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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기업들이 진짜 좋은 대안일 수 있는가? 본문

생태/환경 보호

친환경 기업들이 진짜 좋은 대안일 수 있는가?

OneTiger 2023. 8. 12. 08:30

[이 포스터처럼, 지구 온난화는 커다란 화제입니다.]



많은 남한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합니다. 남한 사회에서 이순신은 위인입니다. 이 위인은 조선 사회에 속합니다. 조선 사회는 군주 제도, 신분 제도였습니다. 이순신이 위인이기 때문에, 이 위인이 군주 제도, 신분 제도에 속하기 때문에, 군주 제도, 신분 제도가 옳은가요? 많은 남한 사람들은 고개들을 저을 겁니다. 아무리 이순신이 위인이라고 해도, 이 사람들은 남한 사회가 군주 제도, 신분 제도가 되기 원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이 사람들이 이순신을 존경한다고 해도, 이순신은 사회 제도(구조)가 아닙니다. 이순신은 그저 개인에 불과합니다. 개인과 사회 제도는 똑같지 않습니다.

 

개인은 사회 제도를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비단 이순신만 아니라 다른 위인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조선 사회는 비단 이순신만 아니라 다른 위인들 역시 자랑합니다. 아무리 조선 사회가 위인들을 자랑한다고 해도, 조선 사회는 가부장 제도였습니다. 이 사회에서 여자들은 공식적인 지식인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사회와 달리, 남한 사회에서 여자들은 공식적인 지식인들이 될 수 있습니다. 철학자부터 과학자까지, 남한 사회에서 여자 지식인들은 가능합니다. 조선 사회가 위인들을 자랑하기 때문에, 위인들 덕분에, 가부장 제도가 타당한가요?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이순신이 위인이라고 해도, 이 위인은 가부장 제도가 타당하다고 증명하지 않습니다. 이순신은 가부장 제도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만약 남한에서 여자들이 공식적인 지식인들이 되지 못한다면, 만약 남한에서 여자들이 대학교들에 입학하지 못한다면, 많은 사람(여자)들은 반발할 겁니다. 이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처럼, 이순신(개인)은 가부장 제도(사회 구조)를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개인과 사회 제도는 다른 위상입니다. 특히, 개인보다 사회 제도는 우선합니다. 사회에서 개인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가부장 제도처럼, 우리가 어떤 문제들을 파악할 때, 이 관계는 중요할 수 있습니다.

 

2022년 9월 24일. 많은 사람들은 <기후 정의 행진>에 참여했습니다. 이건 지구 온난화가 커다란 화제라고 증명합니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이 행진에 참여했을 겁니다. 어쩌면, 2023년 9월,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은 <기후 정의 행진>에 참여할 겁니다. 어쩌면,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이 행진에 참여할 겁니다. 어쩌면, 비단 2023년만 아니라 2024년 행진 역시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니, 지구 온난화가 사라지기 전까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기후 정의 행진>에 참여할 겁니다. <기후 정의 행진>처럼, 21세기 초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환경 운동을 편듭니다.



비단 <기후 정의 행진>만 아니라 다른 사례들 역시 지구 온난화가 커다란 화제라고 증명합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이 행진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사례들은 많은 사람들이 환경 운동을 편든다고 보여줍니다. 이 <프레시안> 사진(링크)은 '멸종'을 언급합니다. 이건 지구 생물권이 멸종한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건 인류 문명이 무너진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 사진처럼, 생태학자들은 대규모 멸종을 경고합니다. 만약 생물 다양성이 커다란 위기에 빠진다면, 인류 문명은 안전하지 않을 겁니다. 지구 생물권처럼, 인간들은 커다란 위기에 빠질 겁니다. 이건 대규모 재앙입니다.

 

대규모 멸종은 대규모 재앙입니다. 심지어 인류 문명조차 안전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인류 문명이 무너진다고 예상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구 온난화가 훨씬 위험한 수준을 넘어선다고 해도, 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현실이 된다고 예상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후 소설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입니다. 이 소설들은 지구 온난화가 인류 문명을 파괴한다고 묘사합니다. 이 소설들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현실이 될까요? 이 소설들이 미래를 보여주나요? 저는 고개를 젓기 원합니다. 저처럼, 어떤 사람들은 고개들을 젓는지 모릅니다. 기후 지옥과 상관없이, 문명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인류 문명은 아주 많은 것들, 아주 놀라운 것들을 이룩했습니다. 고층 건물부터 대규모 발전소까지, 아주 많은 것들, 아주 놀라운 것들은 인류 문명을 뒷받침합니다. 이것들 덕분에, 비록 화끈한 기후 지옥이 찾아온다고 해도, 인류 문명은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아, 물론, 저는 미래를 예언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들, 놀라운 것들이 뒷받침한다고 해도, 어쩌면 기후 지옥은 인류 문명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후 소설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어쩌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현실일 수 있습니다. 아무도 구체적인 미래를 예언하지 못합니다.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구 온난화에게는 인류 문명을 무너뜨리기 위한 파괴적인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가능성 때문에, 인류 문명은 기후 지옥을 막아야 합니다. 아무리 인류 문명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만약 기후 지옥이 현실이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너무 커다란 위기에 빠질 겁니다. 이미 기후 피해자들은 현실입니다. 이미 몇 억 사람들은 기후 피해자들입니다. 만약 기후 지옥이 현실이 된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은 기후 피해자들일 겁니다. 이 커다란 위기를 막기 위해 인류 문명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건 진지한 화제입니다.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환경 운동을 편듭니다.



◈ 친환경 기업들이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게 가능한가?

인류 문명이 무너지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진지한 화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환경 운동을 편들기 때문에, 어떤 영리 기업들은 친환경 기업들이 되기 원합니다. 이 기업들은 온실 가스들이 감소하기 원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환경 운동을 편든다면, 이 사람들은 친환경 기업들을 환영할 겁니다. 분명히, 친환경 기업들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분명히, 친환경 기업들은 증가해야 합니다. 만약 모~든 영리 기업이 친환경 기업들이라면, 인류 문명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겁니다. 문제는 사회 구조입니다. 아무리 이순신이 위인이라고 해도, 이 위인(개인)은 가부장 제도(사회 구조)를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이순신이 위인이라고 해도, 조선 사회에서 여자들은 공식적인 지식인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건 타당하지 않습니다. 가부장 제도는 부정적인 것입니다. 이순신(개인)이 가부장 제도(사회 구조)를 정당화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회 제도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구 온난화는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떤 기업들이 친환경 기업들이라고 해도, 이 기업들은 영리 기업에 속합니다. 영리 기업은 자본주의에게 기반합니다. 자본주의는 사회 제도입니다. 영리 기업은 개별적인 사례입니다. 그 자체로서, 영리 기업은 사회 제도가 아닙니다. 롯데리아는 사회 제도가 아닙니다. 유니클로, 디즈니는 사회 제도가 아닙니다.



이순신이 개인인 것처럼, 롯데리아는 개별적인 사례입니다. 가부장 제도가 사회 제도인 것처럼, 자본주의는 사회 제도입니다. 개인보다 사회가 우선하는 것처럼, (개별적인) 기업보다 자본주의(제도)는 우선합니다. 자본주의에게 훨씬 많은 이윤들은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언제나 이건 훨씬 많은 이윤들을 축적하기 원합니다. 이윤 극대화 없이, 이건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윤 극대화 없이,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 자체로서, 자본주의는 이윤 극대화와 다르지 않습니다. 훨씬 많은 이윤들을 축적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훨씬 많은 상품들을 판매하기 원합니다. 자본주의는 이것을 멈추지 못합니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1987년, 예술가 바버라 크루거는 말했습니다. 이 문장처럼, 과도한 소비는 지배적인 관념이 되었습니다. 환경 운동은 과도한 소비가 환경 오염이라고 비판합니다. 이것 때문에, 지구 온난화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만약 이게 지배적인 관념이 아니었다면, 극단적인 기후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라, 왜 과도한 소비가 지배적인 관념이 되었나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답은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과도한 소비는 지배적인 관념이 됩니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많은 상품들을 소비한다면, 자본주의는 많은 이윤들을 축적할 겁니다.



자본주의가 많은 이윤들을 축적하기 때문에, 이윤 극대화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도한 소비는 지배적인 관념입니다. 과도한 소비가 지구 온난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는 자본주의 문제입니다. 지구 온난화가 자본주의 문제이기 때문에, 만약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지구 온난화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동안, 과도한 소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과도한 소비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게 지구 온난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어떤 영리 기업들이 친환경 기업들이라고 해도, 지구 온난화, 이 파괴적인 재앙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떤 영리 기업들이 친환경 기업들이라고 해도, 이 기업들은 사회 제도가 아닙니다. 롯데리아가 사회 제도가 아닌 것처럼, 유니클로, 디즈니가 사회 제도가 아닌 것처럼, 친환경 기업들은 사회 제도가 아닙니다. 이 기업들은 자본주의에게 기반합니다. 자본주의는 사회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훨씬 많은 이윤들에 집착합니다. 이윤 극대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 제도에서 과도한 소비는 지배적인 관념이 됩니다. 비록 지구 온난화가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많은 상품들을 소비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이건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과도한 소비를 멈추지 못합니다.



친환경 기업들이 자본주의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과도한 소비를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과도한 소비가 극단적인 기후들로 이어지기 때문에, 친환경 기업들은 좋은 대안이 아닙니다. 친환경 기업들은 그저 임시적인 대안에 불과합니다. 이건 친환경 기업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친환경 기업들이 증가한다면, 이건 반가운 소식일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친환경 기업들이 증가하기 원합니다. 아무리 친환경 기업들이 증가한다고 해도, 아무리 이게 반가운 소식이라고 해도, 이 기업들은 개별적인 사례들입니다. 이 기업들은 제도가 아닙니다. 이 기업들보다 자본주의는 제도입니다.

 

개인보다 사회는 우선합니다. 개별적인 사례들보다 사회 제도는 우선합니다. 아무리 친환경 기업들이 증가한다고 해도, 이 기업들보다 자본주의는 우선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이 기업들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떤 협동 조합들은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원합니다. 어떤 노동 조합들은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원합니다. 아무리 이 조합들이 저항하기 원한다고 해도, 이 조합들보다 자본주의(구조)가 우선하기 때문에, 아…, 자본주의에 저항하기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본주의에서 노동 조합들조차 벗어나지 못합니다. 친환경 기업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이 기업들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 친환경 기업들보다 과도한 소비는 우선한다.

자본주의가 과도한 소비이기 때문에, 아무리 친환경 기업들이 증가한다고 해도, 이 기업들보다 과도한 소비는 우선합니다. 과도한 소비가 우선하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친환경은 또 다른 상품이 됩니다. 자본주의가 훨씬 많은 이윤들에 집착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많은 것들이 상품들이 되기 원합니다. 많은 것들이 상품들이 되기 때문에, 친환경은 상품이 됩니다. 상품은 이윤을 위한 것입니다. 친환경이 상품이 되기 때문에, 친환경은 이윤을 위한 것입니다. 더 이상, 친환경에게 자연 환경은 중요한 목적이 아닙니다. 자연 환경보다 많은 이윤들은 훨씬 중요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친환경은 상품이 됩니다. 상품이 이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상품으로서, 친환경은 이윤을 위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친환경에게 자연 환경보다 많은 이윤들은 훨씬 중요한 목적이 됩니다. 비록 어떤 것들이 자연 환경을 파괴한다고 해도, 만약 이것들이 많은 이윤들을 축적한다면, 이것들은 친환경 상품들일 수 있습니다. 울창한 삼림을 소유하기 위해 영리 기업은 원주민들을 추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영리 기업이 원주민들을 추방한다면, 아무리 이 기업이 울창한 삼림을 소유한다고 해도, 이게 친환경인가요? 환경 운동은 이 사례를 녹색 제국주의(녹색 식민주의)라고 부릅니다.



녹색 제국주의(녹색 식민주의)처럼, 자본주의에서 친환경은 그저 많은 이윤들을 위한 도구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만약 친환경이 제국주의라면, 이건 너무 어처구니 없는 모순일 겁니다. 자본주의에서 이 모순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훨씬 많은 이윤들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환경 기업들은 그저 임시적인 대안에 불과합니다. 이 기업들은 좋은 대안이 아닙니다. 만약 환경 운동이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원한다면, 환경 운동은 자본주의를 타파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과도한 소비이기 때문에, 자연 환경과 자본주의는 절대, 절대 공존하지 못합니다. 이건 사라져야 합니다.

 

지구 생물권을 위해 자본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환경 운동은 자본주의를 타파해야 합니다. 어떤 활동가들은 이게 너무 부담스럽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이게 너무 지배적인 경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타파하기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만약 이게 너무 부담스럽다면, 적어도, 자본주의는 약해져야 합니다. 만약 환경 운동이 자본주의를 타파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환경 운동은 자본주의를 통제해야 합니다. 높은 복지 수준, 높은 성 평등 수준은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위한 보편적인 대안입니다. 환경 운동은 높은 복지, 높은 성 평등 수준을 지지해야 합니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그저 시장 경제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서구) 자본주의와 (서구) 제국주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북한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북한과 미국. 어떤 쪽이 훨씬 많은 온실 가스들을 배출하나요? 대답은 전자보다 후자입니다. 북한보다 미국은 훨씬 많은 온실 가스들을 배출합니다. 아니, 북한보다 미국은 훠어어어어얼씨이인 많은 온실 가스들을 배출합니다. 지구 대기 중에서 온실 가스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극단적인 기후들은 발생합니다. 이건 미국 문제입니다.

 

북한과 미국. 어떤 쪽이 훨씬 과도한 소비인가요? 대답은 전자보다 후자입니다. 북한보다 미국은 훨씬 과도한 소비입니다. 아니, 북한보다 미국은 훠어어어얼씨이인 과도한 소비입니다. 과도한 소비 때문에, 지구 온난화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극단적인 기후들은 발생합니다. 이건 미국 문제입니다. 이 행성급 기후 재앙은 북한 문제보다 미국 문제입니다. 비록 이게 미국 문제라고 해도, 많은 언론들은 이것을 보도하지 않습니다. 많은 언론들은 북한보다 미국이 파괴적인 기후 재앙이라고 보도하지 않습니다. 어라, 이건 너무 이상합니다.



지구 온난화는 전대미문의 지질학적인 행성급 생태학 재앙입니다. 이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 문명은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해야 합니다. 북한보다 미국은 위험한 온실 가스들, 과도한 소비, 지구 온난화입니다. 많은 언론들은 북한보다 미국이 생태학 재앙이라고 보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언론들은 이것을 보도하지 않습니다. 왜 많은 언론들이 이것을 보도하지 않나요? 서구 제국주의가 지배적인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서구에서 대규모 산업 자본주의는 나타났습니다. 자본주의가 이윤들을 축적하는 동안, 19세기, 서구는 식민지들을 수탈했습니다. 아아…, 이건 너무 끔찍했습니다.

 

아아…, 비록 식민지 수탈이 너무 끔찍했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서구가 식민지들을 수탈했고 많은 이득들을 얻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이것에게 기생했습니다. 19세기, 서구 자본주의와 서구 제국주의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20세기 초반, 여전히 서구 자본주의는 서구 제국주의였습니다. 20세기 중반, 여전히 서구 자본주의는 서구 제국주의였습니다.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가 확장했던 것처럼, 군사적인 침략은 경제적인 종속이 되었습니다. 비록 군사적인 침략이 경제적인 종속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이건 제국주의입니다. 네, 맞습니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입니다.



▣ 기후 지옥은 자본주의 문제이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세계화 자본주의는 지배적인 경제입니다. 서구 제국주의가 자본주의를 확장했기 때문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이기 때문에, 서구 제국주의는 지배적인 제도입니다. 서구 제국주의가 지배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지배적인 관념은 서구 제국주의를 떠받듭니다. 문화, 예술, 교육, 종교, 많은 것들은 서구 제국주의를 떠받듭니다. 언론은 다르지 않습니다. 지배적인 관념이 서구 제국주의를 떠받들기 때문에, 많은 언론들은 서구 제국주의를 떠받듭니다. 미국은 서구 제국주의입니다. 이 언론들이 서구 제국주의를 떠받들기 때문에, 이 언론들은 미국을 편듭니다.

 

북한과 서구 제국주의는 대립합니다. 적어도, 서구 제국주의에게 북한은 자유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서구 제국주의가 북한을 비난하기 원하기 때문에, 많은 언론들은 북한을 모욕합니다. 비록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실험한다고 해도, 이건 전대미문의 행성급 생태학 재앙이 아닙니다. 비록 북한이 행성급 재앙이 아니라고 해도, 북한을 비난하기 위해 많은 언론들은 게거품들을 물고 난리법석들을 부립니다. 서구 제국주의가 지배적인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지배적인 관념이 서구 제국주의를 떠받들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처럼, 자본주의는 그저 과도한 소비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이건 북한이 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북한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북한이 나쁘다고 해도, 북한보다 미국은 훠어어어얼씨이인 나쁩니다. 미국이 전대미문의 행성급 생태학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북한이 악당이라고 해도, 북한과 미국은 똑같은 악당이 아닙니다. 북한보다 미국은 훠어어어얼씨이인 위험한 악당입니다. 지구 온난화가 인류 문명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기후 지옥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훠어어어얼씨이인 위험한 악당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적어도, 이건 약해져야 합니다. 친환경 기업들은 자본주의를 타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친환경 기업들이 증가한다고 해도, 이 기업들은 자본주의에게 기반합니다. 이 기업들은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약해지지 않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기후 정의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환경 운동이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원한다면, 만약 환경 운동이 기후 불평등을 해결하기 원한다면, 환경 운동과 자본주의는 공존하지 못할 겁니다. 친환경 기업들이 자본주의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환경 운동에게 친환경 기업들은 좋은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이 기업들은 임시적인 대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핵 융합 동력을 기대하는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처럼, 개인적으로, 저는 핵 융합 동력을 기대합니다. 저는 이 놀라운 기술이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핵 융합 동력이 가능하다면, 어쩌면, 탄소 포집 기술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만약 탄소 포집 기술이 가능하다면, 더 이상, 지구 온난화는 위험한 문제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핵 융합 동력이 좋은 대안이라고 해도, 언제 이게 가능한가요? 과학자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핵 융합 동력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핵 융합 동력이 기후 정의를 실천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 <924 기후 정의 행진> 출처:
http://action4climatejustic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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