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체인징 타이드>와 (유일한) 문명의 혜택 본문
[게임 플레이어는 주체적인 선장이 되고 (유일한) 문명의 혜택을 조종합니다.]
스마트폰은 편리합니다. 텔레비전은 편리합니다. 전철은 편리합니다. 로봇 청소기는 편리합니다. 컨베이어 벨트는 편리합니다. 스마트폰부터 컨베이어 벨트까지, 이것들은 이른바 문명의 혜택입니다. 문명의 혜택은 비단 이것들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 역시 포함합니다. 문명의 혜택은 의료, 통신, 건설, 교통, 정보, 다른 많은 분야들에게 커다란 영향들을 미칩니다. 문명의 혜택은 우리를 둘러쌌습니다. 문명의 혜택 덕분에, 편리하게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명의 혜택은 비단 편리할 뿐만 아니라 든든하기도 합니다. 과거와 달리, 2022년 오늘날, 문명은 많은 의약들을 연구합니다.
비록 지금 당장 의학이 코비드 19를 끝내지 못한다고 해도, 분명히 21세기 초반 의학은 많은 의약들을 연구합니다. 과거와 달리, 의학은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사나운 야수들을 두려워했으나, 2022년 오늘날, 더 이상 이른바 문명인들은 사나운 야수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문명인들은 호랑이가 시민을 잡아먹는다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호랑이는 멸종 위기 동물이기조차 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사나운 야수들을 멸종 위기 동물이라고 걱정하지 않았으나, 이른바 문명인들은 멸종 위기 동물을 걱정합니다. 문명의 헤택은 아주 든든한 방패입니다.
고대 선박에게 대양은 너무 험준한 장벽이었습니다. 고대에서 대양을 건너기는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콘티키 항해는 고대 선박 역시 대양을 건널 수 있다고 증명하나, 아무리 콘티키 항해가 대단하다고 해도, 고대 선박에게 대양은 너무 험준했을 겁니다. 고대 선박과 달리, 21세기 초반 오늘날, 많은 선박들은 대양을 항해합니다. 너무 많은 선박들이 대양을 항해하기 때문에, 해양 오염들은 너무 심각합니다. 너무 많은 선박들은 해양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고 해양 생태계를 교란합니다. 생물 다양성이 줄어들고 생태계가 망가지는 것처럼, 더 이상 문명의 혜택은 대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더 이상 많은 선박들은 대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선박들은 북극, 남극조차 진입할 수 있습니다. 쇄빙선들, 잠수함들은 극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비록 대양이 너무 거칠하다고 해도, 비록 극지가 너무 혹독하다고 해도, 문명의 혜택은 너무 거친 대양, 너무 혹독한 극지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문명의 혜택은 위험한 자연에 도전합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문명이 자연을 정복한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이건 절대적인 문명이 자연을 압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코비드 19, 세계적인 전염병은 문명이 위험한 자연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증명합니다.
비단 코비드 19만 아니라 기후 변화 역시 똑같습니다. 아무리 문명이 노력한다고 해도, 자연 속에서 문명은 살아갑니다. 자연 없이, 문명은 절대 살아가지 못합니다. 자연에서 문명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2022년 문명의 혜택이 대단하다고 해도, 문명은 자연에게 의지합니다. 기후 변화는 위대한 자연이 문명의 혜택을 압도한다고 증명합니다. 문명보다 자연은 초월적입니다. 자연이 초월적이기 때문에, 자연은 신(god)과 비슷합니다. 자연에게는 신성이 있습니다. (자연에게 신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생태학 연구원들이 되는지 모릅니다.) 적어도 문명보다 자연은 원초적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문명보다 자연이 원초적이라고 해도, 19세기 근대 이후, 분명히 문명의 혜택은 진보했습니다. 문명의 혜택이 진보했기 때문에, 문명의 혜택은 든든한 방패가 되었습니다. 만약 2022년 문명이 무너진다면, 만약 문명의 혜택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든든한 방패를 잃을 겁니다. 인류가 든든한 방패를 잃기 때문에, 많은 위험들은 인류를 노릴 겁니다. 많은 위험들이 인류를 노리기 때문에, 인류는 아비규환에 빠질 겁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문명이 무너진다고 이야기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아비규환은 주된 소재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아비규환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비규환을 묘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문명이 무너졌기 때문에, 인간은 많은 장벽들에 부딪힙니다. 문명의 혜택 없이, 어떻게 험준한 대양을 건널 수 있나요? 문명의 혜택 없이, 어떻게 혹독한 극지를 건널 수 있나요? 문명의 혜택 없이, 어떻게 해저를 건널 수 있나요? 그래서 <파: 체인징 타이드>는 인상적입니다. <파: 체인징 타이드>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이 비디오 게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다른 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처럼, 인류 문명은 무너졌습니다. 인류 문명이 무너졌기 때문에, 문명의 혜택은 인류를 둘러싸지 않습니다. 하지만 게임 주인공은 예외입니다.
게임 주인공은 육중한 선박을 조종합니다. 세계 설정이 스팀펑크에 가깝기 때문에, 이 선박 역시 진한 스팀펑크 분위기를 풍깁니다. 게임 주인공은 육중한 선박을 조종하고 험중한 대양, 혹독한 극지, 어두운 해저를 건넙니다. 전반적으로 <파: 체인징 타이드>는 스팀펑크 선박 항해에 초점을 맞춥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체인징 타이드>는 다른 것들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선박 항해는 (거의) 유일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체인징 타이드>는 사이드 스크롤링 게임입니다. 수평적으로 선박이 항해하기 때문에, 형식(사이드 스크롤링)은 내용(수평적인 항해)을 강조합니다.
잠수함이 심해로 향하는 것처럼, 이따금 스팀펑크 선박은 해저를 건넙니다. 선박이 해저를 건너는 동안, 수직적인 깊이를 연출하기 위해 사이드 스크롤링에서 게임 형식은 벗어납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선박 항해는 수평적입니다. 사이드 스크롤링이 수평적인 움직임을 강조하기 때문에, 형식(사이드 스크롤링)은 내용(수평적인 항해)을 강조합니다. <파: 체인징 타이드>는 <파: 론 세일>의 속편입니다. <파: 론 세일>에서 주연 교통 수단은 선박보다 차량이었습니다. 스팀펑크 차량이 주연이었기 때문에, 스팀펑크 차량이 잠수하지 않기 때문에, <론 세일>은 수직적인 깊이를 연출하지 않았습니다.
차량과 달리, 선박이 잠수하기 때문에, <론 세일>보다 <체인징 타이드>는 수직적인 깊이를 연출합니다. 하지만 <론 세일>처럼, 여전히 <체인징 타이드>에서 수평적인 움직임은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심지어 스팀펑크 선박이 잠수할 때조차, 수평적인 움직임은 가장 커다란 비중을 잃지 않습니다. 사이드 스크롤링이 수평적인 항해를 강조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다른 것들보다 스팀펑크 선박 항해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수평적으로, 스팀펑크 선박은 항해하고, 항해하고, 항해하고, 다시 항해합니다. 수평적인 항해들이 반복하기 때문에, 어쩌면 게임 형식은 다소 지루한지 모릅니다.
[육중한 스팀펑크 선박 덕분에, 게임 주인공은 위험한 자연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 주인공은 한가한 선장이 아닙니다. 게임 주인공은 연료들을 수집하고, 엔진을 조작하고, 커다란 돛을 펴고, 주변을 탐험하고, 과열된 엔진을 냉각하고, 다른 여러 가지를 합니다. 비록 게임 형식이 반복적이라고 해도, 게임 주인공이 많은 것들을 하기 때문에, <체인징 타이드>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스팀펑크 선박을 조종하기 위해 게임 주인공이 바쁜 선장이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주체적인 선장이 될 수 있습니다. 스팀펑크 선박은 자동화 기계 선박이 아닙니다. 커다란 돛부터 과열된 엔진까지, 스팀펑크 선박은 능동적인 개입들을 요구합니다. 능동적으로 게임 플레이어는 개입합니다.
능동적으로 게임 플레이어가 스팀펑크 선박에게 개입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주체적인 선장일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주체적이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는 지루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주연 선박이 자동화 기계 선박이었다면, 자동화 기계 선박이 능동적인 개입들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주체적인 선장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주체적인 선장이 아니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체인징 타이드>를 다소 지루하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주연 선박이 스팀펑크 선박이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게임 플레이어는 개입하고, <체인징 타이드>는 주체적인 선장을 연출합니다.
다른 여러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처럼, <체인징 타이드>는 황량하고 건조합니다. 인류 문명이 무너졌기 때문에, 심지어 <체인징 타이드>는 묵직하고 암울하기조차 합니다. 사방은 폐허입니다. 온갖 폐허들은 배경 무대를 장식합니다. <체인징 타이드>는 오직 폐허, 폐허, 폐허, 폐허만 보여줍니다. 아무리 몇몇 지역이 예외라고 해도, 아무리 어떤 지역이 아주 아주 예외라고 해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쓸쓸한 폐허들, 외로운 죽음들, 삭막하게 부서진 것들입니다. 문명의 혜택이 사라졌기 때문에, 험준한 대양을 건너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문명의 혜택이 사라졌기 때문에, 혹독한 극지를 건너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문명의 혜택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두운 해저를 건너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다행히 게임 주인공은 육중한 스팀펑크 선박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육중한 스팀펑크 선박은 험중한 대양을 건너고, 혹독한 극지를 건너고, 어두운 해저를 건넙니다. 스팀펑크 선박 덕분에, 게임 주인공은 위험한 자연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비록 게임 주인공이 위험한 자연을 정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게임 주인공은 도전할 수 있습니다. 비록 거친 파도들이 덮친다고 해도, 비록 단단한 빙하들이 둘러싼다고 해도, 비록 벼락이 내리꽂는다고 해도, 육중한 선박 속에서 게임 주인공은 안전합니다. 오오~, 스팀펑크 선박은 문명의 혜택입니다.
심지어 선박 내부에서 게임 주인공은 울창한(?) 식물들조차 키울 수 있습니다. 비록 대부분 장소들이 쓸쓸한 폐허들, 외로운 죽음들, 삭막한 부서진 것들이라고 해도, 선박 내부에서 울창한 녹색 식물들은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선박 내부에서 울창한 식물들이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처럼, 오오~, 스팀펑크 선박은 문명의 혜택입니다. 무너진 세계, 암울한 세계, 황량한 세계에서 스팀펑크 선박은 유일한 문명의 혜택에 가깝습니다. 대부분 많은 것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는 주연 선박이 유일한 문명의 혜택이라고 강조합니다. 만약 문명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이 감성은 바뀌었을 겁니다.
만약 <체인징 타이드>가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니었다면, 주연 선박은 유일한 문명의 혜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대부분 장소들이 쓸쓸한 폐허들이기 때문에,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문명의 혜택을 소중하다고 강조합니다. 수분이 충분할 때, 우리는 수분을 소중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수분이 너무 부족할 때, 심지어 우리는 물 한 방울조차 소중하다고 느낍니다. 가뭄이 물 한 방울을 소중하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주연 선박, 문명의 혜택을 소중하다고 강조합니다. 게임 제작자들이 이것을 의도했나요? 주연 선박, 문명의 혜택을 강조하기 위해 게임 제작자들이 무너진 문명을 설정했나요?
어쩌면 게임 제작자들은 의도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게임 제작자들은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비록 게임 제작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유일한) 문명의 혜택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주체적인 선장입니다. 주체적인 선장은 (유일한) 문명의 혜택을 조종합니다. 주체적인 선장이 (유일한) 문명의 혜택을 조종하기 때문에, <체인징 타이드>는 인상적입니다. 비단 <체인징 타이드>만 아니라 <론 세일>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론 세일>에서 주연 교통 수단은 차량이었습니다. 차량보다 선박은 인상적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육상 동물입니다.
인간이 육상 동물이기 때문에, 바다는 낯선 환경입니다. 바다가 낯선 환경이고, 스팀펑크 선박이 바다에 도전하기 때문에, <론 세일>보다 <체인징 타이드>는 훨씬 인상적입니다. 이건 모든 게임 플레이어가 <체인징 타이드>를 훨씬 인상적이라고 느낀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론 세일>을 훨씬 인상적이라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취향은 주관적입니다. 취향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취향에게는 정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인간은 육상 동물입니다. 인간, 육상 동물에게 육지보다 바다는 훨씬 낯선 환경입니다. <론 세일>과 달리, <체인징 타이드>는 선박을 보여줍니다.
<체인징 타이드>는 구체적인 세계 설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체인징 타이드>는 여러 단서들을 암시하나, 이 단서들은 구체적인 설명들이 아닙니다. 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왜 문명이 무너졌고 많은 것들이 폐허가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왜 인류 문명이 무너졌는지 추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세계 시장 경제는 이유인지 모릅니다. 여러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세계 시장 경제가 문명을 무너뜨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우파 경제학자들이 자랑(?)하는 것처럼, 시장 경제는 무한 경쟁입니다. 시장 경제는 승자와 패자를 구분합니다. 승자는 패자를 짓밟고, 패자는 사라집니다.
대형 기업이 골목 상인들을 몰아내는 것처럼, 시장 경제에서 무한 경쟁은 일상입니다. 시장 경제가 무한 경쟁이기 때문에, 세계 시장 경제는 세계적인 경쟁을 유발합니다. 세계적인 경쟁에서 거대 권력들은 협력, 연대, 동정을 무시합니다. 거대 권력들은 경쟁을 멈추지 않습니다. 세계 시장 경제는 무한한 싸움입니다. 협력, 연대, 동정이 사라지고, 착취, 파괴, 수탈이 지배하기 때문에, 인류 문명은 무너집니다. 기후 변화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세계 시장 경제는 에너지 소비 경쟁을 부추깁니다. 승자가 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대형 기업들은 엄청난 에너지들을 낭비합니다. 시장 경제는 오염입니다.
기후 변화는 전대미문의 생태학 재앙입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원한다면, 인류 문명은 시장 경제를 타파해야 합니다. 적어도, 아주 강력하게, 인류 문명은 시장 경제를 통제해야 합니다. 우파 지식인들은 시장 경제를 옳다고 부르짖으나, 우파 지식인들은 틀렸습니다. 전대미문의 생태학 재앙은 우파 지식인들이 틀렸다고 증명합니다. 명명백백하게, 우파 지식인들은 틀렸습니다. 기후 변화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비록 제가 우파 지식인들이 틀렸다고 반복한다고 해도, 이건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체인징 타이드> 역시 비슷한지 모릅니다. 문제는 자본주의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그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합니다. 게임 제작자들이 시장 경제를 의도했나요? 아니, 아무리 여러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이 시장 경제를 지적한다고 해도, 게임 제작자들은 시장 경제를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게임 제작자들은 구체적인 멸망 원인조차 설정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구체적인 원인과 상관없이, 게임 제작자들은 그저 황량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연출하기 원했는지 모릅니다.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이든, <체인징 타이드>는 주체적인 선장이 (유일한) 문명의 혜택을 조종하고 위험한 자연에 도전한다고 연출합니다. 그래서 <체인징 타이드>는 인상적입니다.
[만약 게임 주인공이 거대한 해양 동물을 정복하고 생태 탈것을 조종한다면?]
<론 세일>처럼, <체인징 타이드>에서 주연 교통 수단은 기계(스팀펑크)입니다. 하지만 SF, 사이언스 픽션은 비단 기계 탈것만 아니라 생체 탈것 역시 보여줄 수 있습니다. 비단 기계 탈것만 아니라 생체 탈것 역시 SF, 사이언스 픽션에 속합니다. 만약 <체인징 타이드>가 생체 선박을 보여줬다면? 만약 게임 주인공이 생체 선박을 조종했다면? 만약 육중한 생체 선박이 험중한 대양을 건넜고, 혹독한 극지를 건넜고, 어두운 해저를 건넜다면? 비단 사이언스 픽션만 아니라 판타지 역시 비슷합니다. 나무 사이보그 우주선부터 바다 거북 잠수함까지, SF/판타지는 생체 탈것들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 그림(링크)은 거대한 거북을 보여줍니다. 거대한 거북이 교통 수단이 되는 것처럼, SF/판타지는 생체 탈것을 이야기합니다. 생체 탈것은 고유한 감성을 선사합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자전거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자동차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기차, 비행기, 잠수정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주선 역시 똑같습니다. 자전거부터 우주선까지,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이것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나타난 이후, 잠수정은 나타났습니다. 인간은 잠수정을 건조했습니다. 잠수정은 인간에게 속합니다. 잠수정, 이 기계는 인간 하인입니다.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기계는 나타납니다. 기계보다 인간은 우월합니다. 기계는 인간 하인입니다. 기계가 하인이기 때문에, 인간은 기계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기계를 정복하자!" 이 문구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기계와 달리, 생명체는 인간에게 종속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조류들이 나타나지 않았나요?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식물들이 나타나지 않았나요?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동물들이 나타나지 않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생물 다양성은 번성했습니다. 작은 시아노 박테리아부터 거대한 마멘키사우루스까지, 인간보다 생물 다양성은 원초적입니다.
생물 다양성은 인간에게 속하지 않습니다. 식물들, 동물들은 인간 하인이 아닙니다. 생물 다양성보다 인간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생물 다양성에서 인류가 진화하는 것처럼, 인간은 생물 다양성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연을 정복하자!", 이 문구는 위험합니다. 이 문구가 위험하기 때문에, 이 문구는 금기입니다. 이 문구가 금기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금기를 매혹적이라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만약 <체인징 타이드>가 생체 선박을 이야기했다면, 생체 선박은 이 금기에 도전했을지 모릅니다. 거대한 거북 탈것이 보여주는 것처럼, SF/판타지는 생체 선박 역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체인징 타이드>에서 게임 주인공이 거대한 해양 동물을 조종했다면, 이건 게임 주인공이 거대한 동물을 정복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만약 게임 주인공이 거대한 고래를 포획했고, 선체를 연결했고, 생체 선박을 조종했다면? 만약 게임 주인공이 거대한 동물을 정복한다면, 이건 정복 욕구를 자극할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게임 주인공이 자연(생물 다양성, 거대한 고래)을 지배한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자연을 지배하자!" 이 문구가 금기이기 때문에, 만약 게임 주인공이 거대한 동물을 정복한다면, 이건 훨씬 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생체 선박은 이 자극적인 감성을 풍깁니다.
현실에서 이미 인간은 말을 길들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말을 장대하고 웅장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말과 달리, 고래는 장대하고 웅장합니다. 만약 인간이 장대한 야생 동물, 웅장한 야생 동물을 조종한다면, 이 상황은 정복 욕구를 훨씬 자극할 겁니다. 승마보다 장대한 생체 탈것은 정복 욕구를 훨씬 자극할 겁니다. 거대한 거북 탈것처럼, SF/판타지가 인간이 웅장한 동물을 조종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SF/판타지는 정복 욕구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웅장한 동물은 비단 탈것만 아니라 병기 역시 될 수 있습니다. SF/판타지는 거대 괴수 병기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