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폭염 기사와 밑바닥 계층 본문
여름이 되면, 으레 언론 매체들은 폭염 기사를 이야기합니다. 왜 폭염이 나타나는지 분석하는 기사입니다. 이런 기사들은 지구 과학과 자연 생태학에 관련이 많기 때문에 과학 기자들도 빼놓지 않는 소재입니다. 아동 과학 잡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 과학동아> 같은 잡지도 왜 이토록 폭염이 심해졌는지 이야기해요.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한다면, 첫째가 기후 변화이고 둘째가 열섬 현상입니다.
이건 기후 변화 때문에 지구 전체에 걸쳐 제트 기류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고기압이 한 장소에 꾸준히 머물고, 이게 바로 폭염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열섬 현상은 도시 내부의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건물들이 태양빛을 덜 반사하고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도시를 찜통으로 만든다는 뜻이죠. 이 두 가지 중에서 훨씬 심각한 문제는 기후 변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도시가 삼림 도시 같은 방법으로 열을 덜 뿜는다면, 열섬 현상은 많이 줄어들 겁니다. 반면, 기후 변화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산업 문명은 온실 가스를 꾸준히 내뿜었고, 그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2050년은 마법의 숫자입니다. 미래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인류가 기술적 특이점을 지날지 모른다고 예상합니다. 그래서 많은 미래학 서적이나 인공 지능 서적이 2050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죠. 인공 지능을 기다리는 사람들 입장에서 2050년은 황홀한 해가 될지 모릅니다. 반면, 2050년은 재앙의 해가 될지 모릅니다. 기후학자들은 기후 변화의 본격적인 피해가 2050년 이후 심해질 거라고 예측합니다.
기후 변화는 이미 피해를 미치기 시작했으나, 2050년 이후 그게 본격적으로 심화될지 모릅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폭염이 훨씬 기승을 부리고, 가뭄이나 이상 기후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그에 따라 질병이 빠른 속도로 번지고, 기타 등등…. 가령, 우리나라에서 폭염은 지금도 심각한 피해를 끼치지만, 2050년이 되면 그야말로 불지옥이 열릴지 모릅니다. 만약 이렇게 불지옥이 전국에 열린다면,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상류층이나 중산층은 비교적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날씨가 더워도 어떤 사람들은 사무실 안에서 에어컨을 쐬며 쾌적하게 일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쾌적한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쐬지 못할 겁니다. 누군가는 농장에서 일해야 하고, 누군가는 공사 현장에서 일해야 하고, 누군가는 시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일해야 할 겁니다. 하역장에서 짐을 부리는 일꾼들은 에어컨을 엄두도 내지 못하겠죠. 하지만 이런 노동자들은 폭염 기사의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폭염 기사들을 살펴보면, 폭염 경보에 주의하라거나 외출을 자제하라거나 이런 뻔한 내용들을 쏟아냅니다. 비단 폭염 기사만 아니라 미세 먼지 기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대책대로 행동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밖에서 일해야 하고 밖을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은 폭염이나 미세 먼지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폭염 기사나 폭염 이야기는 이런 사람들을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이건 엄연히 계급 차별입니다. 야외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계급 차별이죠. 뭐, <어린이 과학동아> 같은 잡지는 어린이들이 보기 때문에 자세한 대책을 싣지 못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뉴스들도 뻔한 소리만 반복합니다. 사실 자본주의 체계에서 하급 노동자들을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죠. ('하급'이라고 부르는 것도 웃기죠. 직업에 귀천이 없건만, 왜 농민이나 공사 인부는 하급이 되어야 하는지.)
게다가 저런 노동자들 이외에 야생 동물들은 어찌 할까요. 야생 동물들도 폭염이나 미세 먼지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테고, 이건 엄연히 생물 다양성 파괴로 이어지겠죠. 하지만 폭염 기사나 폭염 특보는 그런 생물 다양성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생물 다양성을 21세기 초반의 최대 화두로 꼽지만, 폭염 특보 같은 것들은 그런 이슈를 별로 입에 담지 않아요. 저는 이것 역시 사회 구조가 불평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불평등한 구조가 상류층이나 중산층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빈민들이나 야생 동물들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죠.
그에 따라 상류층이나 중산층만 바라보는 이데올로기 또한 퍼지고요. 자본주의 체계는 자본을 축적하는 사람만 대접하기 때문에 불평등한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죠. (데이빗 하비의 지적처럼 자본이 없는 대상들은 물리적이든 사상적이든 주변으로 밀려나기 마련이에요.) 폭염 특보에서 야생 동물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싶다면, 결국 지금의 자본주의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기본 소득이나 추첨 민주주의 같은 더욱 평등한 구조를 지향하는 급진적인 정책들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