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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제노사이드>, 새로운 인류와 인류 역사의 폭력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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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새로운 인류와 인류 역사의 폭력성

OneTiger 2018. 2. 23. 20:02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는 일종의 초인 소설입니다. 모든 인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인간들이 등장하고, 그 새로운 인간들을 위협하는 기득권이 존재하고, 몇몇 사람은 그 기득권에게서 새로운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온갖 복잡한 갈등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는 치명적인 위기를 불러옵니다. 이야기의 시점은 크게 세 부분들로 나뉘는데, 우선 일본의 약학 대학원생이 있습니다.


우연히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를 뒤쫓는 동안 이 학생은 꿈조차 꾸지 못했던 엄청난 진실에 직면하고 일개 대학원생이 감당하지 못할 음모에 빠져듭니다. 또 다른 주연 등장인물은 미국 용병인데, 용병답게 특수부대 출신입니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위험한 임무를 자처하고, 그래서 결국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콩고 작전에 참가합니다. 콩고라는 불안정한 현장에 뛰어든 만큼, 아무래도 숨 막히는 액션은 대부분 이 용병의 몫입니다. 세 번째 등장인물은 미국 특수 기관의 분석가로서 백악관의 각종 참모들과 함께 이 모든 음모와 위기를 계획하고 주도합니다.



소설은 각자 세 사람들의 시점으로 새로운 초인이 태어나고 기득권에게 쫓기고 각성하는 순간을 급박하게 그립니다. 어떻게 본다면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예전부터 이런 초인 소설은 SF의 하위 장르로 자리잡았죠. 올라프 스태플던의 <이상한 존>, 시어도어 스터전의 <인간을 넘어서>, 알프레드 반 보그트의 <슬랜>, 알프레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 등등 유명한 작품들도 많습니다. <제노사이드>는 이런 초인 소설의 계보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동시에 자신만의 주제를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아마 그 주제는 인류 사회의 엄청난 폭력성인 듯합니다.


제목부터 제노사이드입니다. 이방인들을 무참히 학살한다는 뜻이죠. 게다가 소설의 배경은 콩고 밀림입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악마처럼 도륙한 비극으로 유명한 장소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폭발한 비극은 숱한 상처들을 남겼고, 아직 아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죠. 한때 그 곳에서 피와 살을 쥐어짰던 유럽인들은 선진국 대접을 받으며 잘 먹고 잘 삽니다. 하지만 그들이 벌인 상처는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돌이키지 못할 죽음을 남깁니다.



아마 작가는 2중적인 의미에서 제노사이드라는 단어를 골랐을 겁니다. 사실 인류가 새로운 인간을 죽이는 행위 역시 제노사이드입니다. 새로운 인간은 기존 인류에게 이방인입니다. 서로 다른 부류의 인간이죠. 기존 인류가 새로운 인간을 죽인다면, 그건 유럽인이 아프리카인을 죽이는 행위와 비슷하겠죠. 작가는 두 가지의 제노사이드를 동일한 위상에 올리거나 아니면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제노사이드를 상상 과학적인 제노사이드로 승화하고 싶었나 봅니다.


기득권을 위해 기존 인류가 새로운 초인을 없앤다는 내용은 별로 신선하지 않으나, 작가의 저런 방법론은 독자의 심장을 마구잡이로 움켜쥡니다. 이런 방법론을 적용하기 위해 <제노사이드>는 온갖 피와 뼈와 살점과 장기가 난무하는 학살 현장을 과감없이 보여줍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는 장면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옵니다. 인간의 유일한 목적은 다른 부류를 학살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작가는 그런 비극을 그저 보여주기만 하지 않고, 인류라는 종 전체를 평가합니다.



당연히 소설의 시점은 꽤나 부정적이고 냉정합니다. 콩고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미국 최고의 권력자들, 그리고 역사적으로 숱하게 벌어졌던 학살과 전쟁…. 이런 이야기를 한참 듣는다면, 왜 인류가 번창해야 하는지 의심이 들곤 합니다. 인류가 번창하면 번창할수록 이런 비극은 더욱 파괴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따라서 인류의 존재는 그 정당성이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아마 이런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죠. 어떤 사람들은 시대가 발전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았고, 끝내 전세계의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은 틀리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21세기를 넘어 22세기에 다다른다면, 지금 고통을 받는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중앙 아시아, 동남 아시아 역시 부유해질지 모르죠. 따라서 인류는 계속 번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죠. 우리가 22세기의 발전까지 달려가는 동안,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갈 겁니다. 게다가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에게 진 빚은 분명히 존재하나, 과연 강대국들이 그 빚을 갚으려고 할지?



소설 <제노사이드>는 이런 비참하고 추악한 현실을 낱낱이 고발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소설이 인류가 당장 사라져야 한다고 평면적이고 유치하게 주장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류의 잔혹성만 너무 열거한다면 자칫 그런 평면적이고 극단적인 결론으로 빠질 수 있겠으나, 이 소설은 인류의 다른 면모도 바라보곤 합니다. <제노사이드>는 인류의 부정적인 측면을 열심히 강조하나, 한 구석에 희망이 없지 않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약학 대학원생, 미국 특수부대 출신의 용병, 음모를 주도하는 분석가 등은 그런 희망을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이고요.


그들은 서로 복잡한 관계를 이루는 동시에 자기 자리에서 그런 희망을 정착시키기 위해 애씁니다. 아무래도 세 주연 등장인물들 중 두 사람이 미국 특수부대 용병과 미국 참모진의 분석가이기 때문에 밀리터리 계열의 테크노 스릴러 분위기가 강합니다. 일본의 약학 대학원생은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소설의 줄거리가 워낙 씨줄과 날줄처럼 치밀하게 엮였고 모든 인물들이 그물처럼 얽혔기 때문에 누구 하나 낭비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치밀한 소설들이 늘 그렇듯, 인물 관계도를 그리면 꽤나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전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모두 똑같은 사건 속에서 움직입니다. 미국 백악관의 참모부터 일본의 대학원생을 거쳐 우간다의 어느 청년까지…. 암시와 복선은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사건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독자는 작가가 펼쳐놓은 거대한 그물을 볼 수 있습니다. 초인 소설로서의 완성도나 인류의 비참함을 고발하는 주제를 떠나, 그렇게 치밀한 그물 자체도 굉장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테크노 스릴러에 걸맞는 하드한 고증 역시 간과하지 못하겠죠.


특히 약학 대학원생이 새로운 약을 조제하는 장면은 낯설고 어려운 용어들의 행진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알아먹을 수 있고, 소설 읽기에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닙니다. 새로운 인간이 기존 인류를 위협한다는 내용은 좀 황당할 수 있으나, 이런 하드한 고증 속에서 정말 생생하게 흘러갑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



물론 새로 출현한 인간, 초인의 엄청난 능력 역시 빼놓지 못할 재미입니다. 사실 초인 소설에서 초인의 능력이 시시하다면, 그게 무슨 재미겠어요. 아무리 똑똑한 인간도 초인 앞에서 그저 어린애나 다름없고, 초인은 세계 최강대국의 핵심 권력까지 자유롭게 쥐락펴락합니다. 세계 최고의 권력가들이 초인 앞에서 어린애처럼 당황하는 모습은 묘한 통쾌함까지 선사합니다. 백악관 참모진들이 놀란 양떼처럼 우르르 돌아다니는 모습은 왜 초인 소설이 인기를 끄는지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지구의 주인이라는 인간을 한 손으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존재. 아무리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 초인의 손 안을 벗어나지 못해요. 그런 존재가 외계인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우리의 후손이죠. 그래서 감정을 이입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초인은 인간을 넘어섰으나 근본적으로 인간적입니다. 이렇게 엄청나고 압도적인 능력자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이 점이야말로 초인 소설의 근본적인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소설의 초인이 영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새로운 세대를 알리는 선구자 역할이라고 할까요.



초인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몇몇 부분은 너무 억지인 듯 보이나…. 그런 생각을 잊어버릴 만큼, 이 소설은 전개도 빠르고 떡밥들 역시 적당히 던집니다. 작가는 독자를 그냥 놔두지 않아요. 주제의 우울함과 복잡한 고증을 감안해도 책장들이 정말 빠르게 넘어갑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는 독자를 잡고 사방으로 뒤흔들고, 독자는 작가의 마수(?)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마침내 책을 덮으면,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처참한 폭력성과 미약하나 밝은 희망, 새롭고 위대한 전조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주제적인 면모에서 좀 아쉬웠던 부분은…. 작가가 새로운 초인만큼 기존 인류의 대안도 좀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분명히 엄청난 폭력이 존재하지만, 그런 폭력의 최전선에서 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 역시 있습니다. 작가가 그런 대안과 철학, 사상도 소개했다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끊임없는 폭력은 분명히 인류 역사를 관통하나, 다른 한편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저항했어요. 물론 그런 것들까지 소개했다면, 초인 소설의 강점이 퇴색했을지 모르겠군요.



그렇다고 해도 <제노사이드>는 인류 역사를 너무 단편적으로 분석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인류라는 단어를 들먹거리나, 인류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고, 누군가는 막대한 생산 수단을 차지했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만약 작가가 정말 인류를 비판하고 싶다면, 그 전에 우선 인류에게 골고루 생산 수단을 분배해야 할 겁니다. 그때 마침내 우리는 인류를 전체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노사이드>는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너무 똑같은 비판을 반복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SF 소설들이 계속 인류를 부당하게 비난한다면, 저도 똑같은 비판을 멈추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인류를 비난하고 싶다면, SF 작가들은 인류에게 생산 수단을 골고루 분배해야 합니다. 모두 비슷한 권력을 소유할 때, SF 작가들은 인류를 제대로 비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숱한 SF 소설들처럼 <제노사이드>는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대충 인류가 나쁘다고 퉁칩니다. 저는 <제노사이드>를 재미있게 읽었고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나, <제노사이드> 역시 결정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언제 SF 작가들은 세상을 똑바로 인식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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