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사회 구조의 환경 오염과 개인의 인식 본문
여름철을 맞이하여 여러 뉴스 사이트들은 폭염 기사를 선보입니다. 포털 사이트들은 그런 기사들을 전시하고, 수많은 유저들이 댓글을 달아요. 그런 댓글들을 둘러보면, 다들 비슷한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사람들은 폭염에 주의해야 하고, 야외 활동을 자제해야 합니다. 온실 가스가 원인이기 때문에 온실 가스를 되도록 줄여야 합니다. 어떤 유저는 왜 지구 온난화가 발생하는지 과학적인 설명을 줄줄 나열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의 폭염 기사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지만, 그 중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댓글은 거의 없습니다. 마치 다들 자본주의와 기후 변화가 아무 연관이 없는 것처럼 떠듭니다. 물론 인터넷의 댓글들에 일일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인터넷의 댓글란에서 사람들은 가볍게 떠들거나 주관적인 의견만 늘어놓을 뿐이죠. 진지하고 실천적이고 학술적인 조언을 듣고 싶다면, 인터넷 댓글란을 두리번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뉴스 사이트의 댓글란을 둘러볼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한 글자라도 더 읽는 편이 나을 겁니다.
뭐, 비단 자본주의의 환경 오염만이 아닙니다. 메갈리아가 한창 화제가 된 이후에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들이나 댓글들은 강간이나 성 폭행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더군요. 이런 인터넷 댓글들은 언제나 흥미나 자극만 추구하고, 사회 구조의 본질적인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 듯합니다. 다들 그저 자신의 맹목적인 재미와 분노를 추구할 뿐입니다. 게다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게시글이나 댓글 역시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사소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댓글들의 그 산만하고 요란한 분위기는 좀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많은 댓글들이 달렸음에도 누구 하나 본질적인 원인을 지적하지 않아요. 조금만 생각한다면, 자본주의 체계가 환경 오염의 주범임을 금방 알 수 있어요. 거대 에너지 회사, 제조 회사, 유통 회사, 식량 회사들이 열심히 온실 가스를 뿜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다국적 기업에 의존합니다. 사람들 개개인이 친환경적인 행동을 실천하고 싶어도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그게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삶의 질을 유지하고 싶다면, 대기업의 자유 시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도덕이나 윤리를 언급하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자유 시장 속에서 개개인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해요.
과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인구가 늘어난다고 해도 기후 변화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아프리카 같은 장소는 산업 자본주의가 그리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인구 문제가 기후 변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그게 틀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인구가 늘어난다고 해도 우리가 대기업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대기업이 사라지고 사회적 기업들이 정말 친환경적인 사업을 펼친다면, 우리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인터넷 댓글란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체계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자본주의 체계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사실 한 개인이 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사회 구조에 저항하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파격과 전복과 혁신과 개성을 외치지만, 그런 파격과 전복과 혁신과 개성은 그저 체제 내부의 변화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진짜 파격과 혁신과 개성을 추구하고 싶다면, 반체제적인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개성적인 인물은 이반 일리치처럼 급진적인 사고 방식을 따르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체제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하죠.
이런 '혁신적이고 개성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 쉬울까요.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대한 사회적 구조를 의심하는 것이 쉬울까요. 저는 좌파가 항상 소수라고 봅니다. 좌파는 소수입니다. 사회적 구조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그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환경이 개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일개 개인이 환경의 영향을 뿌리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들이 깨이거나 계몽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깨닫는 이유는 그들이 남들보다 똑똑하거나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시대적인 한계나 사회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종대왕을 아주 뛰어난 지식인이라고 칭송하지만, 세종대왕은 지배 계급을 옹호하는 전형적인 군주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없는 동학 운동 농민이 세종대왕보다 훨씬 똑똑할 겁니다. 어떤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깨닫는 이유는 우연적인 사건일 겁니다. 집안 배경 때문에, 어쩌다 그쪽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에, 자본가에게 워낙 수탈을 당했기 때문에, 진부한 의견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뭔가 멋지게(?) 보였기 때문에 등등.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우연히 사회주의를 깨달았다고 해도 그대로 멈추면 안 되겠죠. 그런 소수가 계속 목소리를 높일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언젠가 인터넷의 댓글들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야기할지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