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와 불멸의 초능력자 본문

SF & 판타지/외계인과 이방인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와 불멸의 초능력자

OneTiger 2019. 9. 4. 19:56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창작물을 이야기하는 창작물입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 배우 줄리엣 비노쉬는 배우 마리아 엔더스를 연기합니다. 마리아 엔더스는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 출연합니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영화이고, 이 영화 속에는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가 있습니다. 영화 속에 연극이 있기 때문에, <실스 마리아>는 창작물(연극)을 이야기하는 창작물(영화)입니다. 게다가 비서 발렌틴은 마리아 엔더스를 보조합니다. 발렌틴은 스케쥴을 조절하고, 다른 영화/연극 제작자들과 상의하고, 연습 배역이 되고, 마리아 엔더스의 연기를 평가합니다.


발렌틴이 배우 비서이기 때문에, 발렌틴은 배우와 연기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발렌틴을 연기하고, 배우의 비서로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배우와 연기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발렌틴이 배우와 연기를 이야기할 때, 이런 주장은 크리스틴 스튜어트 본인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발렌틴이 배우를 비판할 때, 이런 비판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사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비꼬거나 배우 개그를 툭툭 던지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조앤 엘리스는 노골적으로 배우 개그를 던집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 클로이 모레츠는 배우 조앤 엘리스를 연기합니다. 조앤 엘리스 역시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 참가합니다. 조앤 엘리스는 주연 배우이고, 마리아 엔더스는 조앤 엘리스를 상대해야 합니다. 젊고 아름다운 배우로서 조앤 엘리스는 온갖 사고들을 몰고 다닙니다. 원숙한 배우로서 마리아 엔더스는 젊은 조앤 엘리스와 온갖 스캔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조앤 엘리스는 초인 영웅 영화에 출현했습니다. 사실 초인 영웅 영화 때문에 조앤 엘리스는 커다란 명성과 인기를 누리는 중입니다. 클로이 모레츠 역시 초인 영웅 영화 <킥 애스: 영웅의 탄생>에 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앤 엘리스는 노골적인 배우 패러디, 배우 개그입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이런 배우 패러디를 감추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이런 요소들(영화 외부적인 요소들)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예술 영화에 가까우나, 잠시 동안 이 영화는 초인 영웅 영화가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이렇게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과감하게 (이른바) 제4의 벽을 넘어갑니다. 이 영화는 닫힌 세계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거침없이 현실로 넘어가고 배우들을 이용해 현실과 만납니다. 가끔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자신을 패러디하는 것 같습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가 보여주는 배우 패러디들은 특이한 사례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창작물이 닫힌 세계를 표현하고 현실로 넘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에 노골적인 배우 패러디들이 없다고 해도, 영화는 오직 닫힌 세계만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비롯해 숱한 창작물들은 현실로 넘어갑니다. 사실 창작물이 현실을 외면하고 싶다고 해도, 이건 불가능할 겁니다. 현실 속에서 인간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빚고, 연기하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기 때문에, 창작물은 절대 현실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황당무계하고 현실 도피적인 창작물을 만든다고 해도, 결국 현실 속에서 인간은 현실 도피적인 창작물을 만듭니다. 현실 도피적인 창작물은 현실 도피적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으나, 이런 수식어와 달리, 현실 도피적인 창작물은 현실에서 도피하지 못합니다. 만약 현실 도피적인 창작물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다면, 어디로 이 창작물이 떠날 수 있나요? 현실 외부에 다른 어떤 시공간이 존재하나요? 현실 외부에 다른 어떤 시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 도피적인 창작물이 현실을 떠날 수 있나요? 만약 현실 도피적인 창작물이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창작물을 신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신은 세계를 창조하고, 세계 외부에서 신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창작물은 현실 외부를 향해 떠나지 못합니다. 창작물은 신이 아니고, 이건 불가능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작가가 창조주라고 말하나, 작가는 세상을 직접 만들지 못합니다. 작가는 현실을 모방하고 반영해야 합니다. 아무리 창작물이 현실 도피적이라고 해도, 현실 속에서 인간은 (현실 도피적인) 창작물을 만들고 소비합니다. 현실 도피적인 창작물을 만들고 소비하는 행위 역시 현실에 종속됩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그저 노골적으로 이런 사실을 강조할 뿐입니다. 초인 영화 속에서 조앤 엘리스는 초인 영웅을 연기합니다. 조앤 엘리스(가 연기하는 초인 영웅)에게는 초능력이 있습니다. 마리아 엔더스는 '초능력'이라는 단어에 질색합니다.


원숙한 배우로서 마리아 엔더스는 초능력이 유치찬란한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발렌틴은 초능력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언급합니다. 비록 현실에 초능력자가 없다고 해도, 초능력은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 어떤 SF 감독은 돌연변이 초인 설정을 좋아합니다. 돌연변이 초인이 장수하기 때문입니다. SF 감독은 시대를 초월하고 싶다고 욕망을 품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돌연변이 초인 설정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마리아 엔더스는 인간이 초월적인 감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반문합니다. 마리아 엔더스는 원숙한 배우이나, 마리아에게는 젊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복잡한 심정으로 조앤 엘리스를 바라봅니다.



발렌틴 역시 젊습니다. 조앤 엘리스와 달리, 발렌틴은 스캔들 덩어리가 아니나, 발렌틴 역시 젊습니다. 마리아 엔더스에게 조앤 엘리스와 발렌틴은 잃어버린 유산과 비슷합니다. 아무리 마리아 엔더스가 노력한다고 해도, 마리아는 젊음을 다시 되찾지 못합니다. 젊음은 지나갔고, 마리아는 그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언젠가 발렌틴과 조앤 역시 늙을 테고, 마리아 엔더스가 그러는 것처럼, 발렌틴과 조앤 역시 젊음을 복잡하게 바라볼지 모릅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SF 영화가 아닙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그저 초인 영웅(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이용해 불사와 초월적인 감성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제(불사와 어마어마한 장수)는 소설 <동굴의 여왕> 및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비슷합니다. <동굴의 여왕>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사변 소설, 판타지 소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굴의 여왕>이 초기 비경 탐험 소설이고 사이언티픽 로망스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소설에서 아샤와 도리언 그레이는 장수를 누립니다. 이건 축복 같습니다. 하지만 장수가 정말 축복인가요? 유한한 인간이 장수를 누린다면, 여기에 아무 문제가 없나요? 오스카 와일드는 영원한 미학을 추구하기 원했으나, 오스카 와일드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는 영원한 미학을 찬양하고 동시에 영원한 미학이 불행을 부른다고 말합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19세기 사변 소설이나, 20세기 사이언스 픽션들 역시 이런 주제를 놓치지 않습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가 초인 영웅을 이용해 장수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슈퍼맨은 장수가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지구에서 슈퍼맨은 장수합니다. 하지만 슈퍼맨이 장수하기 때문에, 슈퍼맨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야 합니다. 로이스 레인이 늙어죽는다고 해도, 슈퍼맨은 생생하게 살아갈 겁니다. 이게 불행인가요, 아니면 행복한 장수인가요?


중세 판타지 소설 <반지 전쟁> 역시 비슷한 주제를 말합니다. 엘프와 인간이 사랑한다면, 엘프는 불행해져야 합니다. 엘프가 장수하고 인간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엘프는 인간 연인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합니다. 엘프와 인간이 사랑한다면, 이런 사랑에 가치가 있을까요? 엘프가 장수를 버려야 하나요? 소설 <로도스도 전기>에서 디드리트와 판은 다정한 연인이나, 판이 늙는 동안 디드리트는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할 겁니다. 이게 행복한 사랑인가요?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엘프를 사랑할 수 있나요?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는 뾰족귀 엘프 아가씨가 없으나, 이 영화는 비슷하게 물을 수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돌연변이를 연기할 수 있나요?



소설 <동굴의 여왕>과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만화 <슈퍼맨> 시리즈와 소설 <반지 전쟁>과 소설 <로도스도 전기>는 판타지 및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이것들은 사변 장르(speculative fiction)입니다. 사변 장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반면,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판타지 및 사이언스 픽션이 아닙니다. 이 영화에는 초인, 돌연변이, 엘프, 외계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동굴의 여왕>과 <슈퍼맨> 시리즈와 <로도스도 전기>와 비슷한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로도스도 전기>를 쓰고 읽기 때문입니다.


결국 창작물은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현실 속에서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와 <로도스도 전기>는 존재합니다. 클로이 모레츠(실존 인물 배우)와 디드리트(판타지 소설 등장인물)는 다르나, 그렇다고 해도 현실 속에서 똑같이 클로이 모레츠와 디드리트(가 나오는 중세 판타지 소설)는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판타지 및 사이언스 픽션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현실을 떠나기 위한 명분은 없을 겁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