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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타이토 에콜로지>, 21세기의 새로운 자연 개념 본문

생태/문화·기술로서 자연

<타이토 에콜로지>, 21세기의 새로운 자연 개념

OneTiger 2019. 2. 19. 19:09

[눈이 오는 날에는 이런 툰드라 생태계가 어떨지…. 옛날 사람들은 이런 기술적인 자연을 상상하지 못했겠죠.]

 

 

비디오 게임 <타이토 에콜로지>는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사막, 열대 우림, 툰드라, 초원 같은 여러 자연 환경들을 선택하고 자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자연 생태계를 구성하는 세 요소들은 식물상, 동물상, 분해자입니다. 식물상에는 풀들과 나무들이 있고, 동물상에는 크고 작은 곤충들과 초식동물들과 육식동물들이 있고, 분해자에는 버섯들과 이끼들이 있죠. 이런 세 요소들, 식물상, 동물상, 분해자는 서로 커다란 영향을 교환합니다. 풀들과 나무들이 없다면, 초식동물들은 굶주릴 겁니다. 초식동물들이 사라진다면, 육식동물들 역시 굶주리고 사라지겠죠.

 

초식동물들이 너무 많다면, 초식동물들은 풀들과 나무들을 먹어치울지 모릅니다. 육식동물들이 초식동물 개체 숫자를 조절하지 않는다면, 식물상은 무너지겠죠. 동물들에게는 수명이 있고, 결국 동물들은 자연사합니다. 아니면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사체를 남길 겁니다. 사체들은 썩겠죠. 비단 동물들만 아니라 식물들 역시 부산물을 남깁니다. 누군가는 이런 사체들과 부산물을 처리해야 합니다. 분해자, 버섯들은 사체들과 부산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버섯들이 없다면, 사체들과 부산물들은 자연 생태계를 크게 오염시킬 테고, 생태계는 붕괴할 겁니다.

 

 

이런 자연 생태계 속의 상호 작용은 상식입니다. 구태여 생태학을 깊게 공부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이런 상호 작용을 어느 정도 압니다. 생태학자나 생태 전문가, 환경 운동가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 역시 이런 상호 작용을 모르지 않겠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타이토 에콜로지>를 능숙하게 플레이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들이 <타이토 에콜로지>를 아무 어려움 없이 플레이하고 마음대로 자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상식을 안다고 해도, 사람들은 <타이토 에콜로지>를 능숙하게 플레이하지 못할 겁니다. 사람들은 쉽게 오류에 빠지거나 실수할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초식동물들을 너무 많이 배치하거나 버섯들을 빠뜨리거나 생물 다양성을 늘리지 못할지 모릅니다. 상식을 안다는 것. 상식을 활용한다는 것. 양쪽은 서로 다릅니다. 우리가 어떤 상식을 안다고 해도, 그걸 활용할 때,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장벽과 한계에 부딪힐지 모릅니다. 설사 사람들이 <타이토 에콜로지>를 능숙하게 플레이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새로운 감성에 휩싸일 겁니다. <타이토 에콜로지>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자연 다큐멘터리 서적과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에 익숙하다고 해도, 이런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은 새로운 감성을 전달할 겁니다. 사람들이 직접 자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이첼 카슨이 쓴 <센스 오브 원더>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센스 오브 원더>를 읽을 때, 독자들은 식물상과 동물상과 분해자들을 배치하지 못합니다. 독자들은 그저 아름다운 사진을 구경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영화 <살아있는 지구>는 정말 장엄한 풍경들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맥스 극장에서 <살아있는 지구>를 관람한다고 해도, 관객들은 식물상과 동물상과 분해자들을 배치하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지구>가 혹독한 남극과 울창한 열대 우림과 형형색색의 산호초와 드넓은 초원을 보여줄 때, 관객들은 감탄할 겁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감탄한다고 해도, 관객들은 직접 자연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합니다. <센스 오브 원더>와 <살아있는 지구>를 읽고 관람할 때, 독자들과 관객들은 그저 일방적으로 자연 생태계를 바라봐야 할 뿐입니다. 하지만 <타이토 에콜로지>는 다릅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는 직접 자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고 식물상과 동물상과 분해자들을 배치할 수 있죠. 게임 플레이어는 그런 과정에 직접 참가할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할 수 있죠. 이건 색다른 경험일 겁니다. <센스 오브 원더>와 <살아있는 지구>는 절대 이런 색다른 체험을 선사하지 못합니다.

 

 

이건 생태학 서적이나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에 아무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숱한 생태학 서적들과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중요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먹이 그물망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먹이 그물망은 가시적이지 않습니다. 먹이 그물망은 아주 거대한 체계입니다. 비가시적이고 거대한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먹이 그물망을 추상화해야 합니다. 글자(언어)들은 이런 추상화 작업에 능숙합니다. 그래서 책은 추상화에 능숙합니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어떤 현상을 추상화할 수 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생태학 서적은 먹이 그물망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태학 서적은 중요하죠.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는 자연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야생 아무르 호랑이나 야생 장수 거북을 구경하기는 어려습니다. 일반적인 도시 시민들에게 아무르 호랑이나 장수 거북은 비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 (동물원과 수족관이 억압적인 감옥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고 해도) 심지어 동물원과 수족관조차 아무르 호랑이와 장수 거북을 쉽게 전시하지 못하죠. 자연 다큐멘터리는 아무르 호랑이와 장수 거북을 보여줄 수 있고, 사람들은 이 지구에 정말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겠죠.

 

 

그렇다고 해도 <센스 오브 원더>와 <살아있는 지구>를 읽고 관람할 때, 독자들과 관객들은 그저 일방적으로 자연 생태계를 바라볼 뿐입니다. <타이토 에콜로지>를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들은 직접 자연 생태계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자신의 손으로 식물상과 동물상과 분해자들을 배치할 수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이 상호 작용할 때, 게임 플레이어는 기뻐할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자신이 정말 뭔가를 이룩했다고 여길 겁니다. 육식동물들이 너무 많아졌을 때, 자연 생태계가 무너질 때, 게임 플레이어는 아쉬워할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자신이 자연 생태계를 망쳤다고 후회하겠죠. 게임 플레이어는 몇몇 실험적인 상황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동물상 없이 오직 식물상과 분해자들과 수분을 도와주는 곤충들만으로 자연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연 생태계에는 신나게 뛰어다니는 동물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 이런 자연 생태계 역시 번성할 수 있습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는 직접 뭔가를 만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직접 참가하고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주도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중요한 경험이겠죠. <센스 오브 원더>와 <살아있는 지구>와 <타이토 에콜로지>는 서로 다른 것들을 전달합니다. <타이토 에콜로지>는 생태계 조성이라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사실 비디오 게임 이외에 이런 생태계 조성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생태학자들은 자연 생태계를 실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실험에 쉽게 참가하지 못합니다. 생태학자들은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그런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은 자연 생태계를 직접 조성하지 못합니다. 간단한 주말 농장이나 도시 양봉은 '자연 생태계 조성'이라는 행위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농사는 생태계 조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 <행성 감기에 걸리는 않는 법>은 생태학 SF 소설이고 동시에 농사 SF 소설이겠죠.

 

그렇다고 해도 이런 주말 농장과 도시 양봉은 작은 버섯부터 커다란 네메크토사우루스까지 구현하지 못합니다. 분명히 노랗게 반짝이는 예쁜 꿀벌들이 붕붕거리는 장면은 풍성한 생명력을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숱한 양봉가들이 서술한 것처럼, 그런 장면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풍성한 생명력을 느끼고 미소를 지을 수 있겠죠. 하지만 도시 양봉은 순환 체계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타이토 에콜로지> 같은 비디오 게임은 웅장한 자연 생태계를 '함축'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수많은 요소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고, 게임 플레이어는 아주 쉽게 거기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비디오 게임 이외에 다른 매체들에서 이건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자연 생태계를 느끼기 원한다면, <타이토 에콜로지>는 귀중한 경험을 선사할 겁니다. 여러 생태학 서적들과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들과 생태 체험 학습들과 함께 이런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귀중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게임은 별로 길다란 역사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1970년대 환경 운동이 부흥했을 때, 환경 운동가들은 이런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이런 게임은 존재하지 않았죠. 1970년대 녹색당 당원들은 <쉘터 2> 같은 게임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미 고대부터 동서남북에서 수많은 예술가들, 철학자들, 성직자들, 주술사들, 과학자들, 지식인들은 자연을 정의했고 예찬했으나, 그들은 <쉘터 2>를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무리 프란체스코 성인이 동물들에 친숙하다고 해도, 동물들을 돌보는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는 <쉘터 2> 같은 기술적인 자연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겠죠. 그래서 심지어 <쉘터 2>는 '21세기 새로운 자연'이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타이토 에콜로지>는 기술적인 자연입니다. 정보화 기술이 발달한다면, 이런 기술적인 자연들은 훨씬 정교해질 수 있겠죠. 어쩌면 미래에는 훨씬 정교한 기술적인 자연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그런 것을 경험한다면, 사람들은 훨씬 새로운 시각으로 자연 생태계를 바라볼 수 있겠죠. 이런 기술적인 자연은 정말 사이언스 픽션 분위기를 풍기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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