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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철학의 아라베스크>에서 자연과 분리되는 인공적 환경 본문

생태/상호 작용으로서 사회와 환경

<철학의 아라베스크>에서 자연과 분리되는 인공적 환경

OneTiger 2018. 8. 30. 19:23

[니콜라이 부하린이 <블레이드 러너 2049> 같은 인공 생태계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니콜라이 부하린은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이자 사상가입니다. 부하린은 볼셰비키 우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죠. 부하린을 둘러싼 평가들은 다양합니다. 스탈린 지지자들은 부하린이 중소 자본가를 편들었다고 비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하린이 자유 민주주의에 기울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스탈린이 부하린을 숙청했다고 긍정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하린에게 별로 권력이 없었고, 그저 허수아비였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스탈린이 부하린을 숙청하지 않았다고 해도, 부하린은 소비에트 연방을 바꾸지 못했을지 몰라요.


워낙 평가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쉽게 결론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함부로 결론을 내릴 마음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저는 니콜라이 부하린이 주장한 생태 철학을 잠시 언급하고 싶습니다. 니콜라이 부하린은 <철학의 아라베스크>를 썼습니다. <철학의 아라베크스>에서 부하린은 인간이 자연 생태계를 떠나고 정말 생존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철학의 아라베스크>는 인간이 자연의 산물이고 자연의 일부라고 가정합니다. 만약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문화적인 측면)를 버린다면, 생물적인 기반이 남을 테죠. 이는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의 박자와 주기를 따라야 합니다. 인간은 노동하고 자연을 가공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는 인간이 자연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인간이 자연의 박자와 주기를 따르지 않는다면, 인간은 제대로 생존하지 못할 겁니다. 저는 <철학의 아라베스크>를 읽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왜 니콜라이 부하린이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부하린은 뻔한 덕담을 늘어놨는지 모릅니다. 니콜라이 부하린은 마르스크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사상과 별개로, 누구나 인간이 자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죠. 심지어 오직 이윤을 바라보는 자본가 계급조차 그런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곧바로 자본가 계급은 슬쩍 말을 바꿀 테고, 이윤을 위해 인간이 반드시 자연 환경을 수탈해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농업을 비판했고, 자본주의 농업이 토지를 침식시킨다고 분석했어요. 소비에트 연방은 이런 환경 오염에서 자유로울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역시 무수한 환경 오염들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가난했고, 자본주의 국가들은 풍족했음에도 환경 오염들을 저질렀죠. 그래서 저는 (소비에트 연방이 별로 잘 한 것이 없으나) 소비에트 연방보다 자본주의가 훨씬 착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콜라이 부하린은 자연 생태계에 관심이 많았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철학의 아라베스크>에서 부하린은 "특정한 사회적 및 역사적 생활 조건에서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어 '인공적 환경'에서 살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이건 흥미로운 물음이군요. 자연과 분리되는 인공적 환경? 이게 무엇을 뜻할까요? 저는 두 가지 설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기계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환경입니다. 디스토피아나 포스트 아포칼립스에는 생명 유지 장치에 의지하는 인간이 등장하곤 합니다. 생명 유지 장치는 다양한 생존 조건들을 제공하고, 덕분에 인간은 죽지 않습니다.


생명 유지 장치는 태양열이나 핵 발전이나 기타 동력을 이용해 계속 생존 조건들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폭싹 멸망한다고 해도 인간은 생명 유지 장치를 이용해 생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게 얼마나 가능성이 높은 설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폭싹 멸망한다면, 생명 유지 장치 역시 유지되지 못할 테고, 결국 인간 역시 살아남지 못하겠죠. 영구 동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명 유지 장치 역시 나타나지 못할 겁니다. 저는 생명 유지 장치가 별로 가능성이 높지 않은 설정이라고 생각해요.



둘째는 인공적인 자연 환경입니다. 바이오스피어 실험실은 좋은 사례가 되겠군요. 만약 우리가 이런 실험실을 훨씬 확장한다면? 만약 인류가 궤도 정거장이나 세대 우주선을 만든다면, 바이오스피어 실험실을 집어넣어야 할 겁니다. 궤도 정거장과 세대 우주선은 계속 식량이나 대기를 생산해야 할 테고, 부산물들을 순환시켜야 할 겁니다. 그걸 위해 사람들은 (바이오스피어 실험실처럼) 인공적인 자연 생태계를 만들고 관리해야 할 겁니다. 어쩌면 그건 생체 우주선이나 생체 우주 정거장으로 이어질지 모르죠. 인공적인 자연 환경은 생명 유지 장치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비록 바이오스피어 실험실은 실패했으나, 적어도 우리는 그런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바이오스피어 실험은 그저 상대적으로 현실적일 뿐이고, 우주 농장이나 생체 우주선은 수많은 난관들을 넘어야 할 겁니다. 인류가 궤도 정거장이나 세대 우주선을 만든다고 해도, 거기에 인공적인 자연 환경을 쉽게 집어넣지 못할 겁니다. 바이오스피어라는 단어처럼, 그건 작은 지구 생물권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작은 지구를 쉽게 모방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그런 인공적인 자연 환경이나 생체 우주선을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궤도 정거장이 자연 생태계를 순환시키는지, 어떻게 살아있는 우주선이 항해하는지, 저는 보고 싶어요. 하지만 글쎄요….



니콜라이 부하린은 궤도 정거장이나 생명 유지 장치나 생체 우주선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저 사변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부하린은 물었을 뿐이겠죠. 하지만 물음 그 자체는 흥미롭습니다.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사고 실험은 우리에게 색다른 관점을 제시할지 모르죠. 그래서 몇몇 환경 운동가들은 <철학의 아라베스크>를 언급했겠죠. 이건 SF 설정으로 발전할 수 있고, 훨씬 거시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어요. 게다가 언젠가 우리 인류는 머나먼 우주로 진출하고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할지 모릅니다. 만약 이 우주에서 우리가 유일한 지적 존재라면, 생명의 씨앗을 우주에 뿌리는 행위는 우리에게 사명(?)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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