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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과 소설이라는 형식 본문

SF & 판타지/어떻게 읽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과 소설이라는 형식

OneTiger 2018. 6. 4. 19:13

테리 비슨이 쓴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는 꽤나 희한한 소설입니다. 아니, 이걸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일반적인 소설들과 달리,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에는 평범한 서술이 없습니다.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에는 오직 대사들만 존재합니다. 작가는 외계인들이 무슨 모습이고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절대 묘사하지 않습니다. 테리 비슨은 오직 외계인들이 서로 대화하는 내용만 썼을 뿐입니다.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는 대사에서 시작하고 대사에서 끝납니다. 이 소설은 큰따옴표에서 시작하고 큰따옴표에서 끝납니다.


덕분에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는 풍자적인 느낌을 훨씬 잘 풍길 수 있어요. 이렇게 오직 대사만 이용해 소설을 쓴다면, 장편 소설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피네간의 경야> 같은 소설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직 대사만 이용하는 소설 역시 얼마든지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소설은 희한하다는 비평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소설 역시 소설이라는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있겠죠. 흔히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는 소설이 배경, 인물, 사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는 어떨까요.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에는 배경, 인물, 사건이 모두 존재합니다. 배경은 우주선이나 우주 기지 같습니다. 독자는 그저 배경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겠으나, 대사들은 배경이 우주선이나 우주 기지라고 암시하는 것 같아요.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에서 등장인물은 대화하는 두 외계인입니다. 작가는 그 외계인이 무슨 모습인지 묘사하지 않았으나, 독자는 외계인이 (인간 같은 유기체가 아니라) 기계 유기체나 광물 유기체라고 짐작할 수 있죠. 무엇보다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건입니다.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에서 사건은 배경과 인물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실 SF 소설은 '발상의 문학'이라고 불리고, 그래서 발상을 강조하기 위해 SF 작가들은 다른 요소들에게 관심을 덜 쏟습니다. 독특한 발상을 강조할 수 있다면, SF 작가들은 등장인물이나 심리 묘사를 헌 신발처럼 내던질 수 있어요. 덕분에 주류 문학 평론가들은 SF 소설에게 문학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합니다. 그런 비판은 틀리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특성 때문에 SF 소설이 (주류 문학은 전달하지 못하는) 경외적인 감동을 선사할 수 있겠죠. 게다가 아무리 SF 소설이 발상의 문학이라고 해도, SF 작가들 역시 어느 정도 문학적인 완성도를 중시하고요.



이런 관점을 다른 책에 대입할 수 있을 겁니다. 가령, 임승수가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은 어떨까요. <원숭이 철학>에서 원숭이 선생님과 세 학생들은 마르크스 철학을 가르치고 배우고 토론합니다. 그래서 <원숭이 철학>은 형식적으로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원숭이 철학>은 배경, 사건, 인물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원숭이 철학>에서 배경은 교실이나 강의실 같습니다. 아니면 이 책이 묘사하는 것처럼 그런 강의실은 숲 속인지 모릅니다. 강의실이 어디이든, 분명히 강의실이라는 배경은 존재합니다. 강의실에서 원숭이 선생님과 세 학생들은 마르크스 철학을 이야기합니다. 원숭이 선생님과 세 학생들은 등장인물에 해당하겠죠.


무엇보다 <원숭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마르크스를 둘러싼 토론입니다.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에서 두 외계인은 인간과 연락하고 인간을 둘러싸고 토론을 벌입니다. 이는 사건에 해당하고,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적인 요소입니다. <원숭이 철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숭이 철학>에서 원숭이 선생님과 세 학생들은 마르크스를 둘러싼 토론을 벌입니다. 이는 사건에 해당하고, <원숭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적인 요소입니다.



만약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가 소설이 될 수 있다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역시 소설이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피네간의 경야> 같은 책이 소설이 되는 상황에서 <원숭이 철학>은 <피네간의 경야>보다 훨씬 소설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이는 <원숭이 철학>이 진짜 소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임승수는 <원숭이 철학>이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 책을 썼을 때, 임승수는 자신이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려운 철학을 좀 더 쉽게 풀어놓기 위해 작가는 그저 소설적인 구성을 빌렸을 뿐이겠죠.


저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설적인 구성은 어려운 철학, 사변, 사상, 관념을 쉽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사실 숱한 SF 소설들은 그런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SF 소설은 어려운 사변과 관념을 쉽게 풀어내는 역할을 맡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SF 소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설에는 여러 문제점들이 있고, 소설은 완벽한 매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만화나 영화나 비디오 게임에 비해, 소설은 답답하고 고루한 매체일지 몰라요. 그렇다고 해도 소설은 어려운 사변을 제일 잘 풀어낼 수 있고,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은 소설로 이어져야 할 겁니다.



어쩌면 이는 소설을 너무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일지 모릅니다. 저는 소설에서 사상이나 주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소설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시적인 묘사나 사건 전개나 이야기 구조 때문일지 모르죠. 아마 수많은 평론가들, 작가들, 독자들은 그렇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상이 중요하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뒤 돌아보며> 같은 소설이 지루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물론 시적인 묘사나 사건 전개나 이야기 구조는 아주 중요한 요소일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는 그것들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가가 대단한 필력을 자랑한다고 해도, 오히려 어설픈 사상이나 주제나 철학은 읽는 즐거움을 방해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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