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SF 소설과 생태 사회주의가 맺은 관계 본문
[우리가 이런 풍경을 논의하고 싶다면, 생태 사회주의적인 관점은 아주 유용할 겁니다.]
SF 세상에서 환경 오염은 다양한 재난들을 연출합니다. 어떤 소설은 해일이 도시를 덮치는 광경을 묘사하고, 어떤 영화는 거대 괴수가 함선들을 침몰시키는 장면을 표현하고, 어떤 게임은 인류가 새로운 외계 행성에 정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어요. 환경 오염을 경고하기 위해 때때로 환경 사회학자들은 SF 창작물들을 언급합니다. 이런 사례들을 고려한다면, SF 창작물들과 환경 오염은 깊은 관계를 맺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몇 소설은 자본주의 체계를 넘어설 때 인류가 환경 오염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요.
따라서 SF 창작물들은 생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붉은 별>이나 <빼앗긴 자들>이나 <인간 종말 리포트> 같은 사례는 생태 사회주의와 곧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SF 소설들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는 생태 사회주의를 논의할 수 있어요. 생태 사회주의를 논의하기 위해 반드시 SF 소설이 필요하지 않죠. 만약 생태 사회주의를 논의하기 위해 SF 소설을 이용한다면, 무슨 장점이 있을까요. SF 소설 없이 생태 사회주의를 논의할 수 있음에도 구태여 SF 소설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요.
생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해 SF 소설을 이용할 때, 저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SF 소설은 환경 오염을 강하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무지막지한 해일이나 거대 괴수나 외계 행성은 강력한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종종 비유는 직시보다 강합니다. 거대 괴수는 사람들의 두 눈을 사로잡을 수 있고, 사람들을 환경 오염이라는 문제로 이끌 수 있습니다. 사실 환경 오염은 너무 진부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 오염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막연한 생각이고, 환경 오염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사람들을 제대로 자극하지 못합니다.
SF 작가는 기발하거나 도발적인 비유를 이용할 수 있고, 사람들의 두 눈을 환경 오염으로 돌릴 수 있어요. 지구가 환경 오염으로 망가지고 인류가 외계 행성으로 탈출하고 외계 야수들이 인류를 공격한다면, 그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건 사람들이 환경 오염을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비유에는 한계가 있고, 그래서 비유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환경 오염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거대 괴수의 파괴력에 열광할지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저는 비유가 강력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환경 보존이나 사회주의는 미래적인 문제입니다. 산업 폐기물이나 기후 변화는 머나먼 시대까지 피해를 미칠 수 있습니다. 몇 백 년 이후, 기후 변화는 본격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몇 천 년 이후에도 온갖 산업 폐기물들은 남아있을지 모릅니다. 기후 변화는 현재의 문제이고 동시에 미래의 문제입니다. 미래에 우리는 생물 자원들을 잃을지 모릅니다. 미래에 우리는 기후 위성으로 동토를 없애고 겨울을 없애고 모든 지역에서 계절을 없앨지 모릅니다.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거대한 계획 경제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첨단 기술들, 인공 지능이나 양자 컴퓨터는 그런 것을 이룩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미래에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각성한다면, 인류는 그런 계회 경제를 이룩할지 모릅니다. 아무도 미래를 장담하지 못하겠으나, 우리는 그런 미래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상력은 곧바로 SF 창작물로 이어지겠죠. 사실 SF 소설가들이 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렇게 미래적으로 상상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물 다양성이나 기후 변화를 논의할 때, 미래적인 상상력은 굉장히 유용하고 중요합니다. 기후 변화를 걱정하는 과학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SF 창작물을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저는 SF 소설을 이용해 생태 사회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SF 소설만 아니라 영화나 비디오 게임 역시 좋은 수단이 되겠죠. 그리고 사이언스 픽션을 이용해 생태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면, 가상의 자연 생태계나 거대 괴수나 개조 생명체들 역시 생태 사회주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요소들 역시 생태 사회주의를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와인드업 걸>은 환경 오염과 유전자 조작 작물들과 거대 식량 기업들을 비판합니다. <고지라>에서 무토 부부는 핵 발전소라는 위험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문명: 비욘드 어스>에서 환경 보호론자들은 외계 자연 생태계를 집요하게 연구하고, 결국 제노 타이탄이라는 결전 병기를 완성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SF 소설이나 거대 괴수가 무조건 생태 사회주의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 SF 창작물들은 형이상학적인 헛소리들을 열심히 떠듭니다.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것처럼 <갈라파고스>나 <청의 6호>나 <섀도우런>은 현대 문명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아요. 가상의 생태계나 거대 괴수나 개조 생명체는 아주 강력한 비유이고 거시적인 시각임에도 SF 창작가들은 지배적인 관념에 복종하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더욱 SF 소설을 이용해 생태 사회주의를 말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이 블로그를 처음 개설했을 때, 저는 주로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붉은 별>이나 <빼앗긴 자들>이나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 같은 SF 창작물들을 사소한 구석까지 자세히 뜯어보고, 생태 사회주의와 연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 뒤를 돌아보면, 사이언스 픽션과 거대 괴수와 생태 사회주의만 아니라 다른 것들 역시 많이 이야기한 것 같군요. 그 동안 저는 왜 SF 소설이 핵심적이고, 왜 스팀펑크가 독특하고, 왜 생체 우주선이 기발한지 떠들었습니다. 원래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으나, 저는 사람들이 SF '소설'을 무시하는 상황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더군요.
게다가 생체 우주선은 정말 기발한 상상력이 아닙니까. 뭐…. 아마 미래 인류는 생체 우주선이나 생체 비행선, 생체 수상선을 이용하지 않을 겁니다. 기술적 특이점이나 화성 개척지가 현실이 된다고 해도, 생체 선박은 그저 상상력에서 머물겠죠. 그래서 더욱 생체 선박이 기발하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이 블로그를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으나, 더 이상 게시글들을 올리지 않는 날까지 계속 생태 사회주의와 함께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