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환경 오염의 근본적인 구조와 문제 본문
[여기는 중국이 아닙니다. 환경 오염의 원인은 중국이 아니라 무분별한 자본주의 산업 개발입니다.]
중국의 미세 먼지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일상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상이 되었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 피해를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행동을 욕하고 비난합니다. 어쩌면 언젠가 중국은 고도의 산업 발전을 이루고, 과다한 미세 먼지를 뿜지 않을지 모릅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사실 중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해치기 위해 미세 먼지를 뿜지 않습니다. 만약 중국이 그랬다면, 미세 먼지 사태를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중국은 그저 산업을 발전시키기 원할 뿐이고, 산업 강국으로 가기 위한 발판을 닦을 뿐입니다. 현재의 유럽이나 미국, 일본, 한국 등이 그랬던 것처럼요. 많은 사람들은 중국을 욕하나, 산업 발전과 환경 오염의 문제는 중국에서만 비롯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이전에 산업 자본주의 발달은 언제나 환경 오염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자본주의 황금기나 호황기조차 환경 오염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환경 오염을 고려한다면, 자본주의 황금기는 절대 황금기가 아니죠.) 중국은 그저 그런 절차를 따라갈 뿐입니다. 산업 강대국이 되기 위해.
따라서 미세 먼지 사태를 비판하고 싶다면, 좀 더 근본적인 비판이 필요할 겁니다. 아무리 중국을 욕한다고 해도 문제의 본질을 비판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중국은 그런 비난에 관심이 없을 겁니다. 강대국들은 이미 자본주의 성장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그런 대열에 합류하기 원할 테고, 따라서 중국은 자본주의 성장이라는 전철을 열심히 따라갈 겁니다. 사실 대대적인 생산 지향 분위기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라디오 방송과 텔레비전 방송과 인터넷에서 수많은 광고들을 접합니다. 광고는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광고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대대적인 소비 촉진입니다. 중국 역시 이런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중국 역시 대대적인 소비 문화에 동참하기 원할 테고, 따라서 생산량을 엄청나게 늘려야 합니다. 생산량을 엄청나게 늘리고 싶다면, 그에 따라 막대한 환경 오염이 발생할 겁니다. 그게 바로 미세 먼지 사태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자본주의 성장을 이룬 강대국들은 먼저 본질적인 부분에서 변화를 이뤄야 할 겁니다.
하지만 강대국들은 자본주의 문제를 통제하거나 없애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문제를 키웠습니다. 생물 다양성은 계속 줄어들고, 울창한 숲은 사라지고, 산호초는 파괴되고, 온실 가스는 계속 쌓였습니다. 강대국들은 대대적인 생산 구조를 전환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본주의 체계에 계속 힘을 실었습니다. 대기업들은 성장을 거듭했고, 전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죠. 강대국이 강대국인 이유는 바로 이런 수탈과 오염과 파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만 깨끗하게 발전해야 한다고 욕할 수 있을까요. 그건 공평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깨끗하고 평등하게 발전해야죠.
만약 우리가 깨끗하고 평등하게 발전하기 원한다면, 자본주의 체계에서 벗어나고 생태 사회주의적 대안을 실천해야 할 겁니다. 생태 사회주의적 대안이 반드시 급진적인 정책들만 뜻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생산 수단을 사회적으로 공유할 때, 결국 자연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그런 사회에 접어들지 못할지 모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계를 희석하기 위해 좀 더 쉬운 방법들을 먼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말하는 것처럼 사회주의적인 기본 소득이나 참여 민주주의나 노동자 평의회는 그런 방법들이 될 수 있어요.
중국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거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 미국, 일본, 한국 등을 보죠. 이런 나라들은 생태 사회주의와 별로 연관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나라들은 사회주의를 때려잡기 바쁘고 강력한 신자유주의를 옹호합니다. 미국은 빨갱이를 퇴치한다는 광풍을 겪었고, 일본 군국주의는 공산당이나 무정부주의를 찍어눌렀어요. 매카시즘은 미국 역사에서 지우지 못할 흔적을 남겼죠. 일본 군국주의에 반대한 사회주의자들은 여전히 일본에서 대역 죄인입니다. 우리나라는 뭐….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죠. 생태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꺼내는 즉시,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종북으로 몰릴 겁니다.
중국을 (정치적이거나 지리적으로) 둘러싼 나라들은 사회주의를 적대하고 자본주의를 옹호합니다. 그래서 중국 역시 사회주의를 적대하고 자본주의를 열심히 따라가겠죠. 그게 대세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정말 중국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 자신부터 바꿔야 할 겁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달콤한 과실을 따먹었습니다. 우리는 중국만 그러지 말라고 비난하지 못해요. 그건 공평하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아요. 저는 그게 본질적인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쩌면 누군가는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라고 말할지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 중국 공산당이 얼마나 사회적 공유를 실천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회 민주주의조차 어설픈 사회주의라고 비판을 받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과연 얼마나 사회적 공유를 실천하나요. 저는 마오쩌둥이 놀라운 업적을 세웠다고 생각하나, 이미 마오쩌둥조차 한계에 부딪혔죠. 마오쩌둥 이후, 중국 공산당은 희든 검든 고양이가 쥐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과연 사회주의일까요. 명칭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 공유와 그것을 실천하는 정책일 겁니다.
※ 이미지 출처: http://conceptartworld.com/news/blade-runner-2049-concept-art-peter-popk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