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전투적 페미니즘과 폭행 문제 본문
조안나 러스는 뉴웨이브 운동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페미니즘 소설가라고 합니다. 저는 페미니즘 운동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전투적인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남자들은 전투적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듣고 메갈리아를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메갈리아…. 지금은 많이 조용하지만, 한때 사회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단어입니다. 저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별로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견을 별로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어떤 SF 동호회에서 메갈리아 토론이 한창 뜨겁게 터진 것을 봤습니다. SF 소설 이야기는 별로 올라오지 않지만, 메갈리아 토론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더군요. 아무리 SF 동호회라고 해도 SF 소설보다 메갈리아에 관심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리고 당연히 대부분 사람들은 메갈리아를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발제자도 장문을 썼고, 여러 사람들이 장문 댓글을 달았고,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많은 이들이 메갈리아를 지극히 부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아마 이런 의견은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다들 메갈리아를 지극히 부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아무도 강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메갈리아 논쟁이 그렇게 뜨거웠음에도 아무도 강간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메갈리아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건 각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집단을 논의하고 싶다면, 당연히 그 집단에 관련된 사회적 고충을 함께 언급해야 할 겁니다. 메갈리아가 페미니즘 집단이냐 아니냐, 그런 뜻이 아닙니다.
메갈리아를 부정하고 비난한다고 해도, 메갈리아를 페미니즘 집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어쨌든 (남자들의) 폭행은 아주 심각한 사회적 문제입니다. 그리고 메갈리아는 (그 방법론이 무엇이든) 그런 폭행들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메갈리아를 논한다면, 거기에 긍정하든 부정하든, 강간 문제를 함께 언급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다들 메갈리아를 비판할 뿐이고, 아무도 폭행 문제를 말하지 않더군요. 마치 이 사회에서 그런 폭행들이 전혀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페미니즘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저는 이런 폭행들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토론에 참가하고, 장문의 댓글을 달고, 다양한 이야기를 펼친다면, 당연히 폭행 문제도 나올 줄 알았습니다. 음, 그런데 다들 그냥 메갈리아만 비판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뭐…, 메갈리아를 비난할 때, 무조건 폭행 문제도 함께 언급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냥 메갈리아만 비난해도 논리적인 모순이나 하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토론이 길어지고 풍성해진다면, 그만큼 여러 화제가 떠오를 법합니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지만, 아무리 괴수 소설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괴수 이야기만 하지 않습니다. 괴수와 함께 뭔가 더 폭넓고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프래그먼트>나 <내추럴 셀렉션> 같은 소설은 얄팍하다는 소리를 듣죠. 저는 저 메갈리아 토론이 <프래그먼트>나 <내추럴 셀렉션>처럼 보였습니다. 얄팍하다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길다란 메갈리아 논쟁 속에서 아무도 심각한 폭행을 언급하지 않다니….
그게 좀 신기했습니다. 아니, 신기할 것도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사회적으로 메갈리아 논쟁이 뜨거웠음에도 폭행 문제는 별로 언급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저 SF 동호회 이외에 다른 곳들도 별로 폭행을 언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사회에서 저런 폭행들은 전혀 중요한 화제로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아요. 아직 날아오지 않은 북한 미사일 같은 것들은 연일 뉴스를 장식하지만, 정말 현실적이고 심각한 폭행은 별로 화제가 못 되죠.
뭐, 어차피 저런 폭행 이외에 다른 심각한 문제들도 별로 화제가 되지 않죠. 생태학자들이나 환경 사회학자들은 생물 다양성 위기와 기후 변화를 부르짖지만, 뉴스는 그저 전기 요금 타령이나 할 뿐이죠. 저는 전투적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저런 현상들 때문에 전투적인 자세가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비단 페미니즘이 아니라 다른 운동들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