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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X 게임의 사회주의 시뮬레이션 본문

사회주의/사회 공학

4X 게임의 사회주의 시뮬레이션

OneTiger 2017. 4. 16. 20:00

<마스터 오브 오리온>, <디스턴트 월드>, <스텔라리스>…. 이런 게임들은 일종의 종합 선물 세트 같습니다. 선물 세트가 온갖 상품들을 집대성한 것처럼 저런 게임들은 온갖 SF 요소를 집대성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어지간한 요소들을 전부 끌어모았기 때문이죠. 드넓은 은하 제국, 다양한 외계 종족들, 행성과 항성계의 복잡한 교역과 경제, 여러 종족의 정치와 철학과 종교, 거대한 함선들의 화려하고 웅장한 함대전, 무시무시한 우주 괴수 등등.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이런 게임들을 할 때, 자신만의 컨셉을 정하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는 <스타타이드 라이징>처럼 후배 종족을 키워보고 싶을 겁니다. 누군가는 <듄>처럼 신정 제국을 꾸려보고 싶을 겁니다. 누군가는 <사소한 정의>처럼 기계와 인공지능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을 겁니다. 유명한 소설의 설정을 게임 플레이에 대입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우주 4X 게임의 재미겠죠. 만약 제가 이런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킴 로빈슨이나 켄 맥레오드, 이안 뱅크스의 설정을 집어넣고 싶습니다. 은하 사회주의 공화국이죠. 공화국 시민들이 평등하게 살고, 민주적으로 경제에 참여하고, 전쟁을 피하고, 환경 오염을 줄이고….


거창한 4X 게임들은 저런 정책들을 실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플레이어는 종족의 성향을 결정할 수 있고, 따라서 평등 성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정치 구조를 선택할 때, 군주제나 독재를 피해야죠. 전쟁이 벌어져도 먼저 선전 포고해서는 안 될 테고, 위생이나 건강 수치에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대략 이 정도면 은하 사회주의 공화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솔직히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어차피 전부 컨셉에 불과하기 때문일 겁니다. 만약 제가 어떤 종족을 선택하고, 그 종족의 성향을 평등 사상으로 지정해도, 그 종족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토론하거나 투표하지 않습니다. <마스터 오브 오리온>이든 <스텔라리스>든 그런 과정을 구현하지 못합니다. 플레이어인 저 자신만이 모든 정책을 결정할 뿐이죠. 제가 어떤 정책을 내놔도 구성원들은 그걸 민주적인 토론에 올리거나 투표하지 않습니다. 그런 시스템은 없어요. 아니, 사실 21세기 비디오 게임은 그런 시스템을 구현하기 어려울 겁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했어도 21세기 게임들은 그런 과정까지 구현하지 못하죠. <데모크라시> 같은 게임도 있지만, 이것도 뭔가 부족해 보이고요.


어쩌면 나중에, 그러니까 몇 세기 이후 정말 그럴 듯한 시뮬레이션 게임이 나올 수 있죠. 은하 사회주의 공화국을 꾸릴 수 있는 4X 게임이 나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마스터 오브 오리온>이나 <디스턴트 월드> 같은 게임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이너 게임 중에서 사회주의 시뮬레이션을 그럴 듯하게 구현한 게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비디오 게임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게임들이 좋은지 자세히 말하기 어렵군요. 아, 그리고 만약 게임의 인공지능이 발달한다면, 컴퓨터 플레이어와 좀 더 복잡한 외교를 할 수 있겠죠. 사실 게임 제작진이 아무리 외교 체계를 복잡하게 구성해도 21세기의 일반적인 컴퓨터 플레이어는 그걸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그걸 전부 이해하고 활용할 수 없어요. 그래서 게임 제작진은 컴퓨터 플레이어에게 이득을 주거나 인간 플레이어에게 핸디캡을 주곤 하죠. 핵 앤 슬래시 게임이야 단순한 인공지능만 필요하겠으나, <마스터 오브 오리온>이나 <디스턴트 월드> 같은 게임은 고도의 인공지능이 필요하죠. 언제 그런 인공지능과 게임을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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