. 수집가는 예술가가 아닙니다. 수집가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기 때문에, 수집가는 찬양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수집가는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집가가 집합이기 때문입니다. 왜 수집가가 집합인가요? 수집가는 여러 가지를 분류합니다. 수집가가 여러 가지를 분류하기 때문에, 똑같은 범주에서 여러 가지는 함께 존재합..
제임스 블리시가 쓴 은 비경 탐험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서 수중 인간들은 웅덩이 너머를 두려워합니다. 수중 인간들은 웅덩이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웅덩이 너머에는 뭔가가 있는 것 같으나, 수중 인간들은 웅덩이를 벗어나기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수중 인간들은 웅덩이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생체 잠수정(오오, 생체 잠수정…!)을 건조하고 웅덩이 밖으로 나갑니다. 다른 수중 인간들은 이게 무모한 시도라고 비난하나, 결국 생체 잠수정은 낯선 세계로 떠납니다. 지상에서 적응하기 위해 생체 잠수정은 온갖 고생길들을 거치나, 생체 잠수정 승무원들은 웅덩이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깨닫습니다. 소설 은 작은 수중 인간들, 웅덩이, 생체 잠수정(다시 한 번 감탄사. 오오, 생체 잠수..
소설 은 어떻게 척박한 외계 행성에서 주인공 우주 승무원이 살아남는지 보여줍니다. 외계 행성에 혼자 남았기 때문에 우주 승무원은 각종 생명 유지 장치들을 만들고 식량들을 길러야 합니다. 당연히 은 기계 공학과 우주 물리학에 치중합니다. 이 소설은 어떻게 우주 승무원이 임시 기지를 차리고 차량을 운전하고 감자들을 키우는지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독자들은 이게 정말 가능한지 논의를 벌이겠죠. 임시 우주 기지에서 덕테이프가 유용할까요? 정말 우주 승무원이 덕테이프로 우주 기지를 고칠 수 있을까요? 많은 독자들은 이런 부분이 하드 SF 장르에 가깝다고 여길 겁니다. 뭔가를 뚝딱뚝딱 만드는 모습. 이런 관점에서 하드 SF 장르는 공학을 예찬합니다. 하드 SF 장르는 과학적으로 엄중한 동시에 뭔가를 뚝딱뚝딱 만드는 ..
[게임 의 한 장면. 비현실적인 폭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쉽게 이어집니다.] 소설 에서 노틸러스는 만능 잠수함입니다. 네모 선장은 자신이 노틸러스를 몰고 어디에나 갈 수 있다고 장담하죠. 네모 선장이 자랑스럽게 장담한 것처럼, 노틸러스는 남극으로 향했고, 네모 선장은 남극점에 자신의 깃발을 꼽았습니다. 문제는 귀환이었습니다. 노틸러스는 얼음들에 갇혔고,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만능 잠수함은 함부로 빙판을 뚫고 나오지 못했어요. 그 덕분에 잠수함 승무원들은 전멸할지 몰랐고, 이 사태는 노틸러스의 최대 위기가 되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이보다 더 극적인 위기 상황은 없을 것 같습니다. 노틸러스가 다른 군함과 싸우거나 커다란 오징어들과 싸웠다고 해도, 남극 상황보다 그것들은 위험하지 않았을 것 ..
"나는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 내가 고도를 알았다면, 나는 그걸 썼을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곡 때문이었죠. 에서 두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고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계속 고도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동안 여러 대화들을 주고받습니다. 1막과 2막에 걸쳐 두 주인공은 계속 고도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결국 고도는 나타나지 않아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리나, 2막에서 희곡은 끝날 때까지 고도는 나타나지 않죠. 만약 희곡이 3막이나 4막이나 5막으로 계속 이어지고,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계속 고도를 기다린다고 해도, 결국 고도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에서 가장 커다란 사건은 고도가 나타나지 않은 사건이죠...
[하드 SF의 장점은 외계인이 아니라 복잡한 공학을 찬미하는 가능성입니다. (이미지 출처)] 소설 를 비평하는 어떤 글에서 듀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0세기의 정통 하드 SF 대부분은 곧 구닥다리가 될 것이다. 윌리엄 깁슨이 얼마 전 트위터에서 지적했듯, 우리의 시대를 가장 정확하게 예언한 건 하드 SF 작가들이 아니라 J.G. 발라드와 같은, 다른 비전을 가진 작가들이었다." 이 비평은 꽤나 모순적인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하드 SF 소설들이 복잡하고 엄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뉴웨이브 소설이나 소프트 SF 소설은 헐렁하고 과학적으로 엄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드 SF 소설들이 가장 핵심적인 SF 장르라고 여기죠. 하지만 복잡하고 엄중하기 때문에 하드 SF 소설은 특정 시대..
[게임 의 한 장면. 이런 게임은 대항해 시대의 우주 판본입니다.] 나오미 노빅이 쓴 소설 에는 데이빗 웨버가 호평하는 추전사가 붙었습니다. 데이빗 웨버는 가 데뷔 소설임에도 나오미 노빅이 흥미롭고 매력적이고 정갈한 이야기를 썼다고 칭찬했어요. 분명히 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나폴레옹 전쟁과 드래곤 편대들은 독특하고 웅장한 풍경들을 선사해요. 하지만 그저 이런 이야기나 풍경 때문에 데이빗 웨버가 를 호평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데이빗 웨버는 을 비롯한 시리즈를 썼습니다. 시리즈는 우주 함장 아너 해링턴이 함선을 이끌고 전투를 치르는 스페이스 오페라이고 밀리터리 SF 소설입니다. 동시에 시리즈는 전열함들에게 찬사를 바치는 소설이에요. 데이빗 웨버는 같은 전열 함대가 로망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이고, 그런 로..
소설 는 제임스 쿡 선장에게 바치는 찬가입니다. 주연(?) 우주선 인데버는 제임스 쿡이 탔던 인데버에게서 이름을 땄습니다. 소설 주인공 선장은 꾸준히 제임스 쿡을 회고하고, 자신이 제임스 쿡 같은 탐험가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소설 를 쓴 아서 클라크는 영국 작가입니다. 제임스 쿡 역시 대표적인 대영 제국 탐험가였고요. 따라서 아서 클라크는 위대한 영국 탐험가에게 찬사를 바치고 싶었을 테고, 에 인데버를 집어넣었을 겁니다. 제임스 쿡이 태평양을 탐험한 것처럼 아서 클라크는 우주 탐사대가 초거대 우주선을 돌아다니기 바랐을 겁니다. 는 정말 거시적이고 감동적인 소설입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저도 모르게 하늘을 바라보고 우주를 연상할지 모릅니다. 는 좋은 SF 소설이 따라야 하는 표준적인 절차일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