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SF '소설'을 감상하는 방법 본문
"스노우 박사는 켈빈에게 사실을 이야기해야 했어."
"하지만 스노우가 켈빈에게 사실을 이야기했어도, 켈빈이 그걸 받아들였을까?"
"켈빈이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해도, 스노우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했어."
"그건 그렇지 않아. 나는 스노우에게 책임이 없다고 생각해."
"아니야, 스노우에게는 사실을 제대로 통보하지 않은 책임이 있어."
위와 같이 SF 독자들이 <솔라리스>를 이야기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솔라리스>를 읽은 이후, 독자들은 스노우나 기바리언, 켈빈, 하리 같은 등장인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논의를 소설 감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럴 겁니다. 분명히 SF 독자들이 소설을 읽었고, 소설 내용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설 <솔라리스>는 동명 영화들을 낳았습니다. SF 독자들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든 영화를 보고, 똑같이 토론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솔라리스>를 관람한 이후, SF 독자들은 스노우나 켈빈이나 하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두 가지가 무슨 차이를 드러낼까요? 소설을 읽은 독자들과 영화를 관람한 독자들이 무슨 차이를 드러낼까요? 스타니스와프 렘이 쓴 소설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든 영화는 서로 다른 주제나 사상, 철학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독자들 역시 그런 것들을 서로 다르게 이야기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요? 오직 내용이나 주제, 사상, 철학에 따라 소설과 영화가 달라질까요? 하지만 소설은 텍스트 중심 매체이고, 영화는 영상 중심적인 종합 매체입니다.
따라서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텍스트에 집중할 테고, 영화를 관람한 독자들은 영상에 집중할 겁니다. 똑같이 하리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소설을 읽은 독자와 영화를 관람한 독자는 그런 차이를 이야기해야 할 겁니다. 영화를 볼 때, 관객은 카메라를 이용해 하리를 바라봅니다. 감독은 카메라를 이용해 하리를 보여주고, 관객은 카메라가 찍은 하리를 바라봅니다. 반면,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켈빈이 바라보는 하리를 바라봅니다. <솔라리스>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고, 켈빈은 모든 것을 묘사하고 설명합니다. 켈빈을 거치지 않는다면, 독자는 소설 속의 상황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켈빈이 존재하기 때문에 독자는 소설 속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켈빈은 스타니스와프 렘이 만든 인위적인 등장인물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켈빈이 바라보는 시각은 소설 속의 상황을 여과하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솔라리스>를 읽을 때, 독자는 켈빈이 여과한 상황들을 읽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소설 <솔라리스>는 영화 <솔라리스>보다 주관적으로 하리를 보여줍니다. 상대적으로 소설 <솔라리스>는 영화 <솔라리스>보다 훨씬 많은 주관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영화 역시 감독이 바라보는 시선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보다 객관적입니다.
만약 SF 독자들이 소설과 영화 <솔라리스>를 깊게 비교하고 싶다면, 이런 차이를 언급해야 할 겁니다. 소설과 영화에는 똑같이 내용이나 주제나 사상이나 철학이 있습니다. 오직 그런 것들을 언급한다면, SF 독자들은 소설과 영화를 제대로 비교하지 못할 겁니다. 소설과 영화가 사용하는 서로 다른 기법을 언급할 때, SF 독자들은 소설과 영화를 제대로 비교할 수 있겠죠. 소설과 영화가 똑같은 내용과 사상을 담는다고 해도, 소설과 영화는 서로 다른 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텍스트 매체와 영상 중심적인 종합 매체가 똑같은 표현 방법을 공유할 수 있겠어요?
소설에게는 텍스트라는 도구가 있고, 영화에게는 영상이라는 도구가 있습니다. 두 가지는 서로 다릅니다. 아무리 줄거리와 등장인물과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런 표현 방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SF 독자들은 소설을 깊게 분석하지 못할 겁니다. 의식적으로 깊게 분석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그런 특징 때문에 SF 독자들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트라는 도구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소설은 재미있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훨씬 많은 주관들을 담을 수 있고, 그래서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은 재미있을 겁니다. 영화는 그런 재미를 전달하지 못합니다.
영화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이용하고 싶어도, 영화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영화는 많은 주관들을 담지 못합니다. 소설 속에서 하리는 아주 이상적이고 아리따운 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켈빈이 그렇게 여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찍을 때, 아무리 감독이 조명 장치들을 동원해도, 감독은 모든 관객에게 이상적인 여자를 제시하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하리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름답다고 해도, 누군가는 하리가 어색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이는 사소한 차이처럼 보일지 모르나, 주제나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켈빈은 솔라리스 학파를 구구절절 떠들 수 있습니다. 소설은 켈빈이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소설은 솔라리스 학파 같은 연대기를 얼마든지 떠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이 솔라리스 정거장을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영화는 켈빈의 사념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따라서 솔라리스 학파를 구구절절 떠들지 못합니다. 영화가 떠들고 싶어도, 영화는 사념화 과정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사실 <솔라리스>는 켈빈이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솔라리스>는 일종의 일기입니다. 그저 켈빈이 일기처럼 적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런 요소들 덕분에 소설은 재미있습니다. SF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질적인 사념이나 사상을 구구절절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가 똑같은 사상을 전개한다고 해도,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이는 소설이 영화보다 무조건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각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