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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SF 소설은 다른 환상 소설이나 주류 문학보다 우월한가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SF 소설은 다른 환상 소설이나 주류 문학보다 우월한가

OneTiger 2018. 2. 18. 19:07

SF 장르를 논의할 때 SF 우월주의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SF 소설은 다른 환상 소설이나 주류 문학보다 우월한가?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할지 모릅니다. 어떤 SF 독자는 SF 작가가 거시적인 세계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SF 소설이 다른 환상 소설이나 주류 문학보다 우월하다고 자랑할지 모릅니다. SF 소설이 환상 소설이나 공포 소설과 이웃이라고 해도, 장르 작가들과 평론가들과 독자들은 서로 비판하곤 합니다. (SF 울타리 안에서) 하드 SF 독자와 스페이스 오페라 독자가 싸울 수 있고, 서사 판타지 평론가가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을 비난할 수 있고, 하드 SF 독자가 공포 소설을 무시할 수 있죠.


그런 사례는 드물지 않습니다. 특히, 하드 SF 소설들이나 모던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이 거창하고 방대하고 웅장한 우주를 그리기 때문에 SF 독자는 엄청난 자부심을 느낄지 모릅니다. SF 동호회에서 저는 그렇게 자부심을 뿜어내는 독자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런 독자들을 이해합니다. 폴 앤더슨이나 그렉 이건이나 버너 빈지 같은 작가들을 고려한다면, 다른 환상 소설이나 주류 문학은 SF 소설에게 깝치지 못할 듯합니다. 아니, 어디 환상 소설이나 주류 문학뿐이겠어요. 현대 분석 철학부터 각종 음악이나 미술까지, SF 소설은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겠죠.



하지만 하드 SF 소설들이나 모던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이 거창하고 방대하고 웅장한 우주를 그린다고 해도, 그런 사실은 SF 소설이 다른 소설(을 비롯한 각종 철학들과 예술들)을 무시할 근거가 되지 못할 겁니다. SF 소설 역시 다른 환상 소설이나 주류 문학과 교류하기 때문입니다. SF 소설 역시 소설입니다. SF 소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이미 여러 작가들과 철학자들은 문학이라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기틀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SF 작가 역시 소설이라는 매체를 이용하지 못했을 겁니다.


SF 소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불쑥 솟지 않았습니다. 환상 소설이나 유토피아 문학이 흐르는 동안 SF 작가들은 영감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저는 자본주의 체계가 그냥 나타나지 않았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비슷한 논리를 SF 소설에 적용할 수 있겠죠. SF 소설은 그냥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SF 소설은 혼자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SF 작가들은 다른 문학들을 참고했고, 그래서 SF 울타리가 더욱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SF 독자들은 마이클 무어콕이나 나오미 노빅이 판타지 작가이고, 이안 뱅크스가 이안 M.뱅크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SF 안내서 <SF란 무엇인가?>는 SF 소설이 주류 문학에서 여러 영양분들을 흡수했다고 지적합니다. SF 소설이 소립자 우주나 거시적인 우주, 우주의 운명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게 SF 소설이 다른 소설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거시적인 철학이 우월한 철학은 아닌 것처럼 SF 소설은 다른 소설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시각과 발상은 넓으나, SF 소설들은 꾸준히 다른 소설들을 흡수해야 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SF 소설은 그저 우주 활극이나 자연 과학적인 모험에 그치고 말았을지 모릅니다. 왜 브루스 스털링이 사이버펑크 운동을 전개했겠어요. 왜 스타니스와프 렘이 미국 SF 작가들을 그렇게 비판했겠어요.


게다가 SF 독자들은 자신들이 거시적이고 전복적이라고 자랑하나, SF 독자들은 제임스 팁트리 쇼크를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자신이 유일하게 유명한 흑인 여자 작가라고 말한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우주의 운명을 논의하면, 무조건 거시적인 소설이 될까요. 첨단 외계 문명을 바라본다면, SF 작가가 다른 소설가들보다 우월해질까요. 저는 그게 웃긴 소리라고 생각해요. 현실 속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계 문명을 바라본다면, 그게 전복적인가요.



SF 독자들 이외에 다른 사람들 역시 SF 우월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드 SF 소설이나 모던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은 어렵게 보입니다. 솔직히 <하이페리온> 같은 소설이 쉬워 보일 이유는 없겠죠. 그래서 SF 소설을 잘 모르는 독자들은 SF 소설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어려운 소설은 우월한 소설이 될 수 있겠죠. 우리는 흔히 어려운 소리를 떠드는 사람이 지적이라고 생각하고, 지적인 사람이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 지식이 뭔가요? 뭐가 지식이죠? 무지렁이 농민이 지식인일까요? 아마 대부분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의 경영학 교수와 인도네시아 시골 할머니가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시골 할머니가 하버드 교수보다 잘 먹고 잘 살지 모릅니다. 경영학 교수가 지식인이 되는 이유는 현대 문명(의 자본가 계급)이 그걸 지식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 무인도에서 시골 할머니가 하버드 교수보다 훨씬 잘 살지 모릅니다. 결국 지식 역시 기득권들이 규정하는 권력 수단이죠. 그래서 하버드 교수는 지식인이 되고, 인도네시아 시골 할머니는 무지렁이 농민이 되겠죠. 저는 SF 우월주의 역시 그런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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