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하드 SF 소설과 호모 사피엔스라는 위상 본문
어떤 SF 설문 조사를 이야기했을 때, alt.SF는 하드 SF 소설이 진정한 SF 소설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만약 SF 소설에 근본적인 핵심이 있다면 그건 하드 SF 소설일 겁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소설이 어려운 자연 과학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면, 그 소설은 하드 SF 소설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하드 SF 작가는 분명히 자연 과학 지식들을 엄중하게 다뤄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SF 작가가 자연 과학 지식을 엄중하게 다룬다고 해도, 언젠가 SF 소설은 뻥을 쳐야 합니다.
하드 SF 소설은 과학 논문이 아닙니다. 하드 SF 소설은 함부로 초공간 도약 우주선에 기대지 않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항성간 항해를 묘사해야 합니다. 숱한 사이언스 판타지처럼 하드 사이언스 픽션 역시 뻥입니다. 그저 서로 다르게 뻥을 칠 뿐이죠. 하드 SF 작가는 좀 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뻥을 쳐야 합니다. 현실 속의 인류는 외계인이 아니라 외계 미생물조차 찾지 못했으나, 하드 SF 작가는 외계 문명이 정말 존재할 것처럼 뻥을 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제반 사항들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보이도록 깔아놔야 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는 대놓고 뻥을 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에 비해 일반적인 SF 소설들은 과장과 거품을 뺍니다. 하드 SF 소설들은 그저 거품만 빼지 않고 다른 제반 사항들을 자세히 훑어봅니다. 무엇보다 하드 SF 작가는 논리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하드 SF 작가는 일반적인 SF 작가가 그냥 넘어가는 사항을 열심히 탐구하고, 일정한 선을 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가가 과학 지식들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어떤 선을 넘어가는 순간, 그 작가는 하드 SF 작가가 아니라 좀 더 진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나 일반적인 SF 작가가 될 겁니다.
이는 다소 추상적인 설명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틀린 설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는 하드 SF 소설의 특성들 중 하나를 가리킬 수 있을 겁니다. 왜 독자들은 이런 소설을 읽을까요. 왜 독자들은 사이언스 판타지나 일반적인 SF 소설이 아니라 하드 SF 소설에 열광할까요. alt.SF는 하드 SF 소설이 냉혹하고 엄밀한 우주 속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덧없는 동시에 위대하게 그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드 SF 소설 속에서 인간은 절대 위대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주는 인간 중심적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주는 냉혹하고 엄밀합니다. 그건 무슨 뜻일까요. 우주의 규모를 생각해 보죠. 우리는 태양계가 굉장히 거대하다고 여기나, 사실 태양계는 무수히 많은 항성계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우주는 무한히 넓고, 지구는 고작 모래알 하나에 지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모래알보다 훨씬 작을지 모르죠. 아무리 인류가 발버둥쳐도, 그런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결국 인간은 고작 모래알 속의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마 인류 문명이 망할 때까지 인류는 절대 외계 문명을 만나지 못할지 모릅니다. 하드 SF 소설은 그런 현실을 지적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는 그렇지 않죠.
사이언스 판타지 속에서 수많은 종족들은 차원과 우주를 가로지릅니다. 일반적인 SF 소설 역시 냉혹한 우주를 그릴 수 있으나, 그보다 좀 더 일상적인 요소들에 초점을 맞춥니다. 뉴 웨이브나 사이버펑크는 심리적인 측면에 집중하고요. 뉴 위어드가 냉혹한 우주를 말한다고 해도 엄중한 과학에 관심이 없죠. 그래서 하드 SF 소설이 매력적일 겁니다. 하드 SF 소설이 논리적으로 거시적인 상황을 바라보고, 일상적인 요소들을 크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alt.SF는 핵심적인 사항을 찔렀죠.
하지만 여기에서 저는 다소 딴지를 걸고 싶습니다. alt.SF는 하드 SF 소설이 호모 사피엔스를 덧없으나 위대한 존재로 그린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alt.SF가 가리키는 호모 사피엔스는 누구일까요.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똑같이 호모 사피엔스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이 세상에는 재벌 회장이 있고, 가난한 시골 농민이 있습니다. 재벌 회장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고, 시골 농민을 수탈할 수 있어요. 따라서 재벌 회장과 시골 농민은 똑같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고려한다면, 서로 다른 종류 같습니다. 재벌 회장은 엄청난 토지(생산 수단과 자본)를 소유했으나, 시골 농민은 고작 손바닥만한 텃밭을 가꿀 뿐입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재벌 회장과 시골 농민이 똑같을까요. 그럴 겁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재벌 회장과 시골 농민은 고작 호모 사피엔스일 뿐이겠죠. 하지만 그런 우주적인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시골 농민이 겪는 고통이 줄어들거나 상쇄되지 않습니다. 냉혹한 우주고 나발이고, 시골 농민은 그걸 느낄 여유조차 없을 겁니다. 이미 재벌 회장이 시골 농민을 수탈하기 때문에. 당장 대기업이 목숨을 빼앗는 상황에서 시골 농민이 우주적인 냉혹함을 되새길 여유가 있을까요. 그건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의 여유겠죠. 하드 SF 소설은 우주적인 관점을 논하고, 시골 농민이 겪는 고통에 관심이 없어요. 저는 하드 SF 소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하드 SF 소설에 커다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밑바닥을 살피지 않는다면, 아무리 우주를 바라본다고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alt.SF는 아주 신랄하게 비평하는 웹진입니다. 동시에 우주와 외계 문명과 미래 사회를 이야기하죠. 하지만 우주와 외계 문명을 이야기하는 동안 alt.SF가 억압적인 계급 구조를 이야기한 적이 있나요. 아니, 없습니다. 자신이 속한 인류 사회조차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외계 문명을 논의할 수 있나요. 근대 이후 단절된 미래 사회를 논한다고요? 지배적인 관념에 복종하는 alt.SF가 단절적인 미래 사회를 논의할 능력이 있나요. 그건 너무 안일한 사고 방식일 겁니다. 하드 SF 소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드 SF 소설은 우주적인 관점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밑바닥의 고통과 슬픔을 무시합니다.
<안드로메다 성운> 같은 소설은 예외이나, 예외는 많지 않을 것 같군요. 우주를 바라보는 하드 SF 소설 역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해야 한다고 수긍할 뿐이죠. 우주를 바라보는 하드 SF 소설은 억압적인 계급 구조를 비판하지 않아요. 재벌 회장과 시골 농민이 똑같기 때문에. 이는 비단 하드 SF 소설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드 SF 소설은 거시적이고, 그래서 저는 더욱 하드 SF 소설을 비판하고 싶습니다. 비록 저는 SF 소설들을 많이 알지 못하나, SF 창작물들이 미래 사회와 외계 문명을 함부로 재단하는 부분을 간과하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