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현대 영웅 신화와 자본주의의 환경 오염 본문
영웅은 상당히 강렬한 요소입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각지에서 수많은 영웅 신화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영웅의 업적은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시대에 따라, 어떤 영웅은 거대 괴수를 죽이고, 어떤 영웅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어떤 영웅은 어마어마한 경제 발전을 약속합니다. 아마 현대의 영웅 신화는 경제 발전을 업적으로 삼을 겁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사회 구조를 뒷받침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확장(성장)하고 싶어합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계속 생산해야 하고, 생산을 멈추는 것은 자본주의에게 죽음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자유 시장 속에서 기업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 많이 팔기 원하고, 그렇다면 더 많이 생산해야 합니다. 이런 구조는 결과적으로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죠. 경제가 발전하면 그 와중에 부산물이 생길 테고, 사람들은 그런 부산물을 자신이 얻기 바랍니다. 덕분에 현대 문명의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경제 발전을 외칩니다. 정당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기본적인 신조는 경제 발전입니다. 경제 발전을 외치지 않는 정치인은 철저하게 외면을 받습니다. 그런 정치인은 현대의 영웅 신화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경제가 그냥 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유 시장은 비열한 승부사에게 손을 들어주곤 합니다. 만약 기업이 산업 폐기물을 내버리고 폐기물 처리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면, 자유 시장은 그 기업에게 손을 들어줍니다. 버려진 산업 폐기물은 자연 환경을 망치겠지만, 자본주의 체계는 그걸 외부 비용(사회적 비용)으로 전환할 뿐이고, 개별 기업의 손해로 계산하지 않아요. 경제가 발전할수록 환경 오염은 점차 심각해지지만, 자본주의 체계는 그런 오염을 그리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염의 피해자는 사회이고 기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오염이 기업에게 커다란 피해를 미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체계는 (어떤 악독한 방법을 쓰든 자본을 계속 순환할 수 있는) 기업을 응원하죠. <자본론>의 어느 구절처럼 자본주의는 온갖 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며 등장했습니다. 그런 속성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21세기에는 인류 문명을 기후 변화 같은 심각한 환경 오염 속으로 내던졌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계는 바뀌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체계가 유지되는 이상, 구조적이고 심각한 환경 오염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환경이 오염되어도 기업들은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친환경 상품들을 신나게 생산하죠. 이건 마치 도둑이 훔친 물건을 주인에게 파는 것과 마찬가지군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구태여 자본주의 체계가 바뀔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심각한 환경 오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영웅이 자유 시장의 부정적인 측면을 통제한다면' 구조적인 환경 오염이 크게 줄어들 거라고 주장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착하고 인간적이고 온화한 정치인들을 뽑는다면, 그 착하고 인간적이고 온화한 정치인들이 자유 시장의 부정적인 측면을 통제할 거라는 뜻입니다. 결국 결론은 "착한 사람을 뽑자."입니다. 저는 이게 영웅 신화와 꽤나 비슷하다고 봅니다.
이건 착한 정치인이 영웅이 될 테고 현대 문명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거라는 믿음이죠. 구조와 체계가 바뀌지 않아도 어떤 영웅적인 누군가가 등장한다면, 문제점들이 사라질 거라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예나 지금이나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환경 오염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영웅이 체계보다 강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오히려 영웅은 체계를 이어나가기 원합니다. 착하고 인간적이고 온화한 정치인들 역시 자유 시장과 대기업들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그래서 그 착하고 인간적이고 온화한 정치인들이 억압적인 경제 정책에 서명하고, 전쟁에 군대를 파견하고, 기업가들을 칭송하죠. 국내든 해외든, 그런 사례는 전혀 드물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영웅 신화에서 좀 깨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파쇼주의적인 영웅 신화는 당연히 문제지만, 온건하고 보수적인 영웅 신화 역시 문제입니다. 파쇼주의적인 영웅 신화 속에서 사람들은 강력하고 굳건한 영웅이 민중들을 이끌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런 영웅이 허약한 민중들을 이끌고 경제를 부흥시키기 바랍니다. 온건하고 보수적인 영웅 신화는 이것보다 낫습니다. 적어도 영웅의 자질 자체는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영웅은 영웅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계를 수혈해주는 체계의 조력자가 될 테고, 치명적인 환경 오염은 사라지지 않겠죠. 포장지가 아무리 반짝거리고 예쁘다고 해도 내용물이 썩었다면, 그 선물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시각적인 동물이고, 내용보다 포장지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포장지가 반짝거리고 예쁘다면, 설사 내용물이 썩었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 선물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네, 당장 반짝거리고 예쁜 것이 보기에 좋겠죠. 하지만 결국 내용물이 포장지보다 중요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