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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프레이>와 <로물루스>, 새로운 전망과 친숙한 과거 본문

SF & 판타지/외계인과 이방인

<프레이>와 <로물루스>, 새로운 전망과 친숙한 과거

OneTiger 2024. 8. 21. 11:20

[스코치드 제노모프보다 페럴 프레데터는 새로운(낯선) 전망을 제시합니다.]



"I Want to Believe. 나는 믿기 원한다." 이 문장과 외계인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양쪽을 연결하기가 쉬운 것처럼, 이 문장은 "나는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믿기 원한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외계인과 달리, 이 문장과 페커리를 연결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양쪽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도, 현실에서 페커리는 존재합니다. 이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이미 이 동물은 존재합니다. 페커리와 달리, 현실에서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외계인을 증명하기 위한 물리적인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음…, 이건 사실보다 믿음입니다.

 

비단 페커리만 아니라 모노클로니우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생태학자는 살아있는 페커리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건 가능합니다. 페커리와 달리, 현실에서 고생물학자는 살아있는 모노클로니우스를 연구하지 못합니다.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고생물학자가 중생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만약 향상된 유전 공학이 모노클로니우스를 복제하지 않는다면, 만약 생명 진화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모노클로니우스를 연구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페커리와 모노클로니우스에게는 커다란, 너~~~무 커다란 격차가 있습니다.



"I Want to Believe. 나는 믿기 원한다." 이 문장과 페커리를 연결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양쪽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도, 현실에서 페커리는 존재합니다. 모노클로니우스는 어떤가요? 페커리와 모노클로니우스에게 커다란, 너~~~무 커다란 격차가 있기 때문에, "나는 믿기 원한다."와 모노클로니우스를 연결하기가 가능한가요? 적어도, 양쪽이 어울리나요? 그건 아닙니다. 비록 이른바 예수쟁이들이 생명 진화 역사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중생대에서 모노클로니우스는 존재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이미 이 뿔용은 존재했습니다.

 

모노클로니우스와 달리, 현실에서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외계인을 증명하기 위한 물리적인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음…, 이건 사실보다 믿음입니다. 아무리 천문학자들이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고 해도, 그들은 절대 증명하지 못합니다.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믿기 원한다."와 외계인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양쪽을 연결하기가 쉬운 것처럼, 이 문장은 "나는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믿기 원한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 뜻처럼, 사이언스 픽션(SF)에서 외계인은 주된 주제입니다. 흐음, 이 주제는 사이언스 픽션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습니다. 이건 '다른 세계'를 상상합니다. "나는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믿기 원한다."처럼, 현실에서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이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기 때문에, 양쪽은 어울립니다. 이건 오직 외계인만 사이언스 픽션을 대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SF 소설가들은 외계인보다 다른 주제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대표한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비조류) 공룡은 어떤가요? 만약 고생물학자가 중생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만약 향상된 유전 공학이 복제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모노클로니우스를 연구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생명 진화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비조류) 공룡들을 연구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고생물학자가 중생대로 돌아간다면, 만약 향상된 유전 공학이 복제한다면, 만약 생명 진화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면, 이건 현실보다 '다른 세계'일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다른 세계입니다. 살아있는 모노클로니우스를 연구하기 위해 고생물학자에게는 현실보다 다른 세계가 필요합니다. 모노클로니우스에게는 다른 세계로 연결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이 뿔용에게 이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나는 믿기 원한다."와 모노클로니우스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모노클로니우스에게 다른 세계로 연결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중생대에서 이 뿔용은 존재했습니다. 모노클로니우스와 달리, 현실에서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외계인은 지구, 이 행성을 넘어섭니다. 아무리 생명 진화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고 해도, 이건 지구를 넘어서기 위한 상상이 아닙니다. 대체 역사보다 외계인이 지구를 넘어서기 때문에, 전자보다 후자는 훨씬 다른 세계에 속합니다. 대체 역사보다 외계인이 훨씬 다른 세계에 속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이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 역사보다 외계인은 사이언스 픽션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비단 대체 역사만 아니라 다른 것들 역시 똑같습니다. 기술적인 특이점부터 거대 괴수까지, 다른 세계로서, 사이언스 픽션은 많은 것들을 상상합니다. 음…, 이것들은 지구를 넘어서기 위한 상상이 아닙니다. 기술적인 특이점과 달리, 거대 괴수와 달리, 만약 사이언스 픽션이 우주를 탐사한다고 상상하지 않는다면, 외계인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외계인을 상상하기 위해 사이언스 픽션은 지구를 넘어섭니다. 더 이상, 이 행성은 사이언스 픽션을 구속하지 않습니다. 이게 훨씬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외계인은 사이언스 픽션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노모프는 외계 생명체입니다.



[아주 유명한 외계 생명체로서, 사이언스 픽션에서 제노모프는 커다란 가치를 얻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제노모프는 가장 유명한 외계 생명체일 겁니다. 적어도, 이 괴물은 아주 유명한 외계 생명체입니다. 외계인이 사이언스 픽션을 대표할 수 있기 때문에, 제노모프가 아주 유명한 외계 생명체이기 때문에, 이 괴물은 커다란 가치를 얻습니다. 아무리 제노모프가 커다란 가치를 얻는다고 해도, <에일리언: 커버넌트>는 좋은 평가들을 듣지 않습니다. 영화 평론가들부터 SF 덕후들까지, 많은 사람들은 <에일리언: 커버넌트>가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비단 이 영화만 아니라 <더 프레데터> 역시 비슷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프레데터는 아주 유명한 외계 사냥꾼입니다. 외계인이 사이언스 픽션을 대표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등장인물은 커다란 가치를 얻습니다.

 

아무리 프레데터가 커다란 가치를 얻는다고 해도, <더 프레데터>는 좋은 평가들을 듣지 않습니다. 영화 평론가들부터 SF 덕후들까지, 많은 사람들은 <더 프레데터>가 밑바닥 수준이라고 비판합니다. 이 영화 때문에, <프레데터> 시리즈는 커다란 위기에 빠졌습니다. <더 프레데터>와 달리, <에일리언: 커버넌트>는 밑바닥 수준이 아닙니다. 아무리 이 영화가 중간 수준에 속한다고 해도, 분명히, <에일리언: 커버넌트>는 성공 사례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에일리언: 로물루스>에게는 이 시리즈를 연장하기 위한 훨씬 무거운 책임이 있을 겁니다. 이 영화처럼, <프레이>는 비슷합니다. 어휴~, <더 프레데터>는 이 시리즈를 커다란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더 프레데터> 때문에, <프레이>에게는 이 시리즈를 연장하기 위한 훨씬 무거운 책임이 있을 겁니다. 이 관점에서 <프레이>와 <에일리언: 로물루스>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비단 이 특성(시리즈를 위한 책임)만 아니라 다른 특성들 역시 비슷합니다. 댄 트라첸버그는 <프레이>의 감독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댄 트라첸버그는 <클로버필드 10번지>의 감독이었습니다. 폐쇄적인 공간, 제한적인 등장인물들, 심리적인 긴장은 이 영화의 커다란 특성들입니다. 비단 댄 트라첸버그만 아니라 페데 알바레즈 역시 비슷합니다. 페데 알바레즈는 <에일리언: 로물루스>의 감독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페데 알바레즈는 <맨 인 더 다크>의 감독이었습니다.

 

폐쇄적인 공간, 제한적인 등장인물들, 심리적인 긴장은 이 영화의 커다란 특성들입니다. 이 특성들 덕분에, <클로버필드 10번지>와 <맨 인 더 다크>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이건 양쪽이 100% 똑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와 달리, <맨 인 더 다크>는 호러에 가깝습니다. 스릴러와 호러가 다른 것처럼, <클로버필드 10번지>와 <맨 인 더 다크>는 100% 똑같지 않습니다. 비록 양쪽이 다르다고 해도, 분명히, 폐쇄적인 공간, 제한적인 등장인물들, 심리적인 긴장은 커다란 교집합일 수 있습니다. 이 특성들처럼, 다른 특성들은 커다란 교집합이 될 수 있습니다. 댄 트라첸버그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 감독이 아닙니다.



이 감독은 길다란 필모그래피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댄 트라첸버그처럼, 페데 알바레즈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 감독이 아닙니다. 이 감독은 길다란 필모그래피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페데 알바레즈가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 감독이 아닌 것처럼, <에일리언: 로물루스>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제작 비용은 많지 않습니다. (8,000만 달러.) 비단 <로물루스>만 아니라 <프레이> 역시 비슷합니다. 댄 트라첸버그가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 감독이 아닌 것처럼, <프레이>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제작 비용은 많지 않습니다. (6,500만 달러.) 낮은 비용 역시 커다란 교집합입니다.

 

제작 비용이 낮기 때문에, <프레이>가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가 아닌가요? 많은 훌루 시청자들은 고개들을 저을 겁니다. 그들은 <프레이>가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라고 평가합니다. 비단 훌루 시청자들만 아니라 영화 평론가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로튼 토마토에서 <프레이>의 토마토 점수는 94%입니다. 이 점수가 보여주는 것처럼, <프레이>는 이 시리즈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덕분에, <프레데터> 시리즈는 침몰하지 않을 겁니다. <프레이>처럼, <로물루스>는 다르지 않습니다. 제작 비용이 낮기 때문에, <로물루스>가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가 아닌가요? 많은 극장 관객들은 고개들을 저을 겁니다.



그들은 <로물루스>가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라고 평가합니다. 비단 극장 관객들만 아니라 영화 평론가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로튼 토마토에서 <로물루스>의 토마토 점수는 81%입니다. 이 점수가 보여주는 것처럼, <로물루스>는 이 시리즈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덕분에, <에일리언> 시리즈는 침몰하지 않을 겁니다. <프레이>가 <프레데터> 시리즈를 구원하는 것처럼, <로물루스>가 <에일리언> 시리즈를 구원하는 것처럼, 양쪽은 비슷합니다. 아무리 <프레이>와 <로물루스>가 비슷하다고 해도, 흐음, 로튼 토마토에서 후자(81%)보다 전자(94%)는 높은 점수를 자랑합니다.

 

비단 로튼 토마토만 아니라 메타크리틱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메타크리틱에서 <프레이>는 71점입니다. 이 영화와 달리, <로물루스>는 64점입니다. 로튼 토마토처럼, 메타크리틱에서 <로물루스>보다 <프레이>는 높은 점수를 자랑합니다. 어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이 평론가들이 <로물루스>보다 <프레이>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나요? 아마도 '친숙함'은 대답인지 모릅니다. 분명히, <로물루스>는 치밀한 구조를 자랑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영화는 여러 갈등들, 긴장들을 퍼붓습니다. 페데 알바레즈는 아주 영리한 감독입니다. 이 감독은 극장 관객들에게 한숨을 돌리기 위한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로물루스>가 좋은 영화라고 해도, 이건 새로운 방향보다 친숙한 감성입니다.]



<로물루스>는 치밀하게 짜인 대본을 자랑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관점에서 저는 <프레이>보다 <로물루스>가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이>에게는 느슨한 측면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이 측면들은 이 영화의 단점입니다. <로물루스>와 달리, <프레이>에서 여러 갈등들, 긴장들은 기관총이 아니고, 융단 폭격이 아니고, 일제 사격이 아닙니다. 아무리 댄 트라첸버그가 영리한 감독이라고 해도, 훌루 시청자들은 한숨을 돌리기 위한 여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프레이>는 시청자들을 압도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 영화보다 <로물루스>는 극장 관객들을 압도합니다. 긴장들의 융단 폭격으로.

 

문자 그대로, <로물루스>는 일제 사격입니다. 쉬지 않고, 이 영화는 긴장이라는 포탄들을 퍼붓습니다. <로물루스>와 달리, <프레이>는 구축함보다 잠수함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잠수함이 여러 어뢰들을 날린다고 해도, 이것들은 느립니다. <로물루스>보다 <프레이>는 느린, 느슨한 감성입니다. <프레이>보다 <로물루스>는 압도적인 감성, 치밀한 감성입니다. 아무리 이 영화가 극장 관객들을 압도한다고 해도, 이건 새로운 감성이 아닙니다. 페데 알바레즈는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기보다 친숙한 과거를 가져옵니다. 아무리 <로물루스>가 치밀하게 짜인 대본이라고 해도, 이건 친숙한 과거입니다.



그을린 제노모프(스코치드 제노모프)부터 유사 펄스 라이플까지, '친숙한 과거 내부'에서 <로물루스>는 치밀하게 짜인 대본을 자랑합니다. 이 대본은 친숙한 과거, 이 울타리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로물루스>에게는 새로운 방향을 탐험하기 위한 의지가 없습니다. 심지어 너무 기괴한 후반부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제노모프 덕후들은 어떻게 이 후반부가 흐르는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로물루스>가 새로운 방향을 탐험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평론가들, 관객들은 이 영화가 그저 거대한 팬 픽션에 불과하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음…, <로물루스>는 독립적인 영화보다 거대한 팬 픽션입니다.

 

<에일리언³>는 좋은 평가들을 듣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제노모프 덕후들조차 이 영화를 싫어합니다. 비록 <에일리언³>가 밑바닥 영화라고 해도, 적어도, 이건 팬 픽션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에일리언³>는 새로운 방향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다른 영화들에게 매달리지 않습니다. <에일리언³>와 달리, <로물루스>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종합 선물 세트입니다. 그 자체로서, 이 영화는 커다란 가치를 얻지 않습니다. 종합 선물 세트로서, <로물루스>는 커다란 가치를 얻습니다. 이 영화와 달리, 적극적으로, <프레이>는 새로운, 낯선 방향을 탐험하기 원합니다.



<로물루스>에서 그을린 제노모프는 주된 악당입니다. 이 악당은 낯선 제노모프, 새로운 제노모프가 아닙니다. (비록 <에일리언³>가 밑바닥 영화라고 해도, 적어도, 그을린 제노모프보다 드래곤 제노모프는 새로운 제노모프입니다.) 그을린 제노모프와 달리, <프레이>에서 페럴 프레데터는 낯선 프레데터, 새로운 프레데터입니다. 1987년 <프레데터>부터 2018년 <더 프레데터>까지, 이 시리즈에서 여러 프레데터들은 기계적인 분위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이 프레데터들과 달리, 페럴 프레데터는 훨씬 원시적인 느낌, 야성적인 느낌을 보여줍니다. 아, 심지어 가면조차 섬뜩한 두개골 같습니다!

 

1987년 <프레데터>부터 2018년 <더 프레데터>까지, 여러 프레데터들의 가면들은 아가리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프레데터들과 달리, 비록 페럴 프레데터가 가면을 착용한다고 해도, 이 가면은 아가리를 보여줍니다. 훌루 시청자들은 포효하기 위해 페럴 프레데터가 아가리를 활짝 연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다른 프레데터들보다 페럴 프레데터는 섬뜩한 두개골이 아가리를 열고 포효한다고 보여줍니다. 비단 형태만 아니라 사냥 역시 새로운 방향을 추구합니다. 1987년 <프레데터>에서 주연 프레데터는 밀림 사냥꾼이라고 불립니다. 이 악당은 손목칼보다 플라즈마 발사기를 사용합니다.



밀림 사냥꾼처럼, 오랜 동안, 플라즈마 발사기는 프레데터를 대표하기 위한 무기였습니다. 이 발사기와 달리, <프레이>에서 페럴 프레데터는 플라즈마 무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손목칼, 창처럼, 이 악당은 원거리 무기보다 날붙이 무기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플라즈마 발사기보다 손목칼은 훨씬 원시적인 느낌, 야성적인 느낌을 풍깁니다. 특히, 날붙이 무기로서, 원거리 무기(플라즈마 발사기)보다 손목칼은 훨씬 역동적인 전투를 보여줍니다. <프레데터> 시리즈에서, 다른 영화들보다 <프레이>는 훨씬 역동적인 전투들로 가득합니다. 이 전투들처럼, 오~, <프레이>는 새로운 영화입니다.

전통적으로, 날붙이 무기와 방패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이 비디오 게임은 중세 문명들의 대규모 전투들을 묘사합니다. 이 전투들에서 여러 전사들은 커다란 부분,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 전사들은 방패들로 방어합니다. 아즈텍 재규어 전사, 켈트 대청 특공대, 바이킹 광전사, 고트 허스칼처럼, 전사와 방패는 연결됩니다. 전사와 달리,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는 사냥꾼이 방패로 방어한다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으로, 사냥꾼과 방패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양쪽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프레데터에게 방패는 기본적인 장비가 아닙니다.



프레데터가 사냥꾼이기 때문에, 방패는 이 등장인물의 기본적인 장비가 아닙니다. 이 관점에서 페럴 프레데터는 사냥꾼보다 전사에 가까운지 모릅니다. 방패가 이 악당의 기본적인 장비이기 때문입니다. 아즈텍 재규어 전사처럼, 바이킹 광전사처럼, 어떤 팬 아트들은 페럴 프레데터가 방패로 방어한다고 묘사합니다. 이 그림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페럴 프레데터와 전사는 어울리는지 모릅니다. 사냥꾼보다 전사가 훨씬 전투적인 등장인물이기 때문에, <프레데터> 영화들 중에서 페럴 프레데터는 훨씬 전투적인 등장인물인지 모릅니다. 오~, 페럴 프레데터의 방패는 친숙한 과거가 아닙니다.

섬뜩한 두개골 가면부터 기본적인 방패까지, 댄 트라첸버그는 낯선 방향, 새로운 방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페럴 프레데터와 달리, 스코치드 제노모프는 낯설지 않고 새롭지 않습니다. 심지어 <로물루스>의 후반부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프레이>가 새로운 전망이기 때문에, <로물루스>가 친숙한 과거이기 때문에, 로튼 토마토, 메타크리틱은 <로물루스>보다 <프레이>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지 모릅니다. 로튼 토마토처럼, 개인적으로, 저는 <로물루스>보다 <프레이>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기 원합니다. 스코치드 제노모프보다 페럴 프레데터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로튼 토마토는 친숙한 과거보다 새로운 전망을 선호하는지 모릅니다.]



이건 <로물루스>보다 <프레이>가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치밀하게 짜인 대본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면, <프레이>보다 <로물루스>는 높은 점수를 얻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프레이>보다 <로물루스>가 치밀하게 짜인 대본을 자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재미있는 영화라고 느낍니다. 반자동 소총보다 기관총이 훨씬 강력한 무기인 것처럼, <프레이>보다 <로물루스>는 훨씬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아무리 전자보다 후자가 재미있다고 해도, 스코치드 제노모프는 너무 친숙합니다. 으음…, 게다가, 이 외계 괴물은 강력한 악당이 아닙니다.

 

<프레이>에서 페럴 프레데터는 많은 등장인물들을 학살합니다. 코만치 전사들부터 서구 제국주의 침략자들까지, 이 악당은 찌르고, 자르고, 찢어발기고, 베어버립니다. 페럴 프레데터는 '핵 & 슬래쉬'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프레이>와 달리, <로물루스>에서 스코치드 제노모프는 학살 장면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비단 이 괴물만 아니라 다른 제노모프들 역시 비슷합니다. <로물루스>는 (제노모프) 전사 계급이 인간들을 학살한다고 보여주지 않습니다. 영화 포스터가 강조하는 것처럼, <로물루스>에서 전사 계급보다 페이스 허거는 훨씬 무섭습니다. 이 영화는 초점을 맞추지 못합니다.



<로물루스>는 스코치드 제노모프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합니다. 이건 너무 애석합니다. 극장 관객들부터 제노모프 덕후들까지, 많은 사람들은 페이스 허거보다 전사 계급이 제노모프를 대표한다고 느낄 겁니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2000년 비디오 게임입니다. 비록 게임 플레이어가 오직 전사 계급만 조종한다고 해도, 이건 나쁘지 않습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오직 페이스 허거만 조종했다면,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많은 비판들을 들었을 겁니다. 이 비디오 게임이 증명하는 것처럼, 페이스 허거보다 전사 계급은 제노모프를 대표합니다. <로물루스>는 이 게임과 다릅니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와 달리, <로물루스>는 스코치드 제노모프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합니다. 이 영화에서 이 전사 계급보다 페이스허거는 커다란 부분입니다. <로물루스>는 비단 친숙한 영화만 아니라 '초점 없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로물루스>와 달리, <프레이>는 페럴 프레데터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이 영화에서 이 악당은 핵심 부분, 커다란 부분입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보다 나루, 이 '여자' 주인공은 이 핵심을 상대합니다. <프레이>는 "더 이상, <프레데터> 시리즈는 마초적인 영화들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습니다. 더치 소령과 달리, 오오~, 나루는 이정표가 됩니다.



※ <프레이>는 서구가 아메리카를 침략한다고 묘사합니다. 이 영화처럼, 현실에서 서구는 아메리카를 침략했습니다. 운디드니 학살이 증명하는 것처럼, 사실, 이른바 대항해 시대는 대학살 시대입니다. 서구가 아메리카를 침략했기 때문에, 이 악랄한 문명은 많은 이득들을 얻었습니다. 이 이득들 때문에, 서구에서 산업 자본주의는 많은 돈들을 벌었습니다. 서구 제국주의는 산업 자본주의로 연결됩니다. 반다나 시바부터 맥스 아일까지, 여러 지식인들은 이 연결을 비판합니다. 엔코미엔다에서 아메리카 민중들이 노예들인 것처럼, 자본주의에서 임금 노동자들은 노예들입니다.

 

<로물루스>는 노동자 계급이 노예들과 다르지 않다고 묘사합니다. 이 영화처럼, 현실에서 노동자 계급은 노예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게 많은 돈들은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이 경제는 돈, 돈, 돈, 돈, 돈, 돈벌이에 집착합니다. 비록 노동자(인간)들이 죽는다고 해도, 많은 돈들을 벌기 위해 자본주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지구 생물권조차 안전하지 않습니다. 재생 에너지들보다 석탄들, 석유들, 가스들이 많은 돈들을 벌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전자보다 후자를 선택합니다. 이 경제 때문에, 지구 대기 중에서 위험한 가스들은 증가하고 이 행성 온도는 상승합니다.



※ 영화 <에일리언: 로물루스> 예고편:
http://www.youtube.com/watch?v=o9F6G-VCt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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