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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도 기차역>의 직조자와 그물망 형성 본문

사회주의/형이상학 비판

<페르디도 기차역>의 직조자와 그물망 형성

OneTiger 2019. 3. 8. 21:51

소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에서 직조자는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소설 속에서 어떤 절지류 괴물들은 사람들을 습격합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괴물들에게 저항하죠. 하지만 도시에는 여러 파벌들이 있고, 그들은 각자 괴물들에게 저항합니다. 노동 조합을 때려잡는 군사 정부와 노동 조합을 응원하는 좌파 언론인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군사 정부와 좌파 언론인이 함께 괴물들과 싸운다면, 그건 이상한 상황이겠죠.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괴물들에게 저항합니다. 좌파 언론인은 몇몇 동료와 함께 괴물들을 추적하나, 그들에게 싸움은 어려운 과제입니다. 절지류 괴물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죠.


군사 정부는 첨단 장비들과 수많은 병사들과 여러 이계 존재들을 동원할 수 있으나, 언론인과 동료들에게는 그런 첨단 장비나 이계 존재가 없습니다. 그때 직조자는 언론인과 동료들에게 다가오고 언론인의 동료 발명가는 직조자에게 말을 건넵니다. 발명가는 직조자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놀랍게도 직조자는 그들을 도와줍니다. 이건 꽤나 대단한 사건입니다. 직조자가 인간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조자는 이계 존재입니다. 이름처럼 직조자는 거대한 거미이고 거미줄을 짓습니다. 여러 차원들을 통해 직조자는 거미줄을 사방에 퍼뜨립니다.



직조자는 다른 차원들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물질 세계를 비롯해 여러 차원들에서 직조자는 거미줄을 짓습니다. 직조자는 세계가 '그물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조자의 유일한 관심 대상은 거미줄, 그물망입니다. 직조자는 오직 아름다운 그물망을 짓고 싶어합니다. 다른 것들은 직조자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직조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아무리 군사 정부가 번쩍거리는 금은보화를 바친다고 해도, 직조자는 여덟 개의 눈들 중에서 눈 하나라도 깜빡하지 않을 겁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금은보화는 가치가 있습니다. 직조자는 외계 거미이고 여러 차원들을 넘어갑니다. 직조자는 거미줄로 차원들을 연결하고 세계를 형성합니다.


그렇게 직조자는 아름다운 그물망을 짓기 바랍니다. 직조자는 절지류 괴물들이 그물망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하고 발명가가 그물망을 수리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절지류 괴물들을 물리치기 위해 발명가가 아주 독특한 기계 장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이 스팀펑크 판타지 소설임에도, 발명가는 칙칙폭폭 증기 기관 장치가 아니라 기술적 특이점에 도전합니다. 오오, 스팀펑크 속의 기술적 특이점…. 이 부분은 스팀펑크보다 사이버펑크에 가깝습니다. 절지류 괴물들과 싸우기 위해 발명가는 그런 기계 장치를 만들죠. 직조자는 그런 기계 장치를 예감한 것 같습니다. 아무도 직조자의 속마음을 알지 못하나, 직조자는 그런 분위기를 풍깁니다.



소설 속에는 여러 이계 존재들이 있으나, 그들 중에서 유일하게 직조자는 '세계 형성'을 말합니다. 악마나 기생적인 외계인이나 마법 정령이나 흡혈귀와 달리, 직조자는 어떻게 세계를 형성하는지 말하고 싶어합니다. 세계는 그물망입니다. 뜨거운 유황 지옥부터 기이한 다른 세계까지, 수많은 차원들은 그물망입니다. 왜 세계가 그물망일까요? 왜 직조자가 세계를 그물망이라고 생각할까요? 직조자는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습니다. 사람들은 뭐라고 직조자가 떠드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발명가와 직조자는 서로 대화하나, 그들의 대화는 꽤나 황당무계합니다. 독자들 역시 뭐라고 직조자가 떠드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독자들은 어느 정도 의미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직조자는 세계가 부분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릅니다. 세계는 부분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류 문명에서 여러 사건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국지적인 사건은 국지적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그저 씨줄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물망은 아주 커다랗고, 그물망에는 여러 씨줄들과 날줄들이 있겠죠. 우리가 씨줄들과 날줄들을 함께 바라볼 때, 우리는 그물망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를 파악할 수 있겠죠. 우리는 고작 몇몇 씨줄만 쳐다봐서는 안 됩니다.



이건 나무보다 숲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직조자는 오직 나무 하나만 주목하지 않습니다. 직조자는 수많은 나무들과 숲에 주목합니다. 직조자는 수많은 날줄들과 씨줄들과 커다란 그물망을 파악합니다. 우리는 이런 시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국지적이고 부분적인 사건에 주목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세계를 전반적으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한국 전쟁에서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고 말합니다. 남한 사람들은 북침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북침일까요? 북한이 정말 남한을 침략했을까요? 한국 전쟁을 국지적이고 부분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고 말할 겁니다.


반면, 우리가 세계를 그물망으로 파악한다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집니다. 한국 전쟁은 씨줄입니다. 한국 전쟁은 전체 그물망이 아닙니다. 현대 문명에서 한국 전쟁은 유일무이한 전쟁이 아닙니다. 한국 전쟁은 2차 세계 대전에서 비롯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은 1차 세계 대전에서 비롯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은 식민지 분쟁들에서 비롯했습니다. 식민지 분쟁들은 유럽 중심주의이고 제국주의입니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동안, 제국주의를 가장 강렬하게 비판하는 세력은 공산주의였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계속 사회주의 세력들을 짓밟았고 학살했습니다.



1871년에 파리 코뮌이 나타난 이후, 언제나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사회주의 세력들을 학살했습니다. 파리 코뮌은 먼저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파리 코뮌에게는 누군가를 공격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코뮌 정부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먹여 살리느라 바빴죠. 자본가 계급은 가난한 노동자들이 오손도손 먹고 사는 꼬락서니를 놔두지 않았고 대대적으로 학살했습니다. 파리 코뮌 학살 이후, 파리 코뮌을 따르는 수많은 사회주의 세력들은 학살을 당했습니다. 여전히 21세기 오늘날까지,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이런 폭력을 멈추지 않죠. 왜 노동자 통제를 중시하는 남아메리카 노동 운동가들이 미국 자본주의를 싫어하겠습니까. 왜 그렇게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남아메리카 사회주의가 수난을 겪습니까.


언론 매체들은 베네수엘라가 문제라고 호들갑을 떠나, 19세기부터 학살을 당하고 혼란에 빠지는 사회주의 세력들이 오직 베네수엘라뿐입니까? 파리 코뮌이 대대적으로 학살을 당했을 때부터, 로자 룩셈부르크와 공산주의자들이 린치를 당했을 때부터,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가 1차 세계 대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부터, 이미 사회주의가 탄압을 당하고 짓밟히는 상황은 예정되었습니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고립된 상황이 아닙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100년이 넘는 동안, 사회주의는 계속 짓밟혔고, 21세기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주의는 19세기 가난한 파리 코뮌의 연장선입니다. 하지만 언론 매체는 이런 사실들을 떠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경제 공황을 뻥뻥 터뜨린다고 해도,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세계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밑바닥 계급들과 다른 지역들에 고통과 책임을 전가할 수 있고 경제 공황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소한 사회주의 세력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미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부터 파리 코뮌과 스파르타쿠스 공산주의와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는 작은 공격들에 치명타를 입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언론 매체들은 이걸 말하지 않아요. 시작부터 사회주의가 학살을 피하지 못했음에도, 시작부터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무자비하게 짓밟았음에도, 사람들은 이걸 인식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무조건 자본주의가 옳다고 상정하고, 이런 상정 속에서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욕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고립된 상황이 아닙니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입니다. 발터 벤야민은 우리가 (미래에 등을 돌리고) 과거를 바라보고 '잃어버리고 사라지는 역사를 구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체로서 현재는 현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미래에 등을 돌리고, 과거를 바라보고, 사라지는 것들을 끄집어내야 합니다. 지배 계급이 파리 코뮌과 스파르타쿠스 공산주의와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를 지울 때, 사람들은 어떻게 사회주의가 학살을 당하기 시작했는지 말해야 합니다. 그때 마침내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비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발터 벤야민의 충고와 달리, 사람들은 그저 열심히 현재가 고립된 상황이라고 간주할 뿐입니다.



이런 흐름,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학살하는 흐름은 현대 인류 문명을 장악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학살했기 때문에 동구와 서구, 북반구와 남반구, 강대국들과 제3세계들을 나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학살하고, 사회주의가 다시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동안, 현대 인류 문명은 나타났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1세기 오늘날 우리는 살아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이런 흐름을 고려해야 할 겁니다. 한국 전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전쟁은 유일한 씨줄이 아닙니다. 수많은 씨줄들과 날줄들 속에서 한국 전쟁은 존재합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학살하고, 사람들이 그걸 당연하다고 간주하고, 극단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사회주의가 독종이 되고, 또 다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세력들을 학살하는 동안, 북한은 남한을 공격했습니다. 이게 정말 공격일까요? 만약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세력들을 학살하지 않았다면, 파리 코뮌과 스파르타쿠스 공산주의와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와 중국 인민 공사와 에스파냐 아나키스트 노동자 집단과 다른 사회주의 세력들이 학살을 당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먼저 침략했을까요? 사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세력들을 학살하지 않았다면, 2차 세계 대전은 터지지 않았을 겁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이오시프 스탈린 및 레프 트로츠키와 제대로 논의했다면, 그들은 파쇼주의를 막을 수 있었겠죠.



2차 세계 대전이 터지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갈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들은 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원했고 파쇼주의에 동조했죠. 에스파냐에서 파쇼주의를 막기 위해 아나키스트 노동자 집단은 내전을 불사했으나,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그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에스파냐 아나키스트 노동자들을 도울 때,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소비에트 연방을 위협했습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비겁하게 꼬리를 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소비에트 연방은 아나키스트 노동자들을 배척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한국 전쟁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다면, 우리는 이런 흐름을 고려해야 할 겁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정말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을까요?


직조자는 그게 아니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북한이 나타났을 때,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세력들을 학살하는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독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건 박헌영과 김일성이 잘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전쟁은 나쁘고, 박헌영과 김일성은 강렬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 침략이 나쁘다면, 사람들은 다른 학살들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운디드니 학살, 파리 코뮌 학살, 적백 내전, 소비에트 연방의 희생자들, 전쟁을 겪은 중국 인민 공사, 외롭게 고립된 에스파냐 아나키스트 노동자들, 인도네시아 공산당 학살, 칠레 아옌데 대통령의 죽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매분 매초마다 성 폭행을 당한 숱한 여자들을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죠. 사람들은 문화 대혁명이 폭력적이라고 호들갑을 떠나, 끔찍한 인도네시아 공산당 학살을 입에 담지 않습니다. 사실 <액트 오브 킬링>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공산당 학살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죠. 우리는 오직 국지적인 폭력만을 언급합니다. 그건 지배 계급에게 유리한 폭력이죠. 그래서 북침은 거짓말이고 세뇌입니다. 우리가 정말 북침을 말하고 싶다면, 먼저 우리는 어떻게 사회주의가 학살을 당했는지 지적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끄집어내고, 잊혀지는 과거를 구원하고, 현실과 연결해야 합니다. 그물망은 이런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복잡하게 얽히고 씨줄과 날줄을 이룰 때, 이런 것들은 그물망이 됩니다. 고작 몇몇 씨줄은 그물망이 되지 못합니다. 직조자는 고작 몇몇 씨줄 따위가 그물망이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직조자는 외계 거미이고, 인간은 외계 거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직조자를 좀 배워야 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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