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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가 거대 권력에게서 자유로울까 본문

사회주의/이윤 극대화 비판

SF 작가가 거대 권력에게서 자유로울까

OneTiger 2018. 5. 21. 07:08

이른바 친일파 작가들은 남한 사회가 품은 고달픈 문제점들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추앙하는 작가들이 일본 제국을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식민지 시대를 거쳤고, 그 동안 여러 작가들은 권력의 나팔수가 되었습니다. 북한과 남한은 독립을 당했으나,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따라서 친일파 작가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서 남았습니다. 아예 서정주 같은 작가는 일본 제국을 비롯해 군사 정부들을 지지했고, 그릇된 선례를 남겼죠.


우리는 작가가 시대의 양심이 되거나 예술 작품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생각하나, 작가와 예술 작품은 얼마든지 권력을 비호할 수 있고 권력의 나팔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억압적인 식민지를 거치지 않은 나라에서 작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할까요? 그런 나라에서 작가들이 누리는 자유가 진짜 자유일까요? 작가들이 권력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미국은 초강대국이고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식민지 시절을 한 번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작가들이 권력의 나팔수가 되지 않았을까요? 미국 작가가 모두 사상적으로 자유로울까요?



아쉽게도 미국 작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미국에 동조하는 유럽 작가들 역시 거대 권력에서 자유롭지 않았어요. <문화적 냉전>은 그런 미국과 유럽 작가들을 고발하는 책입니다. 냉전 시대에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은 서로 열심히 헐뜯었습니다. 특히, 미국은 유럽 국가들이 공산주의에 물들 거라고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첩보 부서는 여러 작가들을 포섭했고, 그들이 자유주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도왔습니다. 작가들은 잡지를 만들거나 잡지에 기고하거나 회담을 열었고, 자유주의가 옳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 활동을 위해 미국 정부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퍼부었어요.


어떤 작가는 그런 내막을 훤히 알았으나, 어떤 작가는 그런 뒷배경을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액수가 많았기 때문에 점차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다들 작가들이 첩보 부서와 손을 잡았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심지어 트로츠키주의자들조차 지원을 받았습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이오시프 스탈린을 열심히 깠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는 공산주의 그 자체를 싫어하지 않았어요. 미국 정부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방해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지원했죠. 현실 사회주의를 밀어내기 위해 자본주의 강대국은 공산주의를 지원했습니다.



어쩌면 이는 그저 애교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스탈린을 비방하기 위해 미국 첩보 부서는 아예 나치 인사들을 등용했습니다. 파쇼주의보다 현실 사회주의가 가시적인 방해물이었기 때문에 미국 첩보 부서는 나치 인사들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그런 손길을 문화계에 뻗었고, 나중에 이는 커다란 소동으로 번집니다. 이런 사실이 밝혀졌을 때, 어떤 작가들은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어느 사회에서든 작가들이 거대 권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거대 권력은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작가 역시 사회에 속한 개인이고, 따라서 거대 권력에게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작가가 소설을 써도, 그런 소설은 권력의 나팔수가 될지 모르죠. 설사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저도 모르게 작가는 권력을 비호할지 모릅니다. 평론가와 독자 역시 그런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독자는 자신이 자유롭게 소설을 비평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런 생각은 그저 착각에 불과할지 모르죠. 여기에서는 주로 소설을 이야기했으나, 비단 문화 예술만 아니라 자연 과학 역시 가부장적 구조 같은 지배적인 관념을 비호할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 과학 지식이 정말 과학적일까요?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같은 책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어따, 제목이 좀 길군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은 자연 과학을 빙자한 성 차별들을 늘어놓습니다. 여러 진화 심리학들은 섹스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가정하고, 무조건 섹스를 위해 남자가 행동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설사 섹스가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고, 문화와 관습은 후천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회 구조에 따라 관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그런 관념은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남자와 섹스를 연결합니다. 게다가 그런 주장은 가부장적인 차별로 이어지곤 합니다. 가부장적 구조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성 차별은 자연 과학으로 둔갑했어요. 이처럼 비단 문화 예술만 아니라 자연 과학 역시 지배적인 관념에 복종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건 그저 착각일지 모릅니다. 착각 속에서 우리는 지배 계급을 숭배하는 중일지 모릅니다.



문화 예술과 자연 과학이 만날 때, 그건 SF 소설이 됩니다. 문화 예술과 자연 과학을 가로지르는 교차로에 SF 소설은 서있습니다. SF 작가들이 거대 권력에게서 자유로울까요? 다른 예술가들이나 자연 과학자들과 달리, SF 작가들이 자유롭게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SF 작가들은 지구를 멀리 떠나고, 인류 문명을 멀리 떠나고, 전복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런 전복적인 상상조차 지배 계급이 허용하는 범위가 아닐까요? 솔직히 이런 것들을 일일이 따지기는 너무 피곤합니다. 이런 것들을 일일이 따진다면, 소설이고 뭐고 읽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SF 독자들은 이런 물음을 완전히 회피하지 못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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