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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SF 소설을 비판하는 이유

OneTiger 2018. 2. 22. 10:39

많은 SF 독자들은 로버트 하인라인이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스타십 트루퍼스> 같은 소설에서 하인라인은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듯하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하인라인은 민족 자결주의와 자유로운 독립을 지지하는 듯합니다.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인류 병사들은 남자들이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사람들은 구시대적인 가족 관계에 연연하지 않아요. 따라서 SF 독자들은 하인라인이 극단과 극단을 오간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일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버트 하인라인은 일관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내세웠습니다. <스타십 트루퍼스> 같은 소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스스로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스타십 트루퍼스>는 병영 문화를 예찬합니다. 중요한 점은 그 병명 문화가 자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인류 병사들은 스스로 입대했습니다. 아무도 강제로 끌려오지 않았습니다. 인류 군대는 병사들이 스스로 입대하는 군대이고, 그래서 개인의 자유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는 현실 속의 군대가 비자발적인 엉터리 집단이라는 반증입니다. 파격적이죠.



그래서 로버트 하인라인이 파격적인 작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로버트 하인라인은 전형적인 보수 우파입니다. 이유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계급 구조를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몇 천 년 동안 인류 사회는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계급 구조를 유지했습니다. 21세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들이 자연 환경을 오염시키고 저임금 노동자들을 착취할 때, 빈민들과 원주민들과 야생 동물들은 죽어나갑니다. 오랜 기간 동안 여자들은 자신들의 신체와 노동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신체와 노동을 통제하고 싶어도 여자들은 그럴 수단이 없었어요. 중산층 시민들 역시 자본주의가 옳다는 세뇌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병사들이 스스로 군대에 참가한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 개인은 어디에 속합니까? 자본주의 체계에서 개인이 정말 자유로운 개인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은 사회에 속했고, 따라서 우리는 사회 구조를 살펴야 합니다. 사회 구조를 살피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랜 인류 역사와 현대 문명과 미래 사회를 제대로 논의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수많은 SF 작가들, 평론가들, 독자들은 이런 사회 구조를 무시합니다. 그들은 계급 구조를 무시하고, 누가 생산 수단을 차지했는지 무시합니다. 뭐, SF 관계자들만 이런 문제를 드러낸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수많은 지식인들 역시 다르지 않아요.



어떤 인문학 강연에서 자칭 정치경제학 학자라는 강사가 그렇게 이야기하더군요. 그 강사는 인간이 사회에 참여할 때, 분배를 의식하고 스스로 참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게 사실일까요. 정말 사람들이 분배를 의식하고 스스로 참여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득권들이 막대한 생산 수단을 차지했기 때문에 제한적인 범위에서 사람들은 분배를 의식합니다. 기득권들이 막대한 생산 수단을 차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분배를 평등하게 논의하지 못합니다. 자칭 정치경제학자라는 그 강사는 이런 점을 지적하지 않더군요.


분명히 현대 문명에서 누군가는 엄청난 생산 수단을 차지했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걸 해결하기 위한 소비에트 연방이나 중국 인민 공사조차 그걸 해결하지 못했어요. 모순적이게도 상하이 코뮌은 문화 대혁명을 끝냈죠. 생산 수단은 그렇게 어렵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숱한 진보 지식인들은 그걸 언급하지 않아요. SF 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이나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진보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것만큼 SF 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을 비판하고 싶습니다. 로버트 하인라인만이 아닙니다. 커트 보네거트처럼 로버트 하인라인과 정반대되는 작가들조차 그런 문제를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아요.



저는 로버트 하인라인뿐만 아니라 커트 보네거트 작가 역시 비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제가 너무 까탈스러운지 모르죠. 제가 구태여 이런 SF 작가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주와 미래 사회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SF 작가는 행성을 뒤집어놓을 수 있습니다. <갈라파고스> 같은 소설은 행성 생태계를 뒤집어놓습니다. 행성을 뒤집을 수 있는 작가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현대 문명을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갈라파고스>는 그런 소설이 아니죠. <갈라파고스>는 억압적인 계급 구조를 비판하지 않고, 그저 인류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해요.


왜 SF 작가들은 그렇게 인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합니까. 인류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요. 인류가 그렇게 열등하고 야만적으로 보입니까. 인류는 분명히 불완전한 집단이고 한계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포기한다면, 누가 인간을 도울 수 있나요. 외계인들? 인공 지능들? 개조 생명체들? 어쩌면 인공 지능이나 개조 생명체가 정말 인류를 이끌지 모르죠. 하지만 그게 언제인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도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평등하게 살아야 합니다.



서로 평등하게 살고 싶다면, 우리는 서로 작은 권력들을 나눠야 합니다. SF 작가들이 이런 걸 이야기하나요. 그렇지 않죠. SF 작가들은 행성을 뒤집어놓을 수 있으나, 현대 문명의 계급 구조에 관심이 없습니다. 현대 문명을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SF 작가가 행성을 뒤집어놓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다. 현대 문명을 파악하지 못하는 작가가 정말 미래 사회를 제대로 논의할 수 있겠어요. 아니, 오히려 유치원생이 쓰는 일기장이 SF 소설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SF 소설들은 자신들이 전복적이고 파격적이라고 주장하나, 종종 저는 회의를 느낍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마이클 크라이튼 같은 얄팍한 SF 작가들 역시 인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합니다. <개미의 날>에서 베르베르는 인간성에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했으나, 막연하게 선의를 떠들 뿐이고, 현대 문명의 계급 구조를 파헤치지 않았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고작 그 정도죠. 베르베르는 얄팍한 작가입니다. 하지만 계급 구조를 파악하지 않기 때문에 베르베르나 커트 보네거트는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커트 보네거트는 얄팍한 베르베르보다 훨씬 뛰어난 작가입니다. 하지만 양쪽 모두 계급 구조를 분석하지 않았어요.



얄팍한 작가부터 진지한 작가까지, 수구적인 작가부터 진보적인 작가까지, 다들 현대 문명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작가들은 행성을 뒤집고 우주를 바라봅니다. 이는 아주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제가 너무 까탈스러울지 모릅니다. 제가 SF 작가들에게 너무 시비를 거는지 모르죠. 음…, 저는 제가 그런 작가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저 우연히 계급 구조를 깨달았을 뿐이고, 제가 그런 작가들보다 특별히 잘났거나 예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깨닫지 못했다면, 저 역시 인권이나 떠들었을 뿐이겠죠.


언제나 말하는 것처럼 지배적인 관념을 깨부수기는 어렵습니다. 지식인들조차 그런 함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솔직히 지식인이라는 표현 역시 웃기죠. 뭐가 지식인가요? 얼마 전에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시골에서 꿀벌을 치는 농민이 무지렁이이고 대학 경영학 교수가 지식인이라고 생각하죠. 자본주의라는 지배적인 관념이 지식인을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상식에 반기를 들고 싶습니다. 행성을 뒤집고 우주를 바라보는 작가는 먼저 현대 문명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SF 작가들이 그렇게 전복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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