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그림들과 사변들 본문
[이런 풍경은 영상 매체가 드러내는 장점입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사변은 어떨까요.]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아주 유명한 사이버펑크입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에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가 뭘까요. 왜 이 영화가 유명해졌을까요. 블레이드 러너는 인조인간을 처단하는 형사나 해결사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조인간을 이야기하는 영화이고, 따라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는 인조인간일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인조인간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별로 깊지 않습니다. 영화는 인조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면들을 슬프게 그리나, 거기에서 더 멀리 나가지 않습니다. 인조인간을 둘러싼 여러 감정들, 관념들, 사변들, 사회 구조는 희미합니다.
영화는 그런 것들을 집요하게 쫓지 않아요. 만약 그런 것들을 보기 원하는 사람은 <블레이드 러너>가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이나 <로섬의 만능 로봇>을 읽어야 할 겁니다. <블레이드 러너>가 드러내는 사변은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에 미치지 못합니다. 사실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해도 <블레이드 러너>는 보여주지 못할 겁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영화이고, 영화는 그런 철학들이나 사변들을 줄줄이 읊지 못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고 싶다면, 영화를 만들 이유는 없겠죠.
<블레이드 러너>에서 중요한 요소는 인조인간이 아닙니다. 미래의 퇴폐적이고 웅장하고 화려하고 번잡한 대도시 풍경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꽤나 아름답고 충격적입니다.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를 한층 높였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라는 영화 그 자체는 아름다운 화보집 같습니다. 드높은 마천루들, 반짝거리는 수많은 불빛들, 공중을 부유하는 자동차들, 찬란하고 요란한 간판들과 광고물들, 도시의 창공을 부유하는 선전 비행선, 다양한 인간 군상들, 각종 사이버웨어들과 희한한 옷차림들, 이질적인 한자들과 동아시아 문자들. 그리고 그런 대도시를 방황하는 인조인간 암살자 블레이드 러너.
이야, 멋지지 않습니까. <블레이드 러너>는 인조인간을 깊게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유명한 이유는 저런 아름답고 충격적인 영상 때문입니다. 아울러 <블레이드 러너>는 몽환적이고 미래적인 음악을 연주하고, 그런 음악은 퇴폐적이고 웅장한 미래 도시와 잘 어울립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두 눈과 두 귀를 호강할 수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가 남긴 시각적인 충격 때문에 양산형 사이버펑크 창작물들은 저런 장면들을 따라가느라 바쁘죠.
하지만 저는 사이언스 픽션이 아름답고 충격적인 그림을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이언스 픽션은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아름답고 충격적인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입니다. 그림은 철학이나 사변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런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고, 관념은 인간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관념은 물리적인 현실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인간은 그런 관념대로 행동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퇴폐적이고 웅장한 대도시에 순응할 겁니다. 그게 지배적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거기에 반발할 겁니다. 환경 운동가들은 미래 도시가 내뿜는 산업 폐기물들에 반대하고, 자연 환경을 복구하자고 외칠지 모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나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이미 원작 소설은 전기 양을 운운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와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환경 운동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주 상인>처럼 환경 운동을 이야기하는 SF 소설들은 많고, 따라서 독자가 <우주 상인>을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와 비교한다고 해도, 그건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우주 상인>과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는 서로 비슷한 미래를 그리죠.
<블레이드 러너>가 그런 철학이나 사변을 상세하게 보여주나요. 그렇지 않아요. 설사 그런 SF 영화가 있다고 해도, 그건 주류적이지 않겠죠. 하지만 SF 소설은 그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중요한 요소를 알고 싶다면, 우리는 SF 소설을 읽어야 할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주 상인>과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는 <블레이드 러너 2049>보다 나을 겁니다. 이는 SF 영화가 못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블레이드 러너 2049> 같은 영화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몇 번 관람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말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가 빠졌습니다. 인조인간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프랑켄슈타인>이나 <로섬의 만능 로봇>은 <블레이드 러너 2049>보다 나을 겁니다. 아니면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소설들 역시 좋겠죠.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굉장한 사이언스 픽션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영상미를 자랑하는 영화에서 사변을 찾느라 애씁니다. 하지만 번지 숫자가 틀렸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멋진 영상미를 자랑합니다. 거기에서 사변을 찾으면 안 되겠죠. 사변을 읽고 싶다면, SF 소설을 읽어야 할 겁니다.
대신 <프랑켄슈타인>이나 <로섬의 만능 로봇>이나 <아이 로봇>은 멋진 그림들을 그리지 못하죠. 소설은 시각적인 매체가 아닙니다. 아무리 작가가 장대한 필력으로 열심히 장문을 쓴다고 해도, 때때로 장문은 한 장의 그림보다 못할지 모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보여주는 화려하고 퇴폐적인 대도시 풍경은 소설이 절대 그리지 못할 영역입니다. 아무리 윌리엄 깁슨이 하늘 색깔을 꺼진 텔레비전과 비교한다고 해도, 그러지 못하겠죠. 소설과 영화에는 각자 장점이 있고, 저는 사람들이 그런 장점들을 골고루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