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노변의 피크닉 (10)
SF 생태주의
[문명 외부, 비경에는 미지의 자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경 탐험과 생태계 연구는 겹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주선을 타고 외계 행성으로 떠납니다. 외계 행성에는 드넓고 깊은 바다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잠수정을 타고 바닷속으로 들어갑니다. 바닷속에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거대 괴수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거대 바다 괴수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감탄합니다. 외계 해양 생태계에서 거대 바다 괴수는 핵심 생물종입니다. 거대 바다 괴수가 뭔가를 먹고, 부스러기들을 흘리고, 해저 지형을 바꾸고, 배설물을 내놓기 때문에, 해양 생태계는 활발하게 돌아갑니다. 거대 바다 괴수는 활발한 해양 생태계를 뒷받침하고, 활발한 해양 생태계에서 거대 괴수는 풍족하게 먹고 삽니다. SF 울타리에서 이런 이야기는 드물지 않습니다..
[이런 장면은 진부한 스페이스 오페라이나, 누군가는 지구 자연 환경을 새롭게 바라볼지 모릅니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 마우스 좌클릭하세요." 비디오 게임에서 이런 문구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비디오 게임이 기초적인 게임 규칙들을 설명한다면, 게임 플레이어가 마우스 좌클릭할 때까지, 규칙 설명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규칙 설명을 이해하고 마우스 좌클릭할 때, 마침내 규칙 설명은 다음으로 넘어갈 겁니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 스페이스 바를 누르세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게임 로딩 화면들은 이런 문구를 제시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스페이스 바를 누르기 전까지, 게임 로딩 화면은 게임 플레이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조의를 표시하기 위해 X를 누르세요."..
모스라는 엄마 괴수입니다. 고지라, 킹 기도라, 안기라스, 에비라, 헤도라 같은 숱한 일본 특촬 거대 괴수들 중에서 모스라는 거의 유일하게 엄마 괴수입니다. 수컷 거대 괴수들이 치고 박고 싸우는 상황에서 모스라는 특별하게 엄마 괴수입니다. 그래서 모스라는 mothra일 겁니다. 영어 이름 mothra는 아주 중요합니다. 왜 이게 중요한가요? mothra가 엄마를 가리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mothra는 엄마를 가리키기 위한 아나그램인지 모릅니다. 여기에서 'moth'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ra'에서 'r'은 가장 끝으로 움직입니다. 'mothra'는 'mothar'가 됩니다. 여기에서 'a'가 뒤집힌다면, 'a'는 'e' 같을 겁니다. 'a'가 'e'가 된다면, 'mothar'는 'mother..
"나는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 내가 고도를 알았다면, 나는 그걸 썼을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곡 때문이었죠. 에서 두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고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계속 고도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동안 여러 대화들을 주고받습니다. 1막과 2막에 걸쳐 두 주인공은 계속 고도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결국 고도는 나타나지 않아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리나, 2막에서 희곡은 끝날 때까지 고도는 나타나지 않죠. 만약 희곡이 3막이나 4막이나 5막으로 계속 이어지고,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계속 고도를 기다린다고 해도, 결국 고도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에서 가장 커다란 사건은 고도가 나타나지 않은 사건이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꽤나 유명한 문학 기법입니다. 이는 특별히 부정적인 기법으로서 유명합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모든 갈등을 단번에 해결하는 인위적인 장치를 뜻합니다. 소설, 만화, 연극, 애니매이션, 영화, 게임 등에는 수많은 갈등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갈등들은 긴장감을 형성하고, 격렬한 싸움이나 전투를 부르고, 비극이나 비장미를 연출합니다. 크고 복잡한 갈등을 이야기하는 창작물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을 겁니다. 그래서 창작가는 뭔가 압도적이고 복잡한 갈등을 집어넣고 싶어하죠. 문제는 그런 복잡한 갈등을 해소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복잡하게 갈등 관계를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어떻게 이런 복잡한 관계들을 깔끔하게 풀 수 있을까요? 어디에서 어떻게 갈등을 풀..
"결론도 없고, 설명도 없고, 해답도 없고…. 누가 그런 소설을 읽나? 왜 그런 갑갑한 소설을 읽지?" SF 세상에는 이런 평가를 받는 소설들이 있을 겁니다. 솔직히 대부분 SF 소설들은 모든 설정에 명쾌한 설명을 붙이지 못해요. (그래서 SF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SF 소설이 황당하다고 비난하죠.) 요란한 사이언스 판타지부터 묵직한 하드 사이언스 픽션까지, SF 소설들에서 설정은 상상의 영역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에서 작가는 온갖 인공 지능, 로봇, 돌연변이 괴물, 개조 생명체, 외계인을 늘어놓을 수 있으나, 어떻게 그런 것들이 작동하거나 살아있는지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 작동 원리가 궁금한 독자는 소설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겠죠. 작가가 어떤 인조인간이나 돌연변이 괴물을 제시하면, 독자는..
[비디오 게임 벽지. 만약 이 이런 표지 그림을 장식한다면….] 소설은 텍스트 매체이고, 그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종종 저는 좋은 소설들이 멋진 표지 그림을 붙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표지 그림이 소설 내용과 동떨어졌다면, 오히려 표지 그림이 없는 편이 나을지 모르죠. 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같은 소설은 좀 엉뚱한 표지 그림을 붙인 것 같습니다. 저는 왜 그런 그림이 를 대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어려운 책을 번역한 출판사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의 표지 그림은 좀…. 이 소설은 우주 탐사물입니다. 외계 생명체들이 우주 어딘가에 나타났고, 인류 탐사대는 우주선을 타고 외계 생명체들을 방문하고 조사하죠. 당연히 외계 생명체들의 서식지와 광..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느끼고, 맛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눈과 코와 귀와 피부와 혀는 다양한 정보들을 종합하고, 뇌는 그런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먹거리를 찾거나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 뇌가 인식하는 세상과 다르다면, 우리는 생존하지 못했을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존한다는 뜻은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인식했다는 반증이겠죠. 하지만 이게 완벽한 반증일까요. '통 속의 뇌'는 유명한 사고 실험입니다. SF 소설들 역시 통 속의 뇌를 이용하곤 하죠. 흔한 사이버펑크 소설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등장..
얼마 전에 완역본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은 굉장히 유명한 소설이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감독한 영화를 비롯해 여러 매체들에게 영향을 미쳤죠. 하지만 한국에서 이걸 읽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저는 한글로 이 소설을 읽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마침내 이 작품이 나오는군요. 출판사 역시 30년만에 선보이는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소설이라고 홍보합니다. 은 분명히 좋은 작품이나, 저는 의 이야기 구조가 훨씬 더 마음에 들어요. 아마 이 소설이 선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기이한 구역 설정일 겁니다. 예전에 말한 것처럼 기이한 구역 '존'은 문명 내부에 자리잡은 고립된 지역입니다. 기이한 구역은 여러 진귀한 물품들을 품었으나, 아무나 함부로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각종 이상 현상들이 나타나고 괴물들이 설치기..
[기이하고 울창한 자연과 적막한 폐허와 위험한 동물들. SF 창작가들은 계속 이런 설정을 사랑하겠죠.] 소설 은 아르카디와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썼습니다. 장르를 규정하기가 좀 애매하군요. 아마 우주적 공포로 부르면 좋을까요. 하지만 일반적인 우주적 공포와 달리 이 소설에서 공포나 광기보다 비극이나 암울함이 두드러집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가는 비슷한 소재를 이용해 공포와 광기를 강조하겠으나, 처럼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종종 유머나 개그를 곁들이지만) 공포보다 무력함이나 비극성을 드러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외계인들이 지구에 방문합니다. 그들은 금방 떠나고,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존'이라고 불립니다. 이 구역 안에서 굉장히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집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