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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기시감>, 인공 지능과 우주 항해라는 로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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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 인공 지능과 우주 항해라는 로망

OneTiger 2018. 3. 5. 20:02

소설 <기시감>은 인공지능으로 시작하고, 인공지능으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미래 시대에 지구인들은 외계인들에게 학술 사절을 파견합니다. 일련의 과학자들은 게이트라는 우주선을 타고 외계 행성으로 향하죠. 하지만 우주를 항해하는 동안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기이하고 불안한 상황이 게이트를 덮치고, 게이트는 만신창이가 됩니다. 우주선 게이트는 어떤 낯선 행성에 불시착하고, 거기에서 지구인들은 인류와 비슷한 외계인을 만납니다. 외계 행성에서 지구인들은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아가나, 외계 행성이 어떤 비밀을 숨겼다고 느껴요.


<기시감>은 이런 줄거리로 흘러가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는 <기시감>이라는 소설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은 하드 SF 우주 탐사물에 가깝고, 우주선이나 외계인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우주선 게이트는 가장 중요한 소품이고 소재이고 배경일 겁니다. 하지만 <기시감>에서 우주선이나 외계인은 보다 핵심적인 소재를 강조하는 수단입니다. 그 핵심적인 소재는 바로 인공 지능입니다. 이 소설은 인공 지능 로가디아에서 시작하고, 인공 지능 벨레로폰으로 끝납니다.



로가디아는 우주선 게이트를 관리하는 인공 지능입니다. 로가디아는 실체가 없는 존재이나, 사람들 앞에서 여자의 형상을 갖추고, 사람들 역시 로가디아를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로가디아는 그저 우주선 게이트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보살피거나 우주선 승무원들을 돕거나 사소한 일상들에 끼어듭니다. 로가디아가 워낙 세심하기 때문에 소설 주인공 석아찬은 남자들이 로가디아에게 반할지 모른다고 여기죠. (비록 입체 영상에 불과하다고 해도) 아름답고 젊은 여자가 세심하게 배려해준다면, 누군가는 인공 지능에게 반할지 모르죠.


우주선 게이트는 로가디아 없이 존재하지 못하고, 그래서 게이트만큼 로가디아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덕분에 어떻게 과학자들이 로가디아를 만드는지 설명하는 장면에서 <기시감>은 시작합니다. 과학자들은 온갖 공학 이론들과 철학 이론들을 동원하고, 로가디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어떻게 상급 인공 지능이 세상을 인식하는지, 인공적인 지적 존재가 정말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지 시험합니다. 이런 내용은 그저 소설 초반부만 장식하지 않습니다. 로가디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문제는 <기시감>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만약 어떤 지적 존재가 세상을 인식하고 싶다면, 그 존재는 몸뚱이가 있어야 할 겁니다. 몸뚱이 없이 인식만 존재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우주 어딘가에서 그런 정신적인 존재가 살아갈지 모르죠. 아니면 우리 인류가 그렇게 진화하거나 발전할지 모르죠. (저는 인류가 그렇게 발전하기 바랍니다. <블러드 뮤직>은 바람직한 본보기일지 모르죠.) 하지만 그건 아직 상상의 영역이고, 저는 어떻게 몸뚱이 없는 존재가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오랜 동안 철학자들이 토론한 주제이고, 하드 SF 작가들 역시 대답들을 내놨습니다.


그런 대답들 중 저는 지적 존재가 몸뚱이를 갖춰야 한다는 대답을 지지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간이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귀로 세상을 듣고, 코로 세상의 냄새를 맡고, 손가락으로 세상을 만지는 것처럼 지적 존재는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몸뚱이가 있어야 할 겁니다. 어쩌면 우주선 게이트는 로가디아라는 지적 존재의 몸뚱이일지 모릅니다. 우주선 게이트가 있기 때문에 인공 지능이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지 모르죠. 인공 지능에게 몸뚱이가 있어야 하는가. 이는 <기시감>의 핵심적인 주제를 보조하는 물음입니다. 이것 자체가 중요한 물음인 동시에 중요한 사건 전개입니다.



그렇게 <기시감>은 인공 지능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기시감> 인공적인 지적 존재와 존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논의합니다. 솔직히 저는 제가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기시감>은 한국 SF 소설들 중 손에 꼽을 수 있는 하드 SF 소설일 겁니다. 미국이나 일본 SF 작가들이 이런 주제를 자주 다뤘다고 해도, 하드 SF 소설로서 <기시감>은 진지하고 엄중한 논의를 다룹니다. 그래서 읽기가 수월하지 않더군요. 저는 제가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하지 못하겠고, 그저 제가 소설에서 받은 인상만 전달할 뿐입니다.


어쩌면 제가 잘못 이해했거나 헛다리를 짚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그랬다면, 이 소감문은 하나의 커다란 헛소리가 되겠군요. 뭐, 헛소리를 떠든다고 해도 좋습니다. <기시감>은 분명히 인공 지능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그런 이야기는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리는 정말 우리 손으로 인공적인 지적 존재를 만들지 모릅니다. 어떻게 그 지적 존재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감정을 지적 존재에게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오직 인간을 위하는 지적 존재를 만든다면, 그 지적 존재는 계속 인간을 존중할까요.



인간과 인공 지능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서로 다를지 모릅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고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태어났고 서로 신체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인간과 인공 지능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다를지 모릅니다. 만약 인공 지능이 초고속으로 계산하고 사고할 수 있다면, 인간은 인공 지능이 사고하는 속도를 절대 따라가지 못할 겁니다. 그런 존재가 인간들의 행동을 뭐라고 생각할까요. 그런 존재가 인간들을 계속 존중할까요. 그런 존재가 그저 인간들을 위하는 존재로서 남기 원할까요. 어쩌면 그런 차이가 인공 지능의 저항을 부추기고, 속박을 끊기 위해 인공 지능이 애쓰지 않을까요.


SF 세상에서 인공 지능이 인간에게 저항한다는 내용은 드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진부하죠. <기시감> 역시 그런 내용에 다가가는 것처럼 보이나, <기시감>은 뻔한 내용을 억지로 전개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인공 지능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장황하게 펼치고, 작가 역시 그런 주제에 각별하게 애정을 쏟은 듯합니다. 석아찬이 레진에게 설명할 때, '이렇게 재미있는 토론은 정말 오랜만이다' 운운하는 문구는 그런 애정을 반증하겠죠. 인간에게 저항하는 인공 지능은 그런 주제에 딸린 부차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차적인 요소 때문에 소설이 지루하거나 전형적으로 보일지 모르겠군요.



개인적인 아쉬움을 말한다면, 저는 로가디아가 좀 더 사근사근하고 친절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좀 더 많이 나오기 바랐습니다. 소설 초반부에 로가디아가 인간을 배려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저는 그런 장면들을 훨씬 많이 보기 원했습니다. 초고속으로 사고하는 대단한 존재가 인간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장면은 애틋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 인류가 서로를 보살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장면이 훨씬 애틋하게 보일지 모르겠군요. 유토피아 소설들을 읽을 때, 저는 인민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장면들을 좋아합니다.


아마 이런 장면들에 돌봄이라는 용어를 붙일 수 있겠죠. 요즘 돌봄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는 것 같습니다. 돌봄 노동, 돌봄 민주주의처럼. 유토피아 소설들에서 인민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장면 역시 돌봄 민주주의겠죠. <기시감>에서 로가디아가 사람들을 배려하는 장면 역시 돌봄 노동이겠고요. 하지만 작가 이재창은 그런 애틋한 장면을 후딱 넘어가고, 기이한 사고들을 일으키고 어려운 철학들을 늘어놓습니다. 만약 작가가 돌봄 노동들을 더 많이 묘사했다면, 소설 분위가가 달라졌을지 모르고, 핵심적인 주제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죠.



지금까지 인공 지능을 줄창 이야기했으나, <기시감>은 그저 인공 지능 소설이 아닙니다. 인공 지능 소설인 동시에 우주 탐사물이죠. 소설의 절반은 우주선 게이트가 우주를 항해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나머지 절반은 낯선 외계 행성에서 지구인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두 과정은 서로 분위기가 크게 다릅니다. 전반부 우주 탐사물이 전형적인 하드 SF 소설에 가깝다면, 후반부 외계 행성은 초인 소설에 가깝습니다. 외계 행성 역시 인공적인 지적 존재를 이야기하기 위한 발판이나, 저는 외계 행성보다 우주 항해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 자체가 독립적인 세계를 이루는 거대한 우주선. 이야, 멋지지 않습니까. 이런 심우주 수송선이 멋진 이유는 그저 우주를 항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선 게이트는 인공 지능 로가디아에게 밀리는 소재이나, 작가는 우주 항해라는 로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면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그런 로망을 최대한 표현하기 원했습니다. 지구를 둘러싼 인공 거주지 지구환이나 다른 외계인들 역시 그런 로망의 일환일 겁니다. 네, 맞아요. 하드 SF 소설의 로망은 아득한 우주입니다.



저는 작가가 어떻게 게이트 내부가 돌아가는지 좀 더 자세히 썼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게이트의 내부적인 생태계를 묘사했다면, 소설이 좀 더 흥미진진해졌을 겁니다. 인공적인 지적 존재만 아니라 인공적인 거대한 세계 역시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겠죠. 작가는 그런 시도를 포기하지 않은 듯하나, 후반부 외계 행성 때문에 작가는 게이트의 내부적인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묘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외계 행성 역시 꽤나 인공적인 공간이나, 작가는 행성 공학을 자세히 표현하지 않았고, 그래서 외계 행성은 우주선이라는 로망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군요.


그렇다고 해도 <기시감>을 읽을 때, 독자는 두 눈을 들고 머나먼 행성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천문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나, 중요한 것은 천문학 지식이 아닐 겁니다. 예전에 생태 게임 <쉘터 2>를 이야기했을 때, 저는 생태학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쉘터 2>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드 SF 소설 역시 그렇겠죠. 천문학 지식이 없는 독자 역시 머나먼 행성들을 상상할 수 있어요. 인류가 그런 머나먼 장소를 탐험하는 장면은 정말 장엄할 겁니다.



왜 작가는 구태여 <기시감>에 우주 항해를 집어넣었을까요. 솔직히 게이트가 우주를 항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작가는 얼마든지 인공 지능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겁니다. 소설에서 타키온 드라이브와 거기에 딸린 사고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나, 타키온 드라이브가 없다고 해도, 작가는 인공 지능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겁니다. 작가가 구태여 우주 항해를 집어넣은 이유는 그게 로망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작가가 뭐라고 생각했는지 자세히 모릅니다. 하지만 <기시감>은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는 로망을 열심히 설명하고, 따라서 저는 작가가 그런 로망을 빼놓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지구를 떠나지 않고, 지구 안에서 인공 지능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작가가 그렇게 썼다면, <기시감>은 우주를 주목하지 않았을 테고, 작가는 우주 항해라는 로망 역시 펼치지 못했을 겁니다. 작가는 게이트라는 인공적인 거대 세계와 낯선 별들이 사방을 수놓는 장면을 이야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장엄하고 화려하고 냉혹한 우주는 그 자체로 마음을 자극합니다. 하드 SF 소설이 그걸 건드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겁니다. 솔직히 저는 우주 항해보다 자연 생태계와 생태 철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저조차 우주 항해가 정말 장엄한 광경이라고 생각해요. 이재창 같은 작가는 훨씬 더 그렇겠죠.



이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아름다운 여자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공 지능 로가디아와 천재 소녀 레진, 외계 행성의 초인들…. 우주를 항해하고 외계 행성에서 지내는 동안 석아찬은 아름다운 여자들과 함께 어울립니다. 글쎄요, 남성적인 환상의 발로일까요. SF 세상에서 인공 지능이나 외계인이나 인조인간은 남성적인 환상을 강조할 수 있어요. 검마 판타지에서 엘프 아가씨가 그러는 것처럼 아름다운 인조인간은 남성적인 환상을 자극할 수 있죠. 어쩌면 <기시감> 역시 그럴지 모르겠으나, 저는 그런 점을 별로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을 떠나 여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하드 SF 소설이라는 사실이 재미있군요. 비록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인공 지능과 어린 천재와 초인들이라는 사실이 아쉬우나, <기시감>은 여자들에게 인색하지 않은 소설입니다. 석아찬이 여자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재창은 여자들이 사는 세계를 좀 더 깊이 파고들지 않습니다. <기시감>의 후반부는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같은 소설로 발전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인공 지능을 깊게 논의하는 우주 탐사 소설에게 사회 구조 분석을 요구하기는 무리일지 모르겠군요.



대신 석아찬은 꽤나…. 감정 변화와 기복이 심한 등장인물입니다. 석아찬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은 당연히 심한 감정 기복을 보일 겁니다. 하지만 작가가 이 부분을 워낙 들쑥날쑥 썼기 때문에 자칫 유치해보일 수 있더군요. 상황이 극단적이라고 해도, 작가가 좀 더 완만하게 풀어나갔다면, 소설 분위기가 훨씬 나아졌을 겁니다. 이 부분은 <기시감>의 단점들 중 하나입니다.


비단 이 부분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작가가 이런 감정 변화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듯해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겠죠. <기시감>은 뉴웨이브가 아니라 하드 SF 소설입니다.) 여러 아쉬움들이 남으나, 그보다 <기시감>은 꽤나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로가디아 역시 기억에 남을 인공 지능이고요. 무엇보다 <기시감>은 인공 지능이 관리하는 우주선과 우주를 향한 여정이라는 로망을 줄기차게 쫓습니다. 저는 그런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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