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무정부주의에 관한 오해 본문
[영화 <젊은 카를 마르크스>에 나오는 바쿠닌과 프루동. 진짜 무정부주의, 아나키즘은 이런 것이겠죠.]
종종, 아니, 자주 좌파들은 오해를 받곤 합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는 사적 소유를 금지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공산당 선언>을 읽어보면, 사실 공산주의자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금지할 뿐입니다. 또한 환경 운동가들은 인간보다 자연을 더 중요시한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환경 오염은 빈민들, 원주민들, 흑인들, 여자들을 착취했고, 환경 운동가들은 여기에 분노합니다. 즉, 이들은 약자들을 지키는 것이지 자연 그 자체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 운동가들 중에서 저~기 어딘가에 있을 외계 생태계를 지키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정말 외계 생태계가 있는지 알 수 없을 뿐더러 거기에는 지켜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극단적인 공산주의자나 극단적인 환경 운동가도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모든 사적 소유를 금지하거나 관념적인 자연 그 자체를 위해 싸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공산주의나 환경 보호의 중심 논리는 그게 아닙니다. 저런 오해가 퍼진 까닭은 (이른바) '수구 꼴통'들이 설쳤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예를 들어 환경 운동가가 대기업 규제를 외치면, 수구 꼴통들은 김정은을 들먹입니다. 허허, 이것 참. (만약 김정은이 기후 변화를 막고 대기업을 규제하자고 외친다면,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김정은이 트럼프보다 낫겠군요.)
무정부주의 역시 좌파의 중요한 기둥이고, 많은 오해를 받습니다. 저는 무정부주의에 관한 가장 큰 오해가 '무정부주의가 폭력배'라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무정부주의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폭력배를 떠올리곤 합니다. 이 폭력배는 복면을 쓰고, 기물을 부수고, 총을 쏘고, 화염병을 던지고, 혼란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칠게 폭력을 휘두르고 반항적인 언사를 내뱉는 사람에게 무정부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가령,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무정부주의자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조커는 혼란을 부추기고, 질서를 파괴하고, 그걸 위해 각종 폭력을 휘두르고, 기존의 규범에 무조건 반항하기 때문입니다.
조커는 통제, 규율, 관리 등에 저항하고, 뭔가 견고하거나 얽매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정부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회주의의 한 분파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주의나 허무주의의 한 분파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로서 무정부주의 운동은 개인주의나 허무주의보다 먼저 등장했고 영향력도 훨씬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조커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미치광이 폭력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저 멋있어 보이기 위해 무정부주의 운운할 따름이죠.
공산주의자들이 카를 마르크스와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온 트로츠키를 이론적 지도자로 여기는 것처럼, 환경 운동가들이 어니스트 시튼과 레이첼 칼슨과 존 뮤어를 정신적 스승으로 여기는 것처럼, 무정부주의에도 선구자들이 있습니다.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표트르 크로포트킨, 미하일 바쿠닌 같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무정부주의 운동을 펼쳤지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폭력배와 다릅니다. 무정부주의 운동은 계급 투쟁이고, 따라서 이들의 운동은 군주제와 자본가와 파쇼주의를 향했습니다.
프루동이나 바쿠닌은 마르크스와 동일한 시대를 살았고, 프루동과 마르크스는 심하게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가 프루동을 마구 비난하자, 프루동은 제발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라고 항변했죠. (마르크스는 진짜 희대의 싸움닭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마르크스와 바쿠닌은 똑같이 국제 노동자 협회(인터내셔널)에 속했습니다. 마르크스와 바쿠닌 역시 온갖 설전을 벌였고, 마르크스는 협회가 무정부주의로 넘어갈까 싶어서 아예 판을 깨버리기도 했어요. 좌파가 분열한다는 농담은 그냥 농담이 아니죠. 어쨌든 이처럼 무정부주의는 공산주의와 부대낄 정도로 계급 투쟁의 성향이 강했고, 자본주의를 깨기 위해 부단히 싸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커가 무정부주의자라는 말은 지렁이가 뱀의 일종이라는 말처럼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조커가 바쿠닌이나 크로프트킨처럼 계급 투쟁을 벌였나요. 조커가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자본가에게 항의했나요. 조커가 네오 나치를 향해 뭐라고 말했나요. 조커가 대기업의 환경 오염에 분노했나요. 아닙니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계급 투쟁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미치광이 폭력을 벌였을 뿐입니다. 어떻게 조커와 바쿠닌을 똑같은 무정부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진짜 무정부주의의 모습이 무엇인지 기억해야 할 겁니다. 투쟁과 폭력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계급 투쟁을 바라봐야 뭐가 진짜 무정부주의 운동인지 알 수 있겠죠.