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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콜로지라는 단어와 생태주의 본문

생태/환경 보호

이콜로지라는 단어와 생태주의

OneTiger 2018. 1. 26. 20:03

[생태계가 있다면, 생태학이 있을 테고, 생태학이 있다면, 환경 운동의 방향성이 있지 않을까요.]



게리 카나반과 킴 스탠리 로빈슨은 <그린 플래닛>이라는 SF 비평서를 엮었습니다. 일반적인 SF 비평서와 달리 <그린 플래닛>은 생태학과 환경 보호에 집중하는 책입니다. 킴 스태린 로빈슨이라는 작가의 이력을 고려한다면, 이건 당연한 현상처럼 보입니다. 킴 로빈슨은 환경 보호에 매진하는 대표적인 하드 SF 작가이고, <비의 마흔 징표들 Forty Signs of Rain>이나 <퍼시픽 엣지>, <붉은 화성>, <성스러운 장소> 등을 썼어요. 그래서 <그린 플래닛>은 '이콜로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여기에서 이콜로지(ecology)를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생태학이나 자연 생태계라고 해석할지 모릅니다. 혹시 이 단어를 생태주의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린 플래닛>을 생태주의와 SF 소설이 맺은 관계라고 봐도, 그건 틀린 시각이 아닐 겁니다. 문제는 이콜로지라는 단어가 생태주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전적으로 이콜로지는 생태주의가 아닙니다. 이콜로지는 생태학이라는 학문을 가리키는 단어이고, 생태주의는 정치적인 사상이고 환경 보호 운동입니다. 생태주의는 이콜로지가 아니라 이콜로지즘이 되겠죠.



이콜로지라는 단어 자체에는 어떤 사상이나 운동의 방향이 없습니다. 이콜로지(생태학)는 그저 객관적인 사실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그린 플래닛>은 그저 자연 생태계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환경 오염을 걱정하는 책입니다. 왜 게리 카나반과 킴 스탠리 로빈슨이 구태여 부제를 이콜로지라고 붙였을까요. 환경 보호 운동을 뜻하고 싶었다면, 'environmentalism'이라는 단어가 훨씬 나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 단어 역시 생태주의와 곧바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생태주의는 단순한 환경 보호 운동을 가리키지 않아요. 생태주의는 모든 생명체가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상이고, 그래서 자연 생태계만 아니라 성 소수자, 빈민들, 원주민들을 함께 언급합니다. 환경 보호론자는 성 소수자들이나 원주민들에게 관심이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생태주의자는 밑바닥 계급과 함께 어울려야 합니다. 녹색당은 이런 생태주의를 대표하는 정당입니다. 녹색당은 그저 핵 발전소나 매연이나 플라스틱 쓰레기만 비판하지 않습니다. 녹색당은 낙태죄를 비판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를 응원합니다.



낙태죄나 풀뿌리 민주주의나 트랜스젠더는 환경 오염과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녹색당이 저런 화제들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생태주의가 야생 동식물만 아니라 모든 약자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린 플래닛>이 낙태죄나 트랜스젠더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녹색당을 언급하는 이유는 environmentalism이라는 단어가 생태주의라는 단어와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환경과 생태는 서로 달라요. 저는 환경보다 생태가 보다 평등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보다 생태가 지구의 생명체들을 보다 평등하게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린 플래닛> 역시 이콜로지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겁니다. 흠, 여기에 정말 사상이나 운동의 방향이 들어있지 않을까요. 사전적으로 이콜로지는 운동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나, 이콜로지는 보다 평등을 추구하는 단어이고, 그래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콜로지에 운동의 방향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콜로지를 생태주의라고 번역한다면, 그건 틀린 해석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콜로지를 운동이나 사상으로 생각하는 상황을 크게 부정하기가 힘들 겁니다.



마크 볼드와 차이나 미에빌이 엮은 <레드 플래닛>은 <그린 플래닛>과 비슷한 책입니다. <그린 플래닛>이 '이콜로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처럼 <레드 플래닛>은 '마르크시즘 앤드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부제를 붙였어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레드 플래닛>은 사회주의적으로 SF 소설들을 평가하죠. 여기에서 마르크시즘, 마르크스주의는 분명히 당파적인 용어입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아주 강력한 사상과 운동을 담았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따라서 '이콜로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부제에서 이콜로지 역시 어떤 사상이나 운동의 방향을 가리킬지 모르죠. 마크 볼드와 차이나 미에빌이 마르크스주의라는 부제를 붙인 것처럼 게리 카나반과 킴 로빈슨은 이콜로지라는 단어를 붙였을지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그린 플래닛>이 생태 사회주의를 강력하게 지지하거나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히 사전적으로 이콜로지는 운동권과 연관이 없는 단어이고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콜로지가 운동의 방향을 담은 단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콜로지를 생태주의라고 번역한다면, 그건 아주 틀린 해석이 아닐지 모릅니다.



※ 그린 플래닛과 레드 플래닛. 이콜로지마르크스주의사이언스 픽션의 만남. 멋지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SF 소설들이 좀 더 흥행한다면, 언젠가 남한 평론가들이 이런 비평서를 쓸지 모르죠. 녹색과 적색 그리고 SF 소설이 더 번창하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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